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카메라타’. 음악과 책을 사랑하는 건축주 부부가 은퇴 이후 이 집이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지역 사람들과 음악을 함께 나누는 삶의 무대가 되기를 바랐다. ‘카메라타(Camerata)’는 원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예술과 지성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음악과 문학, 철학을 토론하던 작은 모임에서 유래된 말이다.
요즘 말로 ‘음악 클럽’ 혹은 ‘문화 살롱’에 가까운 개념이다. 건축주는 이 전통적인 개념을 현대적 주거 공간에 이식하고자 했다. 지인들과 함께 음악을 듣고, 책을 나누고, 사유를 공유하는 삶을 꿈꾼 것이다. ‘함양 카메라타’는 바로 그런 건축주 부부의 삶을 위한 집이자, 그들이 꿈꾸는 은퇴 후 일상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건축주는 교정직 공무원으로 오랜 공직 생활을 해온 남편과 책과 조용한 일상을 사랑하는 아내다. 집을 지을 당시 남편은 은퇴를 2년 앞두고 있었고 아내와 함께 자연 속에서 조용하고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기 위한 공간을 고민하던 중 함양에 터를 잡게 되었다.
이웃과 함께 보내는 조용하고 풍요로운 노후
건축주는 은퇴를 앞두고 아내와 함께 자연 속에서 조용하고 풍요로운 노후를 보내기 위한 공간을 꿈꿨다. 단순히 쉴 수 있는 집이 아니라 사람들과 음악을 듣고, 문학과 철학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삶의 무대가 되기를 바랐다. 
남편은 음악을 깊이 사랑하는 애호가다. 클래식부터 재즈까지 다양한 장르의 LP와 CD를 상당수 보유하고 있으며 오디오 풀세트를 갖춘 전용 음악 감상 공간을 오랫동안 꿈꿔왔다.
아내는 동화책과 문학을 좋아하는 독서가다. 따사로운 햇살이 드는 실내 공간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책과 함께 보내는 삶을 소망했다. 이 집은 바로 이런 두 사람의 취향과 인생의 방향을 고스란히 담아낸 결과물이다.
단순한 은퇴 후 주택이 아닌 부부가 각자의 방식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누리고, 손님들과 나누며 살아갈 수 있는 작고 깊은 문화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예쁜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집
이런 니즈를 파악한 건축가는 처음 기획 단계부터 건축주에게 외관에 집중하기보다 실내의 안락함과 기능성에 초점을 맞추자고 제안했다. 
여전히 많은 예비 건축주들이 ‘예쁜 집’에 많은 관심과 비용을 쏟는 반면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게 될 실내 공간이야말로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보았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건축가는 돈을 써야 할 곳과 아껴야 할 곳을 분명히 구분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장식보다는 실제 거주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구조, 단열, 채광, 동선 등에 집중했고, 그만큼 실내 공간은 따뜻하고 정제된 밀도로 채워졌다.
또 이 집은 외딴 시골 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지어졌기 때문에 사후 유지보수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단순하고 견고한 구조와 재료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다. 매일 손이 가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정적이고 오랜 시간 변함없이 편안함을 유지해줄 수 있는 집이 필요했다.
결국 이 집은 건축주 부부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삶’을 위해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도 가장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해 만들어 낸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지리산 자락 아래 1층처럼 보이는 2층 박공지붕 집
집은 경상남도 함양, 지리산 자락 아래 작은 산촌마을의 가장 높은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지리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펼쳐진 이곳은 지리산 둘레 길과 연결된 길목에 있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총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조용한 마을을 따라 약 2km 정도 산 쪽으로 올라가면 나지막한 중턱에 단정한 박공지붕의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함양 카메라타’다.
집은 외관의 화려함보다는 실용성과 유지관리의 용이성에 초점을 맞춘 결과 직사각형 평면에 단순한 박공지붕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택했다. 눈에 띄는 장식 없이 주변 풍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디자인'보다는 '기능'을 우선한 공간 철학을 그대로 드러냈다. 결국 이 집은 특별한 지형 위에 특별한 의도로 지어진 주택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 조건과 삶의 방식에 충실하게 반응한 결과물이다.
