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에게 듣는다 | 이한식 경민산업(주) 대표
리더에게 듣는다 | 이한식 경민산업(주) 대표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5.05.2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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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을 지켜야 흥하는 산업…목조건축의 미래가 있습니다”
경민산업 이한식 대표.
경민산업 이한식 대표.

국내 목조건축 산업은 지금 성장과 과제 사이에 놓여 있다. 정부는 탄소중립 실현과 건축물의 친환경화를 위한 해법으로 목조건축 확대를 주요 전략으로 삼고 있다. ‘국산재 우선’, ‘공공건축의 목조화’, ‘지속가능한 건축’을 내세우며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목조건축에 대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이처럼 들뜬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제도적 허점,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 복잡한 행정 절차 등이 오히려 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누가 무래도 우리나라 목조건축 산업의 대표주자, 수십 년 전부터 국산 집성재를 중심으로 이 사업을 이어온 경민산업의 이한식 대표는 “정직하게 제품을 만들면 오히려 시장에서 도태된다”며 “제도와 기준의 현실화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편집자 주>

현재 산림청을 필두로 목조건축 활성화 정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
정책적으로 보면 아주 큰 변화입니다. 과거에 비해 목조건축이 주요 공공건축물의 설계 방향으로 채택되는 빈도가 많아졌고, 중앙부처뿐 아니라 각 지자체 단위에서도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정책의 양이 아니라 질입니다.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작 그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때문에 동일한 목조건축 프로젝트에서도 어떤 업체는 규정을 제대로 지키느라 채산성이 맞지 않는데, 어떤 업체는 기준을 느슨하게 적용하고 가격 경쟁에서 이기기도 합니다. 이 구조는 산업을 건강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규제 충돌 사례는 무엇인가요.
=
접착제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KS 규정에서는 페놀레조시놀계 접착제를 사용하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부는 해당 물질을 유해화학물질로 관리하고 있어서, 사용하려면 매우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외국에서처럼 새로운 접착제를 추가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인데, 이거 하나 바뀌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이한식 대표.

내화 집성재 관련 기준 문제도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내화 성능 확보를 위해서는 구조 부재에 추가적인 두께가 필요합니다. 산림청은 통상적으로는 탄화 속도에 맞춰 40㎜ 이상을 덧대야 제대로 된 내화 성능이 확보된다고 하면서, 현행 기준엔 단순히 ‘한 장’만 붙이면 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문제는 ‘한 장’의 두께가 제품마다 다르다는 점이에요. 어떤 업체는 30㎜, 어떤 업체는 25㎜를 쓰는데, 이 경우 내화 성능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기준과 현장의 현실이 맞지 않다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어째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시나요.
=
기준은 실무와 경험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CLT 기준 제정 당시만 해도 자재나 구조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 CLT와 아무 관련이 없는 협회나 단체 관계자, 대학 교수들이 대거 참여해서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CLT뿐 아니라 대부분의 목재 관련 자재의 규정을 만들 때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러니 현장에서 적용할 때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기술적 세부 사항에 대해선 기업들이 더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도 설계 과정에 현장의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않습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목재 이력제도 논란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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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제는 취지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방식이 비현실적입니다. 집성재 한 장을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목재만 해도 수십, 수백 개에 이릅니다. 각각의 목재에 대해 생산지, 생산일, 등급, 유통 경로를 이력으로 남겨야 하는데, 이를 집성한 제품 하나하나에 연결하려면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이 필요합니다. 실례로 우리 회사의 관리 부서 직원 한 명이 이 업무만 전담하고 있는데, 사실상 본 업무는 포기해야 할 정도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이력을 추적한다고 해도 소비자나 발주처는 그 정보를 실질적으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공공건축에서 설계-시공-자재 분절 문제가 계속 지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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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건축은 재료 특성과 시공 기술의 결합이 중요합니다. 콘크리트 구조처럼 정형화된 시방서만 보고 움직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죠. 따라서 설계 단계에서부터 자재 선정, 시공 방식까지 일관되게 계획되고 조율돼야 합니다. 서울대의 해동첨단공학관 프로젝트는 자재업체, 설계사, 시공사가 초기부터 함께 논의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사례인데, 이런 접근 방식이 오히려 이례적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공공 프로젝트는 설계, 자재, 시공이 따로 움직이다 보니 시공 과정에서 충돌이 생기고, 불필요한 비용도 많이 발생합니다.

조합 기반 산업단지나 공동 장비 지원 사업들도 실패 사례가 많다는 평가입니다.
=
조합 형태의 협업 모델은 매우 이상적인 구조입니다. 하지만 참여 기업들의 기술 수준이나 경영 전략이 제각각이라면 공동 설비만 갖춘다고 해서 협업이 되지 않습니다. 기술 연계와 공동 목표 설정 없이 출발한 조합은 결국 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사례에서도 초기에 큰 기대를 모았지만 결국 조합원 이탈로 운영이 중단되거나, 유명무실하게 된 곳도 있습니다. 장비나 공간 제공만이 아니라, 기술적 코디네이션과 경영 조율 기능까지 포함된 운영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이한식 대표.
이한식 대표.

국산재 사용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
국산재 확대는 산업의 자립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재 국산재는 수입재에 비해 품질 편차가 크고, 가공 효율이 낮습니다. 여기에 인증 기준이나 품질 시험도 별도로 요구되니, 현장에선 수입재보다 국산재를 쓰는 게 더 큰 부담이 됩니다. 정부가 국산재 사용을 의무화하고 싶다면, 관련 인증 절차나 시험 비용을 낮춰주는 식의 유인책이 병행돼야 합니다. 단순히 ‘써라’고만 하면 기업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정부와 제도 설계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
이제는 정말 시스템을 고쳐야 할 때입니다. 규정을 지키는 업체가 시장에서 불리한 구조는 건강한 산업이 아닙니다. 행정 효율성, 산업 생태계, 환경 기준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조정이 필요합니다. 기본은 간단합니다. 정직하게 만들어도 이윤이 남는 구조, 지침을 따르는 것이 손해가 되지 않는 구조. 이것이 마련돼야 합니다. 정부가 정책을 내놓을 때, ‘이 정책이 현장에서 실현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먼저 던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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