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판 품질표시제 논란, 최선은 무엇인가
합판 품질표시제 논란, 최선은 무엇인가
  • 박광윤 기자
  • 승인 2012.1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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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은 지난 9월21일과 11월29일 두 차례에 걸쳐 ‘합판 품질표시제도’에 관한 설명회를 열었다. 특히 두 번째 설명회에서는 합판수입유통업체들의 반론이 다양하게 표출됐는데, 산림청은 이 자리에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수입업체들의 의견을 충분히 검토하겠다면서 수정 가능성을 비췄다.


이에 본지는 국내 합판생산업체의 입장을 대신해 한국합판보드협회 정하현 이사를, 합판수입업체의 입장을 대신해 CIMAC 정을수 대표를 만나보았다. 산림청 입장도 함께 들으려 했으나 아직 결정 사항이 없다고 해 지면에 담지 못했다. - 편집자 주

 

 

품질표시는 소비자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
법 지키는 업체만 피해봐, 관행 고치는 큰 노력 필요


한국합판보드협회 정 하 현 이사

 

박광윤 품질표시제도 취지에는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그러나 2차 설명회 때 수입업체들로부터 몇 가지 반론들이 제기됐다. 특히 낱장 표기 문제가 첨예했다.

정하현 낱장 표기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측면 표기’를 하겠다는 것이 수입업체들의 요구였다. 그러나 양면을 쓰는 합판은 측면 표기를 하더라도 그 외에는 앞면이나 뒷면에 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 측면 표기에는 표시 내용이 모두 표기 되기 힘들고 특히 6㎜ 이하 합판의 경우 측면 표기가 힘들다.

사실 합판의 품질표시에 관한 법이 1996년부터 시행됐는데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무단횡단을 하는데 정부가 방관해 온 것이다. 이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유예기간을 둔 것이고, 시대에 맞게 현실치를 반영 개정한 것이 이번 품질표시제 시행의 본질이라고 본다. 또한 현재 일본이나 유럽뿐만 아니라 대만, 미국 등도 낱장 표기를 하고 있다.

 

잘못된 관례 바로잡는 일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시행을 하고 있다면 수입업체들이 말하는 비관세장벽이라는 주장은 틀린 것인가.

그것보다 지금 관례적인 무단횡단이 문제의 본질이다. 관리 감독의 소홀로 법을 지키는 국내 산업만 위축되고 있는데, 이를 바로 잡아줘야 한다.

낱장이 아니라 번들 표시면 족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건축업체나 가구공장에 대한 단속 책임을 수입업체에 전가한다는 불만도 있었다. 수입업자가 정확히 품질표시를 해도 사용자가 속일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확실하게 낱장 표기를 해야 한다. 수입유통업자가 이를 미연에 방지할 책임이 있다. 번들로만 표시해서는 현장에서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당연히 낱장 표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수입자’ 표시가 필요 없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에서 중간 유통자를 쓰는 것과 같은 격이라는 말이다.

국내에서 생산된 것은 생산업체에서 책임져야 하고 수입된 제품은 수입업체에서 책임져야 한다. 중간 유통 과정에서 출처가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도록 ‘생산업체’와 ‘수입업체’는 반드시 표기돼야 한다.

 

법 지키는 국내 업체만 피해 보는 실정
국내 업체도 지금까지 안지켜왔다는 반론이 있었다.

그건 오해다. 수입업체들은 포레스코의 합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건 포레스코의 ‘수입합판’이었다. 포레스코는 합판을 생산하지 않으며 협회 회원사도 아니다. 국내 5개 생산업체 중 4개가 우리 협회 회원사인데 지금까지 KS마크와 품질표시를 다 해오고 있다. 그리고 수입합판 중 중국산이 원산지 표시가 제대로 되지 않아 특히 문제가 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산은 어느 정도 원산지 표시를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같은 경우는 이미 미국으로 수출할 때 미국 요구에 맞춰 품질표시를 해서 수출하고 있다.

취지가 좋더라도 수입업체들에겐 힘든 점이 있지 않겠나.