건축주는 1년 동안 소형주택을 임대해 집터와 친해졌다
몇 년 후 공직에서 은퇴한 뒤 여생을 보낼 집을 짓기 위해 부부는 오랜 시간 전국을 다니며 터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수년 간의 고민 끝에 마침내 마음이 닿은 곳이 바로 이곳, 경남 함양의 지리산 자락 아래 자리한 대지였다. 
집이 완성되기 전 1년 동안 부부는 근처 소형주택을 임대해 매주 주말마다 이곳에 내려와 지내며 ‘집터와 친해지기’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 단순히 땅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앞으로의 삶이 깃들 공간과 천천히 호흡을 맞춰간 셈이다.
그 1년 동안 임시 거주하며 대지의 사계절을 직접 경험한 건축주는 이곳의 진면목에 더욱 깊이 매료되었다. 볕이 잘 들고 계절마다 풍경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땅. 걸을 때마다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주었고 어느새 ‘머무르고 싶은 땅’이 되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약 2km 정도 올라가야 하는 좁고 굽이진 산길 끝 계단식으로 조성된 밭 중 하나의 필지를 집터로 삼았다. 대지의 사방이 트여 있고 마을 쪽을 바라보면 지리산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탁 트인 조망이 인상적이다. 대지 뒤편으로는 지리산 둘레길이 이어져 있어 산책을 즐기기에도 더없이 좋은 입지다.
배경이 되는 집, ‘단순함이 가장 실용적이다’
건물은 2층 규모이지만 지붕 경사를 깊게 설계해 외부에서는 1층처럼 보이도록 계획했다. 이는 굳이 건물을 높이지 않더라도 충분한 조망이 확보되는 지형적 장점 덕분이다. 무엇보다 주변의 자연 풍경을 해치지 않기 위한 배려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도드라지기보다 배경처럼 머무는 집, 그 조용한 태도가 바로 이 대지를 마주하는 건축가의 자세였다. 
집의 설계는 ‘단순함이 가장 실용적이다’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시작됐다. 외관 디자인은 철저히 단순화하여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냈고 그로 인해 시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하자 요인을 줄이고 공사비를 효과적으로 절감할 수 있었다.
입주 후 유지관리 또한 간편하도록 초기에 계획 단계에서부터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 건축가는 처음부터 ‘외형보다 실내 공간에 집중하자’는 제안을 했고 건축주 부부는 이에 흔쾌히 동의했다.
단순한 외형, 저렴하면서도 내구성 있는 외장 재료와 지붕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더 많은 예산을 건강하고 안락한 실내 공간 조성에 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음악이 기둥이 되고 사유가 벽이 된 집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1층은 개방형 구조의 거실과 주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2층까지 연결되는 박공지붕의 형태를 그대로 오픈시켜 천장을 높게 확보함으로써 공간에 시각적 연속성과 개방감을 더했다. 
이로 인해 공간 어디에서도 지루함 없이 유기적인 흐름이 유지됐다. 거실의 코너에는 장작 벽난로를 설치해 단순한 난방 기능을 넘어 공간의 중심이자 정서적 포인트로 작용하게 했다. 벽난로 앞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시간이 이 집에서 가장 평화로운 순간이 되기를 바랐다.
또한 거실 오른쪽에는 2층으로 이어지는 다소 가파른 계단이 놓여 있는데 그 옆 벽면에는 건축주의 오랜 로망이었던 책꽂이를 짜 넣어 계단참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작고 아늑한 독서 공간으로 연출했다.
이처럼 이 집은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기능성과 감성을 담아낸 설계로 건축주의 삶의 방식과 취향이 고스란히 녹아든 집이라 할 수 있다.
건강하고 안락한 ‘삶의 공간’ 목재 인테리어
집의 실내 인테리어는 건강하고 안락한 ‘삶의 공간’을 지향했다. 심플한 외관과 가성비 높은 외장재를 통해 절약한 예산은 실내에 집중적으로 투입되었다. 그 결과 질 좋은 마감재와 자연 소재를 적극적으로 실내에 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바닥에는 따뜻한 질감의 오크 원목마루, 벽에는 친환경 종이 벽지, 거실과 주방의 천장은 은은한 표정이 살아있는 목재 루버로 마감했다.
