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강화도
여행-강화도
  • 장태동
  • 승인 2007.05.3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의 심장을 지켜라, 아! 강화여


강화의 자연은 다른 곳과 다르다. 자연 그대로의 기름진 흙빛과 개발되지 않은 자연의 거친 숨소리가 강화 전역에 퍼져 있다. 이곳에서는 바람도 가볍지 않다. 강화도는 단군성조가 나라를 연 역사와 함께 하며 조선말 서양 열강의 침략에 온몸을 던져 싸운 항쟁의 역사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간직하고 있다. 이런 때문인지 강화의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강화해협을 통해 한강을 거슬러 조선을 침략하려는 서양 열강의 함선과의 첫 전투는 초지진에서 벌어졌다. 1866년 병인양요, 로즈가 이끄는 프랑스군 극동함대가 천주교를 전파하려는 자국의 신부 및 천주교도들을 탄압했다는 구실로 포문을 열었다. 1871년에는 미국의 로저스사령관이 이끄는 함대와의 일전, 이른바 신미양요의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그로부터 4년 뒤 일본군함 운양호와 치열한 격전을 벌인 곳도 초지진이다. 비교도 안 되는 무기의 화력차이와 군대의 규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함선과 미국의 해병대를 막아낸 조선의 병사들이었다. 그러나 대대적인 일본의 함대 앞에 조선은 강제적으로 강화도 조약을 맺었고 그 결과 인천과 원산 부산항을 개항하게 됐다. 지금도 초지진에 가면 당시 사용했던 조선의 대포 ‘홍이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또한 초지닌 성벽 밖에는 당시의 치열한 전투를 되새기게 하는 포탄 자욱이 남아 있다. 초지진에서 해협을 따라 2킬로미터 정도 북으로 오르면 덕진진이 나온다. 이곳은 원래 고려시대에 강화해협을 지키던 요충지였다. 성곽은 조선 효종 7년(1656)에 축조된 것이며 이후 조선 숙종 5년(1679)에 축조한 덕진돈대, 남장포대, 덕진포대를 덕진진 안에 포함했다. 덕진진에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포대 중 가장 큰 규모의 남장포대가 있다. 15기의 대포가 불을 뿜으며 열강의 함선을 격파했다. 이곳 또한 치열했던 전투를 말해주는 증거가 남아 있다. 남장포대를 지나면 덕진돈대가 나오는데, 돈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에 비석이 하나 서 있다.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이 비석은 일종의 척화비이다. 대원군의 명으로 이곳에 세워졌다. 비석의 모서리를 보면 깨진 곳이 있는데 전투 당시 포탄에 맞은 흔적이다.
갑곶돈대 내에 강화역사관이 있다. 강화역사관은 개국시원, 강화의 문화와 전쟁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강화의 역사적 유물들을 모아 놓았다. 역사관 앞뜰에는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배를 복원했다. 돈대에 배치된 대포 또한 전투당시 실제 사용한 것과 똑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강화에는 이 밖에도 수십개의 포대와 돈대와 진지들이 바다 해안선을 따라 자리 잡고 있다. 고려시대 그 이전부터 이곳에 군대를 배치하고 요새를 만들었던 것을 보면 삼엄하고 비장했던 역사가 온 몸으로 전해진다.

Tag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