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두식 칼럼 '살다보니' | 효도와 내리사랑의 힘든 여정
신두식 칼럼 '살다보니' | 효도와 내리사랑의 힘든 여정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5.10.3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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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식 바이오매스플랫폼 대표.
신두식 바이오매스플랫폼 대표.

60대 중반 A씨는 직장에서 은퇴한 지 10년이 넘었다. 운이 좋게도 은퇴 후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그럭저럭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 적당한 경제력도 확보되었고, 자녀들이 출가해 손주와 손녀까지 태어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여기까지의 삶은 그야말로 행복 그 자체다. 어찌 보면 치열한 서울살이 속에서 밀려나지 않고 살아남은 흔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건강하실 것만 같던 양가 모친(80대 후반~90대)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걱정이 많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던 시절 오랫동안 돌봐주신 부모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연민이 있었지만, 병으로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움이 크다. 어떻게 해야 부모님의 남은 삶이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지만 뚜렷한 방법을 찾기 어렵다.

주변 지인이나 친구들로부터 노모 병간호의 어려움을 들은 적은 있지만 그때는 남의 일처럼 흘려들었을 뿐이었다. 막상 자신이 그 상황에 처하고 나니 현실적인 대응이 막막하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 봉양의 의무’라는 기본적인 윤리적 사명을 배워온 A씨이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자신을 완전히 희생해 부모의 건강을 돌보고 수명을 연장하는 일에 온전히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그로 인해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죄책감이 든다. 부모님께 적극적으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다 보니 문득 20여 년 후 자신이 늙고 병들었을 때 과연 자식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스며든다.

한편으로는 아래 세대, 즉 손주를 키우는 자녀들을 돕는 일도 크다. 자녀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겪는 어려움과 스트레스를 덜어주어 가정이 안정되고 자녀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로서의 ‘내리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실제로 요즘의 육아는 과거 A씨가 자녀를 키우던 시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놀아주는 것은 물론 인격체로 존중하며 대화로 소통해야 하는 등 신체적 정신적 부담이 크다. 

그러다 보니 아들과 며느리는 믿을 수 있는 부모님의 도움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주말이면 “살려주세요”라는 듯한 묵시적인 신호가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거절할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손주를 돌보는 일은 때로 체력적으로 힘들고 피로감을 주지만 동시에 손주·손녀의 성장을 지켜보는 기쁨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을 선사한다. 삶의 활력과 의미가 생기고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것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행복감이다.

60세 이전까지만 해도 자녀 뒷바라지에서 벗어나 ‘이젠 나를 위한 홀가분한 삶’을 살고 싶었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위로는 노모의 건강을 걱정하고 아래로는 자식의 육아를 돕는 ‘낀 세대’의 삶이 계속된다.

“내 삶을 돌려다오”라고 외치고 싶다. 하지만 이것 또한 인생의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아들 손주 세대 역시 언젠가 겪게 될 과정이다. 아마도 세월이 흘러 완전한 노인이 되었을 때는, 지금 함께하는 가족에게 더욱 깊은 감사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늘의 노력이 훗날 덜 외로운 노후로 이어지길 희망해 본다.  /나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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