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부곡사
여행-부곡사
  • 장태동
  • 승인 2007.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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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것들이 여행자에게 말을 건넨다

가파른 것 같지 않았는데 벌써 등줄기에 땀이 구른다. 사천왕상이 지키고 있는 천왕문에 들어섰다. 아직 천년 전설 무량수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더 가야 할까. 공중에 떠 있는 돌에 관한 전설이 전해진다는 부석사, 혹시 절 그 자체가 공중에 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사람이 쉽게 다가가지 못할 정토의 세계를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턱 높은 계단을 오를 때마다 점점 공중으로 오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계단을 올라 마당이 있고 약수터와 유물전시관이 있다. 마당 왼쪽으로는 속세와 연을 끊고 살아가는 수도승들의 움막이 보인다. 아무나 들어 갈 수 없는 곳. 들어가는 문도 보이지 않는다.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는, 그래서 진리를 얻고 새 세상에 눈을 뜨게 되는 득도의 과정을 생각하니 아찔하다. 일상에 얽매여 아침에 살아났다가 저녁때 죽어가는 하루살이 인생, 반복되는 일상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토리 키 재는 인생을 생각해 본다. 벗어 날 수 없는 길, 태어난 것 자체가 죄이며 고통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 순간의 즐거움에 모든 고통을 잊어버리는 인간의 길. 점점 작아지는 나를 본다. 아직 무량수전은 보이지 않는다. 누각 마루바닥 밑으로 계단이 나 있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고 나니 거기에 천년 전설 무량수전이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봉황의 날개 깃 같은 기와 처마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모습이다. 올려 보는 기와지붕은 살아 있는 봉황이 날개 짓을 하는 모습이다. 천년에 한번 눈을 뜨고, 한 번의 날개 짓으로 만리를 오른다는 봉황의 모습이었다. 금방이라도 살아서 날아 갈 것 같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섰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기 전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무량수전, 결국 마지막까지 힘겹게 계단을 올라서야 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말 그대로, 상상 한 그대로였다. 천년 기둥은 곧 꽃을 피워낼 것 같이 물이 오른, 살아 있는 거목 같았다. 굽어진 기둥에 날아오르는 듯한 기와지붕도 살아 있는 봉황, 그 모양이었다.

무량수전 왼쪽에 뜬 돌의 설화가 담긴 `부석(浮石)`이 있다. 바위가 아래 부분과 윗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그 둘이 서로 붙어 있지 않고 떠 있다고 해서 `부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그래서 이 절의 이름도 부석사이며 부석사가 있는 마을 이름도 부석리였다.

무량수전 오른편으로 산길을 오르다보면 조사당이 있고 그곳에 의상대사 지팡이가 철조망의 보호를 받고 있다. 지팡이 나무는 의상대사가 절을 다 짓고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거기서 꽃이 피었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의심하지 않으며, 나무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듯 속세의 죄를 씻어 줄 꽃을 피운다. 절 마당에 푸르른 봄의 산하를 품에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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