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벽에 깃든 4月의 봄, ‘밀보드 수직정원’
“자연은 면적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한 평 벽에도 계절을 담을 수 있다”
작은 벽면 하나에도 우주처럼 넓은 봄은 깃든다. 공간의 크기보다 중요한 건 자연을 대하는 태도다. 조경가 정정수 대표(JJPLAN)가 설계한 ‘밀보드 수직정원’은 이처럼 작지만 밀도 높은 자연을 일상으로 끌어들인다.
최근 킨텍스에서 열린 ‘코리아빌드’와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경향하우징페어’에서 케이디우드테크 부스를 통해 소개된 이 밀보드 수직정원은, 단순한 장식이나 조경 요소를 넘어 하나의 설치 예술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연두빛 새순과 야생화가 어우러진 벽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봄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정원이라 하면 마당을 떠올린다. 하지만 밀보드 수직정원은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다. 실내든 실외든 벽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정 대표는 순천만 국가정원 예술총감독을 맡아온 이력이 있는 조경가다. 그는 “자연은 면적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며 “한 평 남짓한 벽에도 계절을 담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새로운 정원의 핵심은 ‘밀보드(Millboard)’다. 밀보드는 영국에서 개발된 프리미엄 외장용 데크 자재로 기존 합성목재나 천연목재의 한계를 넘어선 차세대 건축소재로 평가받고 있다.
목재의 질감을 거의 완벽히 구현했지만 실제 목재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그 대신 화산재를 포함한 미네랄 성분을 압축해 만든 고밀도 코어에 탄성과 복원력을 지닌 라스탄(Lastane®) 표면층을 입힌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라스탄은 고무처럼 유연하지만 내구성은 강철에 가깝다. 시공 시 스크류가 관통하면 일시적으로 늘어났다가 다시 원형으로 회복되면서 스크류 흔적 없이 마감된다. 덕분에 수직정원처럼 구조물이 그대로 노출되는 공간에서도 디자인의 완성도가 높다.
또 이 표면층은 미끄럼 방지 기능을 강화한 안티슬립 디자인으로 영국표준 BS79.76 테스트에서 최고 등급을 획득했다.
내구성도 인상적이다. 자외선과 비, 눈, 습기에도 형태 변형이 없고 물과 닿는 환경에서도 썩지 않는다. 일반 목재처럼 오일 스테인이나 샌딩 같은 유지보수가 필요 없고 순한 세제와 물만으로도 청결하게 관리할 수 있다. 실제로 밀보드 데크 한 장의 사용 수명은 25년 이상이다. 건축 자재이자 조경 자재로서 ‘반영구적’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환경적인 측면도 주목할 만하다. 밀보드는 한 장이 참나무 한 그루의 벌목을 대체할 수 있다는 상징성과 함께, 생산 과정에서도 친환경성을 지향한다. 기존 합성목재가 1kg 생산에 6~29MJ/㎏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비해 밀보드는 2~6MJ/㎏ 수준에 그친다.(1MJ는 239Kcal, 경유 1리터는 9000Kcal이다.) 이는 기존 자재 대비 탄소 배출량과 에너지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 폐기물 재활용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원 순환의 모범 사례로도 평가받는다.
이번 수직정원에 사용된 밀보드는 ‘올드우드’ 시리즈의 엠버 컬러. 시각적으로 가장 짙고 깊은 색으로 식물의 녹색과 대비돼 입체감 있는 연출이 가능하다. 이 컬러는 특히 작은 폭포나 포켓 정원과 함께 배치하면 고풍스러운 자연미를 더욱 강조할 수 있다. 벽면에 수직으로 세운 판재에 여러 개의 식재 포켓을 설치하고 핑크싸리·이끼·석창포 같은 야생화와 마가렛 생화를 더해 하나의 유기적 풍경이 완성됐다.
정정수 대표는 “밀보드 수직정원은 단지 보기 좋은 구조물이 아니라, 실제로 생활 속에 자연을 녹이는 시도”라며 “주택의 현관 옆 벽면, 아파트 베란다, 병원 대기 공간, 호텔의 복도 등 다양한 공간에서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