고재에 맞춘 작품 구상, 낯선 시도를 만나다
고재에 맞춘 작품 구상, 낯선 시도를 만나다
  • 박광윤 기자
  • 승인 2013.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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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의 해학으로 풀어 낸 아버지의 초상, 박민섭 전

▲ 버티기 3400×1500×1400㎜, 한옥 고재(육송), 철, 2013 버티기라는 제목처럼 뒷다리에 힘을 집중한 채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 동세며 정황이 역력하고 생생하다. 그러나 이 역력하고 생생한 느낌이며 팽팽한 긴장감은 놀랍게도 사실적이고 세부적인 묘사를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다만 고재 그대로의 원형을 간직하면서 원형 그대로를 이용해 짜 맞추는 과정을 통해서 얻는다. 빚어 만들고 깎아 만든 것이 아니라 짜 맞춘 것이며, 인공의 손길 대신 원형 그대로를 살리고 이용한 것이다. 이처럼 다만 짜 맞춘 형태가 생생한 현실감을 자아내는 것. 평소 사실주의 조각에서 체득된 해부학에 대한 속 깊은 이해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묘사를 통한 사실주의 이후에 표현을 통해서도 사실에 이를 수 있음을 예시해주고 있고, 이로써 사실주의 조각의 경계를 확장하고 심화시킨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 고충환 글 중에서
지난 10월9일부터 15일까지 가나 인사아트센터 3층에서는 조각가 박민섭 展이 열렸다. 그간 보통사람들의 일상과 지난한 삶의 현장을 다양한 작품으로 형상화해 왔던 박민섭 작가는, 이번 전시 주제를 ‘아버지’로 구체화하고 꿈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희망하며 살아가는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일생의 궤적을 통틀어 표현해 냈다.

박민섭 작가는 묵묵히 일을 하는 ‘소’와 집을 지지하는 ‘대들보’의 심상이 아버지와 닮았다며 작품 속 아버지를 황소로 표현하고, 전통한옥의 대들보가 연상되는 고재를 작품에 적용시켰다. 아버지, 황소, 고재라는 세 가지 테마는 이렇게 서로의 표상이 되고, 배경이 되어 작품 속에서 얽히고 설켰다.  

▲ 또 하루 1500×250×1500㎜, 한옥 고재, F.R.P, 2013
특히 고재는 인위적인 조각 대신, 한옥에서 떨어져 나온 형상 그대로를 작품에 적용하여 ‘빚고 깍은 것이 아니라 짜 맞춘’ 방식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작품을 들여다보면 짜맞춤 방식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전체의 일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어, 작가의 관찰력과 응용력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무엇보다 원형 그대로의 사실성이 모여 새로운 조각을 이루는 방식은 가히 ‘조각의 새로운 경계를 확장시켰다’는 한 평론가의 말에 백분 공감을 하게 될 것이다.

전시된 작품은 현실 속 아버지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내밀한 곳의 욕망을 기꺼이 표출하기도 한다. 아버지의 매일 반복적인 일상을 표현한 ‘길’, 도박에 심취해 자신의 패를 몰래 펼쳐드는 ‘쩐의 전쟁’, 거대한 건축물 옥상에서 소박한 담배 한 대 물고 있는 ‘옥상에서’ 등은 모두 아버지의 모습이다. 

박민섭 작가는 아버지라는 주제가 평소 서민의 삶에 관심을 가져온 과거의 예술적 여정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이번 작업에서 처음 다루게 된 ‘고재’는 작업을 하는 내내 즐거운 향기를 안겨줬다며 앞으로도 작품의 주요 테마가 될 것같다고 귀띔해 줬다.
글 _ 박광윤 기자 | 자료제공 _ 박민섭 작가

 

▲ 옥상에서 600×600×2800㎜, 한옥 고재(육송), F.R.P, 2013

작가의 조각은 그렇게 슈퍼맨과 천형 사이를 오가는, 꿈과 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아버지들의 초상을 그려 보인다. 그런데 뭔가 예사롭지가 않다. 아버지는 온데간데없고 황소가 아버지를 대신한다. 아버지를 황소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왜 황소일까. 태어나면서부터 죽어라고 일만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꼴이 꼭 아버지의 삶 같다. 아니면 논 팔고 집 팔고 소를 팔아 자식새끼 학교 보내고 장가보내고 했던 아버지에게 소는 어쩌면 자식만큼이나 아님 자식 이상으로 살가웠을 존재일 수도 있다. 또 다른 피붙이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소는 아버지를 닮았다.
- 고충환(미술평론가), ‘해학과 풍자, 황소에 빗댄 아버지의 초상’ 중에서


▲ 맞짱. 2000×50×1450㎜, 한옥 고재, 철, 2013

▲ 숙명 500×250×2300㎜, 한옥 고재(육송), F.R.P, 2013

▲ 쩐의 전쟁 12×20×43㎝, F.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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