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에게 듣는다 | 영림목재(주) 이승환 대표
리더에게 듣는다 | 영림목재(주) 이승환 대표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5.06.2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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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목조건축의 미래 “이렇게 하면 됩니다”
이승환 대표.
이승환 대표.

조건축의 시대가 열린다고 말하지만 그 흐름을 실제로 짜맞추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구조해석과 설계를 조율하며 건축 초기 단계에서부터 ‘될 것’과 ‘안 될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 또 ‘안 될 것’을 ‘될 것’으로 바꾸는 연금술사, 이승환 영림목재 대표다. 그는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목조건축 산업의 방향을 이끄는 조타수다. <편집자 주>

영림목재는 ‘특수목의 역사’로 불릴 만큼 오래된 브랜드입니다. 그런데 목조건축과는 어쩐지 거리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두 분야는 어떤 맥락에서 연결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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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저희가 주로 다뤄온 건 단단하고 강도가 높은 고급 수입 목재들이었고, 오랫동안 그 분야에서 ‘특수목 전문’으로 인식돼 왔죠. 하지만 본질을 들여다보면 저희가 해온 건 늘 목재의 새로운 용도를 개발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전엔 데크재였고, 또 어떤 때는 고급 인테리어재나 가구재였습니다. 결국 우리가 다뤄온 재료는 늘 환경과 조건에 맞춰 ‘쓸 수 있는 목재’로 바꾸는 것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목조건축은 단순히 분야가 다른 게 아니라 저희가 지향해온 목재 응용의 가장 확장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그 흐름은 언제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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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저희 이경호 회장께서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던 시기로 보는 게 타당하리라고 봅니다. 그때부터 일본 각지의 목재 가공 공장, 프리컷 설비, 목조건축 현장을 직접 보고 다니셨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이건 반드시 한국에도 들어와야 한다’는 생각을 품으셨던 겁니다. 그 시절엔 다소 이른 이야기였지만, 회장님은 한국 목재산업의 다음 흐름을 목조건축으로 보고 계셨던 것 같아요. 목재라는 재료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빠르게 감지한 셈이었죠.

대표님께서도 이런 흐름 속에서 목조건축 눈여겨보신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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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저는 처음부터 건축을 염두에 두고 공부한 건 아니었어요. 학부에선 경영학을 전공했고, 이전엔 이과 쪽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제가 좋아했던 건 신소재, 그러니까 금속이나 세라믹, 플라스틱 같은 재료들이었죠.

목재 역시 저에게는 그중 하나였고요. 그런데 일본 동경대 목재재료학 연구실에 들어가 보니 분위기가 전혀 달랐어요. 연구실의 대부분 인원이 목조건축의 구조 실험을 하고 있었고, 저는 처음엔 단순히 도와주는 역할이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 구조라는 게 단순한 수치 계산이 아니라 재료의 성질과 설계가 맞물리는 지점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재료보다 구조 쪽에 더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승환  영림목재(주) 대표.
이승환 영림목재(주) 대표.

그게 학문적으로도 진로가 바뀌는 계기가 됐던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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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석사 논문은 재료 쪽으로 마무리했지만 그 무렵부터는 구조나 건축 쪽으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마침 일본에선 ‘공공건축물 목조건축 의무화’ 법안이 추진되던 시기였고, 제가 속했던 연구실 교수님이 그 법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고 계셨습니다. 그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한국도 언젠가는 이런 흐름을 따라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는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명확해졌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는 유럽에서도 다양한 사례를 직접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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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 일본에서 진행된 패시브하우스·CLT 견학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그때 한국인은 저 혼자였어요.

오스트리아, 스위스, 발트3국 등 유럽 여러 지역을 돌아보며 다양한 구조 시스템과 건축 방식을 접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단열 성능이 탁월한 목재 창호와 콘크리트 기둥이 결합된 CLT 구조물들이었어요.