물론 피우던 담배를 끊으라고 하면 힘들다. 그러나 갑자기 시행하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몇 달 계도 기간이 있는데, 그동안 준비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게다가 국내 산업이 힘들어지고 있는 점도 같이 봐야 한다. 국내 생산업체는 법을 지키고 있으므로 형평성에 있어서도 문제다. 규정이 이미 있는데 지금까지 무임승차를 한 것이고, 고칠 관행을 고치지 못해 국내 산업이 상처를 입었다. 품질표시가 안된 저가 제품에 밀려 경쟁이 심해지면서 지속적으로 축소됐다. 국내 합판산업이 사라지면 건설, 가구, 인테리어 업자들이 손해를 보고,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임업의 근원적 뿌리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합판산업은 과거 1960~70년대 우리나라 수출 주도 산업으로서 1965년에서 1971년까지는 수출 비중이 10% 이상이었다. 외국에서 수입한 원목을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우리나라에 외화가 없을 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품질표시, 소비자 위한 기본적인 실천
전통적으로 중요한 산업이고 앞으로도 포지션이 매우 중요하므로 국내 산업 보호적 측면에서도 법 시행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제품의 품질표시는 국내 산업 보호 차원을 떠나 소비자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합판은 건설공사나 건축 내장재, 포장재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고 용도에 따라 품질 기준이 다르게 정해져 있다. 이 때문에 오래 전부터 합판에 대한 품질표시를 의무화했는데 이것이 방치돼 왔다.

일본은 JAS규격 없이는 일본에 진입할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다. 여기에 자국 합판산업을 살리기 위해 기계설비에 50%, 원자재 운송료에 1㎥당 1000~2000엔을 보조해 주고 있다. 2000년 초에는 Sick House 대책으로 E0 제품 이상은 사실상 사용이 불가능하게 돼 저급 중국산 제품은 수입될 수 없는 구조이다. 또한 정부와 업계, 연구원이 공동으로 구조용 합판 등 규격 개발로 수요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합판산업은 전후방산업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방산업인 임업적 측면에서 보면 1960년대와 1970년대 조림한 산림자원이 현재 수익간벌 단계에 도달해 있는데, 이러한 간벌재를 가장 고부가가치로 활용할 수 있는 산업이 바로 합판이다. 또한 합판생산에서 나오는 부산물은 MDF와 파티클보드의 원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관련 산업의 경쟁력에도 크게 기여한다. 우리도 일본의 합판산업 정책을 벤치마킹해 향후 국산재 이용시대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 보호 취지에 동의, 현실적 시행이 핵심
취지와 동떨어진 ‘표면 표기’는 다른 의도 의심돼

 

CIMAC 정 을 수 대표

박광윤 얼마 전 열렸던 합판품질표시제 설명회에서 합판수입업체들의 조직적인 반발이 있었다. 특히 합판 낱장 표기에 대해 반발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을수
낱장 표기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다. 굳이 낱장 표기를 해야 한다면 현실적으로 하자는 말이었다. ‘측면 표기’가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입장이었다. 우선 이번 품질표시제도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냐, 국내산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냐. 산림청은 아마 ‘소비자 보호’가 명분일 것이다. ‘국내 산업 보호’는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국내 합판생산업체들은 겉으론 명분이 ‘소비자’지만 실제 관심은 12㎜ 이상 합판, 즉 자기 산업 보호에 있을 것이다. 나도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에는 이의가 없다. 그런데 소비자 보호를 위한 것이라면 ‘측면 표기’를 해도 되는 것 아닌가.

합판을 한 장만 가져다 쓰는 사람이 있나? 모두 번들로 가져다 쓴다. 측면 표기해도 다 보인다. 사실 규격이나 제조년월일, 생산자 표시는 중요하지 않다. 그건 이미 번들에 찍혀서 온다. 그래서 번들에 ‘made in china’, ‘수입자명’ 등을 찍고, 측면에는 ‘E1 BBCC’ 정도로 등급 표기하면 완벽하다고 본다. 그러나 굳이 이것들을 각 장마다 찍으라고 하면 그것도 할 수 있다. 다만 측면에 표기하겠다는 것이다.