문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침실 도어는 향이 은은한 홍송(레드파인) 원목 문을 사용해 사용할수록 더 깊이 있는 공간으로 완성되도록 설계했다. 욕실 천장조차도 일반적인 PVC 재료 대신 편백나무 루버로 마감해 집 전체가 유해물질 없이 건강한 공기로 유지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보기 좋은 집이 아니라 살고 싶은 집
건축주 부부는 입주 후 한동안 매주 손님을 맞이해야 할 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손님들의 반응이 하나같이 비슷했다는 점이다. 
건축주에 따르면 마을 입구부터 가파른 길을 올라오며 집에 대한 기대를 점점 높이던 손님들은 막상 심플한 외관의 집을 보고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현관을 열고 중문을 지나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눈빛이 달라진다는 거였다.
“밖에서 본 집과는 너무 다르다.”, “이런 공간이 숨어 있었을 줄이야.”라는 감탄이 이어졌고 그들은 이후 집 안에서 머무는 시간을 더 즐겼다고 한다.
건축가는 처음부터 이 집에서 그런 반전의 인상을 노렸다. 외관은 평범해도 실내는 다이내믹하고 따뜻하게 누구든 오래 머물고 싶은 집. 그 철저한 기획 덕분에 지금의 집은 ‘보기 좋은 집’이 아니라 ‘살고 싶은 집’이 되었다.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이 집은 EBS 건축탐구 집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될 기회를 얻었다. 사전 답사를 위해 집을 방문한 방송 작가는 건축가에게 자기가 느꼈던 감정들을 다음과 같이 쏟아내었다.
“건축탐구 집 프로그램 작가로 수많은 집을 사전에 답사했었는데, 대부분은 30분이 지나면 밖으로 나오고 싶어졌던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이 집은 4시간 넘게 머물렀는데도 불편함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좀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건축가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 집의 첫 대지 답사 때를 떠올렸다. 처음 이 땅을 찾았을 때,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는 ‘오래 머물고 싶은 집’이 지어지면 좋겠다는 확신. 그때의 직감이 시간이 흘러 한 작가의 감상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감사했다”고 말한다.
‘좋은 집’이란 어쩌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안에 머무는 순간, 그 집이 말해주는 것들로 채워지는 공간이 아닐까. 이 집이 앞으로도 그렇게 사람을 오래 머물게 하는 이야기 많은 집으로 남을 것이다. /나무신문
건축개요
위치▷경남 함양군 마천면
대지면적▷약 200평  
건물규모▷지상 2층  
구조▷경량목구조 
규모▷주택 127㎡ / 38.45py + 음악실 15㎡ / 4.5py  
단열재▷그라스울단열재
마감재▷외부 : 시멘트사이딩+파벽돌 
지붕 : 아스팔트 슁글          
창호 : 독일식 시스템 창호
천장 : 친환경 종이벽지+목재 루버
벽지 : 친환경 종이벽지
마루 : 원목마루
사진작가▷함영인
건축가 소개 | 최재철 초이스건축 대표 
영국 드몽포트(De Montfort)대학교와 에딘버러 네이피어(Edinburgh Napier) 대학교에서 인테리어 디자인 및 목재산업경영학 석사 학위를 각각 수료했다. 이후 영국 대형목조건축회사 선임디자이너로 일하며 단독주택, 5층 공동주택, 학교, 호텔, 리조트 등 다양한 목조건축 프로젝트의 설계 및 시공 관리를 총괄했다. 인하대학교 건축대학원 외 5개 학교에서 겸임교수로 목조주택 이론을 가르쳤으며, 국내 23개 대학교 건축관련 학과에서 목조주택 설계·시공 워크샵을 진행했다. 미국공인 홈인스펙터 자격을 갖고 있다. 현재 초이스건축을 운영하며 목조건축에 관한 설계 및 시공 컨설팅, 기술서적 출간, 전문인력양성 교육, 기술 통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집짓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101’, ‘한눈에 보는 목조주택’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