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청정산업딜과 순환경제에서의 목재의 역할
목재를 둘러싼 여러가지 모험 191 - 글·사진 노윤석
유럽연합(EU) 그린딜(GreenDeal)은 2019년 12월 발표된 EU의 성장 전략으로, 2050년까지 유럽 대륙을 세계 최초로 기후중립(carbon-neutral) 대륙으로 만들고, 지속 가능한 경제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 정책으로 온실가스 배출 감축, 에너지 탈탄소화, 순환경제 전환, 친환경 산업 육성 등 전 분야에 걸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자 한 유럽의 새로운 성장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후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유럽연합 역내 산업의 경쟁력 저하, 저성장 경제구조 및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의 복합적 위기가 닥쳐오게 되어 유럽연합의 그린딜은 대내외적으로 많은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이 ‘그린딜’ 이후 새로운 산업 전환 전략으로 청정산업딜(Clean Industrial Deal)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기존의 그린딜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역내 청정산업의 육성 및 탈탄소화를 동시에 이루고자 하는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런 유럽산업체계의 변화에 따라 최근 유럽 산림·목재 이해관계자들의 연합체인 유럽 산림연합(European Forest Coalition)이 유럽연합에 제출한 정책 제언서에 따르면, 목재는 기후 위기 대응 뿐 아니라 유럽 산업의 경쟁력 강화, 전략적 자율성 확보에도 핵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개정된 EU 바이오경제 전략의 중심축에 산림과 목재가 자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산림기반 바이오경제의 강점은 △제품·원료 생산, 사용, 재활용의 전과정이 유럽 내부에서 이루어져 외부 충격에 강하고 △순환경제 체계를 기반으로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과 탈탄소화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목재 제품, 지속가능한 연료, 친환경 포장재 등 산림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분야에서 앞선 역할을 하고 있다.
“숲을 지키는 것”에서 “숲을 쓰는 것”으로
제언서에서는 단순히 산림을 보존하는 것만으로는 유럽의 기후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노령화된 산림은 병해충과 기후재난에 취약해 탄소흡수 능력이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 반면,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을 통해 목재를 적절히 활용하면, 건축자재·화학제품·연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화석연료를 대체하고 탄소저장 효과까지 더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목재의 대체효과는 현재 연간 약 3억9천만 톤의 이산화탄소 감축을 가능하게 하며, 2050년에는 최대 6억6천만 톤까지 확대될 수 있다.
화석 기반 제품에 ‘숨은 탄소세’ 부과해야
목재 사용 확대를 위한 핵심 제안은 명확하다. 바로 화석 기반 제품에 탄소 가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EU 배출권거래제(ETS)의 원리를 제품 수준으로 확장해, 정유와 플라스틱 원료 등 제품 내재 화석탄소에 가격을 매기자고 주장한다. 이는 시장에서 목재와 같은 바이오기반 제품이 ‘기본 선택’이 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여기에 공공조달의 녹색화도 병행돼야 한다. 건설·주택·화학 분야에서 바이오기반 제품을 우선적으로 채택하면 선도시장이 열리고, 민간 수요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는 논리다.
또한 제품에 탄소발자국 라벨링을 의무화하고, 그 계산방식에 생물기원 탄소의 생성·저장·말기 처리 과정을 반영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예컨대 목재가 함유된 접착제나 아스팔트 같은 장수명 제품은 단순 소비재가 아니라 ‘탄소 저장고’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거버넌스, 목재 활용 반영해야
현재 EU의 기후정책은 산림을 흡수원으로 관리하는 데 집중돼 있다. 하지만 보고서는 목재 활용이 기후 목표 달성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 즉 대체효과를 제도권에 정식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벌채가 늘어 흡수량이 줄더라도 그 목재가 건축이나 산업에 사용돼 화석 연료와 소재를 대체한다면 순감축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바이오에너지와 탄소포집저장 기술(BECCS)의 잠재력을 LULUCF(토지이용·산림·농업 부문 배출 회계)에 명확히 반영하고, 아울러 탄소저감실적 인정체계 (탄소제거 인증, CRCF)와 자연자본 탄소 배출권 (네이처 크레딧, Nature Based Solution) 부문의 행정 간소화와 민간 투자 유인을 강화하여, 산림 소유자·경영자에게 실질적 수익 창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규제 충돌 해소와 전략자원 지정
산림·목재 부문은 현재 EU 내 여러 규제와 정책 사이에서 중첩된 부담을 지고 있다. 산림 전략, EU 택소노미, 삼림모니터링법, 산림 손실 방지 규제 등이 각각 다른 보고 의무와 평가 기준을 요구하면서 현장에서는 혼란이 커지고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정책 충돌을 정합화하고, 산림과 목재를 EU의 전략적 자원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더불어 유럽집행위원회 내에 ‘산림 수석자문’을 신설해 정책 간의 불일치를 조정하고, 지역별 산림 특성을 반영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담겼다. 북유럽에서는 고사목이 생물다양성의 지표이지만, 남유럽에서는 화재위험 요인이 되는 등 지역별 상황이 다른 만큼 일률적 규제는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 투자와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 폐지
목재기반 산업 혁신을 위한 투자의 필요성도 강조됐다. 파일럿-데모-플래그십 단계를 잇는 재정 지원이 확대돼야 하며, 디지털·바이오테크·AI와 같은 신기술이 산림경영과 목재 가공에 접목돼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EU의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해 바이오기반 대안이 화석연료 기반한 제품과 공정한 경쟁 환경에서 자리잡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포함됐다. 실제로 EU의 화석연료 보조금은 2021년 560억 유로에서 2022년 1230억 유로로 급증한 바 있다.
목재는 유럽의 미래 산업자산
정책 제안서에는 EU가 새로운 청정산업딜과 바이오경제 전략에서 목재를 전략적 자원으로 격상시키고, 화석 기반 제품에는 가격 부담을, 바이오기반 제품에는 시장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는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유럽이 직면한 기후위기·산업경쟁력 저하·공급망 리스크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해법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안자인 유럽 산림연합은 “지속가능한 산림경영과 산림산업의 발전은 기후변화 대응, 경제자립, 일자리 창출, 지역사회 성장 모두에 기여한다”며, ‘청정 산업 협정’과 ‘신 바이오경제 전략’에 산림기반 순환경제 및 바이오산업이 핵심축으로 일관되게 통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회원국별 산림 소유자와 기업들이 정책 설계와 실행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투명하고 신뢰성 높은 거버넌스 체계 마련을 EU 및 각국 정부에 촉구했다. 산림을 지키면서도 활용하는 지혜, 그리고 정책의 정합성을 통해 유럽이 목재 중심의 순환경제와 탄소중립 사회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나무신문
노윤석
녹색탄소연구소 선임연구원 / 우드케어 이사 / 우드케어 블로그 운영자
서울대학교에서 산림자원학을 전공했다. (주)효성물산, 우드케어, (주)일림에서 재직했다. 현재 한국임업진흥원 해외산림자연개발 현장자문위원과 녹색탄소연구소 수석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에서의 산림청, 코트라, 국립산림과학원, 농업진흥청 등의 해외임업과 산림을 이용한 기후대응 및 탄소중립 프로젝트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