 

‘측면 표기’는 양보 못해
생산지, 수입자 등도 각 장마다 표시 하라면 다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다만 ‘측면 표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일본도 표면에 다 표기하진 않는다. 법적인 사항이 아니다. 그리고 일본은 4×8 사이즈를 쓰지 않는다. 3×6 사이즈 중 작은 사이즈인 900×1800(3×6) 또는 945×1840(3×6)를 사용한다. 우리나라는 910×1820(3×6)를 쓰고 있어서 일본과는 호환이 안된다. 한국과 호환이 되는 나라는 대만, 홍콩, 중동, 미국, 유럽이다.

그렇지만 미국도 표기하고 있다고 산림청 사례 발표가 있었다.

아니다. 대만도 일부만 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가 표면 표기를 안하고 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미국이나 일본은 주문 생산을 한다. 말레이시아나 중국에서 일본이나 미국으로 수출하는 합판은 주문에 의해 생산을 하기 때문에 별도 표면 표기가 가능하다.

 

낱장 표기, 가격만 상승
한국이 가져오는 CP(콘크리트 패널)용 합판은 가격이 450불이지만 일본은 650불이다 1.5배나 가격이 높다. 솔직히 명품에는 충분히 표면 표기가 가능하다. 말레이시아나 중국 업체들이 싫어하면서도 표기하는 이유는 원가에 그 가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450불짜리에 측면 표기를 해 달라고 하면 30불은 더 요청을 할 것이다.

좀 비용이 들더라도 요구하면 되지 않는가.

결국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 제도 취지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제도 취지가 소비자 비용을 더 부담하더라도 품질이 좋은 걸 쓰게 하자는 것도 있지 않은가.

품질은 나아지지 않는다. 가격만 비싸진다. 지금과 같은 똑같은 품질의 합판이 들어오면서 가격만 비싸지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보기에 한국은 고품질 합판에 대한 선택이 없다. 가령 일본은 ‘오버레이 등급’을 쓰고, 한국은 그보다 낮은 ‘BBCC’ 등급을 수입한다. 한국은 오버레이 등급을 수입안한지 10년이 됐다.

 

시장 체질 변화 없인 약효 없어
그건 국내 가격 경쟁 때문이다. 만약 제도화가 된다면 달라지지 않겠는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품질은 떨어져도 가격이 싼 제품이 비싼 걸 무너뜨리는 것이 한국시장이다. 한국시장은 본질적으로 일본과 틀리다. 일본은 품질 위주 시장이지만 한국은 가격 위주 시장이다. 사실 국내 업체가 수입품보다 더 좋은 품질을 만들어 차별화 했어야 했다. 그걸 못하면서 국내 산업이 살아남기 위해 가격경쟁력이 없다고 비관세 장벽을 만들면 안된다. 미국은 법적 제도가 아니라 자체적인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주문을 하는 것이다. 품질을 최고로 유지하기 위해 검수를 철저히 하고, 자기 브랜드를 만드는 것인데 한국은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제도가 아닌 시장 자율에 의해 움직인다는 말인데, 그렇다고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지 않으면 더 악화되는 것이 아닌가.

말을 물가에 끌고 간다고 물을 먹지 않는다. 말이 물을 먹고 싶어야 먹는 것이다. 이미 법이 있었는데 잘 안된 것은 현실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합판을 생산해서 창고에 낱장으로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패킹을 해놓는데, 이미 그 안에는 생산이력이 있고, 한국에서 오더가 오면 겉에 수입자를 표시해서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한국에서 각 장마다 뒷면에 표기해 달라고 하면 그건 기계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일일이 수작업으로 벗겨서 표면에 표기해야 한다.

산림청은 앞으로 단속 강화를 통해 제도를 뿌리내리겠다는 입장이다.

동참하겠다. 본질적인 의도가 소비자 보호를 위한 것이라면 반대하지 않으며, 소비자 보호를 위한 것이라면 측면 표기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꼭 표면을 고집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국내생산업체도 수입합판을 막아서 국내 공급량을 높이겠다는 발상을 접고 품질과 가격 차별화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이런 식으로는 국내합판생산업체들도 더 힘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