단순히 ‘목재로 지은 집’이 아니라 구조 그 자체가 공학적으로 정교하다는 인상을 받았죠. 그때부터 저는 ‘전체 구조’보다 ‘요소기술’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요소기술’이라는 표현은 아직 우리나라 현장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일 수도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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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씀드리면 구조를 설계 가능하게 만드는 단위 기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접합부, 벽체, 슬라브, 창호, 이런 것들을 각각 기술적으로 정리해서 설계사들이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거죠.

중목구조나 하이브리드 구조는 결국 구조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실현이 안 됩니다. 그걸 도면에서 해석할 수 있어야 하고 구조적으로 무리 없는 방식으로 연결되어야 하죠. 저는 그걸 ‘엘레멘트(element) 설계’라고 부릅니다. 디자인이 아무리 뛰어나도 구조적으로 성립하지 않으면 건축은 실현되지 않거든요.

‘요소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승환 대표.
‘요소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승환 대표.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 한국 목조건축 산업의 현실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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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갈 길이 먼 게 사실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표준화입니다. 일본은 기둥 간격이 910㎜, 구조재는 105각 같은 기준이 정착돼 있어서 프리컷 설계나 시공이 훨씬 수월합니다.

반면 한국은 아직도 구조재의 규격이 들쑥날쑥하고 설계 기준도 현장마다 달라요. 그 결과 자재 단가는 오르고 구조 안전성 확보도 어려워지죠. 그 모든 부담이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구조가 됩니다.

소재적인 측면, 특히 국산재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어떻게 체감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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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송 같은 국산재의 가능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건조가 어렵고 유통 구조가 비효율적입니다. 예전에는 생목을 들여다가 직접 가공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수입 건조재보다 오히려 단가가 높은 경우도 많습니다.

수종이 바뀌면 철물도 다시 설계해야 하고 구조 실험도 다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국산재의 품질보다 ‘어떻게 구조적으로 쓸 수 있느냐’를 먼저 정리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적인 지원 방향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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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중 하나는 건축주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가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은 목조건축을 하고 싶어도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예전에 일본에선 목재를 써서 집을 지으면 포인트가 지급됐고, 그 포인트로 가전제품 등을 살 수 있었어요. 목조주택을 지으면 포인트를 받아서, 그것으로 냉장고도 사고 텔레비전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보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승환 대표.
이승환 대표.

지금 하시는 일은 단순한 자재 공급을 넘어서 구조해석까지 포함되는 작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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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는 않습니다. 직접 구조해석을 하지는 않고 경제적인 건축물이 되거나, 대공간이나 넒은 스판의 공간에 철물들이 적절하게 쓰이고 개발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입니다. 구조해석은 구조기술사의 역할입니다.

저희는 프로젝트의 설계 초기부터 참여해서 구조를 함께 검토합니다. 기둥 간격, 보의 길이, 창호 위치 같은 걸 설계 단계에서 조정하면서 구조 해석을 돕는 거죠.

캐드 도면에 저희 모델을 덧입혀서 구조가 맞는지 확인하고 필요하면 트러스나 라멘 구조도 제안합니다. 이렇게 하면 설계도 안정되고 현장 시공도 훨씬 수월해집니다.

‘이건 안 됩니다’가 아니라, ‘이렇게 하면 가능합니다’를 말해주는 게 저희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대표님께서는 ‘조용한 조력자’ 혹은 ‘중요임무종사자’의 모습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웃음) 언제쯤 전면에 나설 계획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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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쯤이면 저희 이름을 내건 프로젝트가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다만 저는 겉으로 드러나는 리더십보다는 기술적으로 신뢰를 줄 수 있는 파트너가 되고 싶습니다.

아직은 내부 인력과 시스템을 더 갖추는 시기이고 준비가 되면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영림목재가 목조건축 산업 안에서 어떤 위치를 갖길 바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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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으로 성립하는 건축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회사, 자재를 공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설계와 구조를 함께 고민해주는 기술 파트너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건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가능한 구조’입니다. 그걸 제안하는 것, 저는 그게 영림목재의 다음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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