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에서 길을 잃다
흑산도에서 길을 잃다
  • 나무신문
  • 승인 2013.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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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전남 신안군 흑산도

▲ 초록빛 바다 앞에 앉아 쉬었다 간다.
목포항을 출발한 배가 목포대교 밑을 지난다. 고하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육중하지만 날렵한 다리가 바다에 떠있다. 배는 안좌도와 팔금도 사이 바닷길을 미끄러지듯 지난다. 아직은 섬으로 둘러싸인 잔잔한 바다다. 이윽고 비금도와 도초도 사이를 지나 섬 하나 없는 망망대해를 가로지른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아름다운 바닷길을 달리는 배가 목적지인 흑산도에 도착했다.

 

▲ 예리마을 원색의 파란빛 건물이 인상적이다 / (위)예리마을 골목길은 옛날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마을 공동우물도 있다 / (아래)예리항길을 걷다보면 이름 없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숨어 있다
해무 띠 두른 섬 
흑산도 항구로 들어가는 배가 속도를 줄인다. 창밖 공기가 투명하고 맑다. 섬들이 점점이 떠 있다. 파란 바다 위에 드리운 해무가 구름띠가 되어 섬 산허리를 감싼다. 흔히 볼 수 없는 풍경 앞에서 설렌다.

항구에 도착한 배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내린다. 엄청난 양의 낚시장비를 나르는 사람들, 고향을 찾아온 사람들, 목포 병원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흑산도 아저씨 아줌마, 그 틈에 끼어 우리도 흑산도에 첫발을 딛는다.

투명한 공기 사이로 쨍쨍한 햇볕이 쏟아진다. 여객선터미널 낡은 건물 앞에서 여행자를 처음 반긴 건 역시 흑산도 특산품인 홍어였다. 파라솔 노점 좌판 위에 살아있는 전복이 소복하게 쌓였다. 건어물 노점에는 홍어를 말린 홍어포가 여기가 흑산도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홍어포 사진을 찍고 있는 데 노점 주인아저씨가 홍어포 채 썬 것을 한 움큼 집어 주신다. 흑산도를 구경하며 심심할 때 씹으라신다.

홍어포를 씹으며 걷는 길, 유정장여관 초록색 건물 옆으로 난 골목길로 접어든다. 옛날 마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골목길을 걸어서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간다. 골목을 벗어나면서 뒤를 돌아보니 파란 바다와 항구마을, 해무 낀 섬들이 한 눈에 보인다.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에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 언덕 풀밭에서 풀을 뜯는 소
예리 바닷가 숲길
흑산도 ‘예리항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출발지점이 예리 항구이고 대봉산 산기슭 길을 돌아서 다시 예리 항으로 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에 ‘예리항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길은 숲으로 이어진다. 길을 지운 무성한 풀을 헤치니 실선으로 난 오솔길이 보인다.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걷는다. 이름 난 해변도 아니고 사람들이 자주 찾는 여행지도 아니다보니 자연은 순수하게 남아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여러 구도로 사진을 찍는다. 투명한 공기의 청정한 향기, 살갗을 스치는 바람결마저 카메라에 담고 싶은 마음이다. 얼마 가지 않아 푸른 숲 뒤로 바다가 펼쳐지고 바다 위에 낀 해무가 구름처럼 섬의 밑동을 가려 섬이 구름에 떠 있는 듯한 풍경을 만났다.

경치 좋은 조망 포인트에서 시간을 지체하다 보니 일행과 거리가 멀어졌다. 이정표도 없는 길에서 갈림길을 만났고 앞서 간 일행의 뒷모습을 찾을 수 없다. 길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는 왼쪽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알았다. 오솔길 나무와 나무 사이 가슴 높이에 거미줄이 그대로 남아 있다. 누군가 지나갔다면 거미줄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 리 없었다.

다시 갈림길로 돌아가는 데 또 다른 일행이 올라오고 있었다. 일행과 함께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따라 간다. 길 끝에 바다가 보인다. 갯바위가 넓게 펼쳐졌고 그 뒤에 작은 모래 해변이 있다. 갯바위를 가로질러 모래해변에 도착하니 고생대에나 있을 법한 벌레들이 해변 전체에 까맣게 깔렸다. 사람의 발걸음 진동을 느꼈는지 벌레들이 일제히 달아나는 데 까만 파도가 갯바위 돌 틈으로 밀어닥치는 것 같이 보였다.

길은 그 해변에 끊어졌다. 길을 가늠해 보다가 앞서 간 일행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가 잘 터지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기 때문에 장소를 옮겨 가며 전화를 해야 했다. 간신히 연결된 전화로 앞서 간 길을 안내 받았지만 해변에서 연결되는 숲길 초입을 찾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길 같은 곳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가시덤불이 길을 막아선다. 다시 돌아와 옆길로 접어든다. 이런 길로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과 남은 일정 약속 시간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길을 내면서 위로 올라갔다.

 

▲ 흑산도 홍어 / (위)대봉산 산기슭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바라본 풍경 / (아래)목포항 앞 유정장 여관 골목으로 들어가서 골목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기 전 언덕배기에서 돌아본 풍경
정겨운 골목길과 흑산도 홍어
도착한 곳은 대봉산 중턱 푸른 초지였다. 그곳에서는 내영상도와 외영산도 등 흑산도 앞 섬들이 한 눈에 다 들어왔다. 파란 바다에서 불어오는 넘실거리는 바람이 풀밭 위로 지나가면서 땀을 식혀준다. 일행과 여기서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작은 해변에서 산으로 직접 올라왔고 일행은 숲으로 난 길을 따라 또 다른 해변까지 갔다가 이곳까지 온 것이다.

그렇게 만나서 다시 한 무리가 된 우리들은 예리 항구마을 위 산길을 따라 예리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은 오래 전 그 대로 남아 있었다. 돌로 쌓은 울타리, 담장 아래 피어난 백년초 꽃송이들, 좁은 골목에 굵은 모래알이 성기게 남은 계단길, 마을 공동우물, 원색으로 빛나는 파란색 건물, 골목길을 뛰어 다니는 아이들...

순수한 골목길을 나와 식당으로 향한다. 이제 남은 건 우리를 기다리는 흑산도 특산품 ‘흑산도 홍어’다.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
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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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