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마을 골목길을 거닐다
한옥마을 골목길을 거닐다
  • 나무신문
  • 승인 2013.09.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전북 전주 한옥마을과 자만벽화마을

▲ 향교 앞 골목길
예술의 향기 그리고 지팡이 아이스크림
전주 한옥마을 골목길 걷기는 풍남문에서 시작한다. 원형 로터리 가운데 풍남문이 있다. 풍풍남문 앞 작은 광장에서 한옥마을 방향으로 걷는다. 횡단보도 앞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횡단보도를 건너 한옥마을 큰길인 ‘태조로’를 따라 걷는다. 경기전 앞 관광안내소에서 한옥마을 지도가 있는 팸플릿을 얻어 코스를 조율한다. 경기전과 전동성당은 한옥마을은 필수코스, 나머지는 선택코스다.

필수코스를 돌아본 뒤 선택한 첫 코스가 교동아트였다. 예술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교동아트는 이른바 ‘백양표 메리야쓰’를 제조하던 한흥물산과 백양섬유 생산시설이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생산활동을 하던 자리다. 옛 공장 터는 교동아트 뿐만 아니라 인근 땅을 포함한 2500여 평이었다. 그중 교동아트는 1960년대 건축한 봉제공장 일부를 원형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부를 전시관으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교동아트 뒤에 있는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작가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최명희문학관과 부채문화관을 거쳐 전주 향교로 갈려고 하는 데 길을 잘못 들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의 풍경을 만났다.

한옥과 돌담이 골목을 이룬 골목길에서 눈에 띈 건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소프트아이스크림이 든 지팡이 모양의 긴 옥수수콘아이스크림 상점 앞에서 걸음이 멈추어진다. 수수한 그림이 있는 작은 가게와 달콤하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 한옥마을 골목에서 만난 옥수수콘아이스크림
50년 된 구멍가게가 빛난다
잘못 찾아간 골목길 끝이 막혔다. 막다른 골목길에서 다시 나와야하는 데도 마음은 편안하다. 아기자기한 골목에 소박한 한옥의 정원이 있기 때문이다.

게으른 걸음으로 골목을 누비는 데 눈은 총총하다. 향교를 찾아간다. 지도에 향교는 한옥마을 한 쪽 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낡은 집들이 키를 맞춰 줄을 지었다. 1층이 넘는 집들이 없으니 낮은 지붕 위에 드리운 하늘이 도심의 그것보다 높아 보인다. 이런 길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일상 같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여행의 느낌이 가득하면서도 들뜨지 않는 이런 곳이 마음에 든다.

그런 마을 골목길에서 50년 넘게 문을 열고 있는 구멍가게를 만났다. 가게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샀다. 옛날에는 아이스크림을 부르는 이름이 많았다. ‘하드’ ‘아이스께끼’ ‘아이스크림’ 등이 대표적이었다. 콘에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얹은 ‘아이스크림’ 보다는 갖은 색소와 향으로 맛을 낸 얼음을 막대에 얼린 ‘하드’ 또는 ‘아이스께끼’를 많이 먹었다. 돈 때문이었다. 요즘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하드’를 골랐다.

가게 앞을 지키고 있는 빈 의자에 앉아 동네사람마냥 오가는 여행자들을 바라본다. 여행지는 또 다른 사람의 일상일 뿐, 그 일상에 앉아 바라보는 여행지 풍경은 색다른 느낌이다.
칠이 벗겨지고 글자가 지워지고 녹슨 간판에서 관록이 뚝뚝 떨어진다. 세월이 쌓여 만들어진 관록의 아름다움은 어쩔 수 없나보다. 빛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빛나게 해준다.

 

▲ 자만마을 골목길 벽화. 창문을 안경으로 만든 생각이 기발하다
오목대와 이목대 그리고 자만벽화마을
‘하드’ 하나로 더위를 식히고 찾은 향교에서 배롱나무 붉은 꽃잎이 여행자를 먼저 반긴다. 나뭇가지 껍질을 벗는 배롱나무는 매일 같이 새롭게 태어나라는 뜻이고 벌레 안 타고 열매 많이 맺는 은행나무는 세파에 물들지 않고 학식을 많이 쌓으라는 뜻에서 향교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전주향교는 배롱나무와 함께 은행나무가 유명하다. 향교 곳곳에 250살부터 400살까지 이르는 몇 그루의 은행나무가 여행자를 반기고 있었다.

향교에서 나와 오목대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을 걷는다. 고도가 높아지면 땅의 것들은 평안하게 낮아진다. 전망 좋은 곳 풍경은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오목대로 올라가는 길에서 한옥마을을 내려 본다.

오목대는 고려 우왕6년(1380년)에 이성계가 남원 운봉 등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돌아가는 길에 들려 종친들과 전승축하연을 벌였던 곳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남긴 고종황제의 친필비가 있다.

오목대에서 육교를 건너면 이목대가 나온다. 이목대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대왕이 살았던 곳이다.

오목대와 이목대가 있는 마을의 원래 이름은 자만마을이다. 지난 해 11월에 이 마을은 벽화마을이 됐다. 담장과 벽에 그림을 그려 넣어 오래된 마을을 새로 단장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좁은 골목은 다양한 주제의 다양한 그림이 가득하다.

추억의 장소인 골목에 기발한 상상력과 꿈 같은 그림이 더해지니 여행자의 마음도 밝아진다. 아이처럼, 꿈결처럼 넘실대는 마음에 오후의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Tag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