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포트 엘리자베스 식물원
남아공 포트 엘리자베스 식물원
  • 나무신문
  • 승인 2012.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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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43>

 

▲ 온실에서 본 식물원 전경. 왼편에 남태평양에서 생육하는 남양 삼나무가 보인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남부 지역에 있는 웨스턴 캐입 주(州)의 주요 도시 캐입타운(Cape Town)에서 공화국의 동남부에 있는 이스턴 캐입(Eastern Cape) 주(州)의 수도인 포트 엘리자베스(Port Elizabeth)까지 800km의 도로는 맑은 인도양 바닷물이 넘칠 거리는 금빛 해안과 도로를 따라서 울창한 삼림지대를 품고 있는 부드러운 낮은 언덕들이 계속되고, 각종 아름다운 꽃들이 도로 주변을 장식하고 있어, 이 해안 도로는 ‘정원 도로(Garden Route)’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원 도로는 캐입타운에서 포트 엘리자베스로 가는 길목인 스톰(Storm) 강 하구까지 600km 이며, 도로는 두 개로서 하나는 해안가에, 다른 하나는 해안에서 내륙으로 100km 들어가서 평행으로 달린다. 이런 환상적인 경치를 즐기기 위해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또 도로 내륙으로 퍼져 있는 사반나 지역에는 사자, 치타, 얼룩말, 하마, 코뿔소, 영양 등 야생 동물들이 보금자리를 트고 있어 사파리 관광을 하려는 관광객으로 ‘정원 도로’는 일년 내내 방문객의 탄성을 자아 내게 한다. 이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로서 여름에는 따뜻하고, 겨울에는 온화한 기후 때문에 일년 내내 관광이 가능하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포트 엘리자베스는 이스턴 캐입주의 관문이며 인도양에 면한 아름답고 운치 있는 항구도시이다. 희망봉을 처음 발견하고 아프리카 남단을 지난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돌로뮤 디아스(Bartolomeu Dias)는 계속 동쪽으로 항해하여 인도양에 들어 온 뒤 1488년 2월, 오늘날의 포트 엘리자베스가 있는 넬슨 만델라 만(Nelson Mandela Bay)을 발견하였다. 만의 이름은 1994년, 남아공의 첫 원주민 대통령 넬슨 만델라의 이름을 따라서 개명되었다(만델라의 고향은 포트 엘리자베스이다). 영국은 포트 엘리자베스를 인도양을 제압하는 주요 전략요충지로 판단하여 18세기 말에 군대를 상륙시켜, 1799년에는 항구를 내려다보는 곳에 성(城)을 세웠다. 라이벌인 프랑스군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영국 요크(York)의 공작(公爵)인 프레데릭(Frederick)의 이름을 따라 이름 지어진 이 성은 오늘날 인구 100만 명인 포트 엘리자베스의 중요한 랜드마크가 되었다. 영국군이 프레데릭 요새를 완공하자, 이어서 1820년까지 약 4천 명의 영국 민간인이 상륙하여 이곳에 거주지를 만들었다. 1820년 6월6일, 당시 동킨(Rufane Donkin) 총독대리는 사망한 자기 부인의 이름을 따라서 이 항구를 포트 엘리자베스라고 이름 지었다(원래 엘리자베스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어머니 이름이다).

영국인들은 세계에서 식물학을 가장 좋아하는 국민이다. 그러므로 영국인들은 가는 곳 마다 세계 어디든지 식물원이나 수목원을 만들었다. 남아공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영국인은 네덜란드인에 이어서 남아공에 상륙한 뒤, 네덜란드 후손을 몰아내고서 남아공을 식민지로 만들고 많은 식물원을 세웠는데, 포트 엘리자베스에는 1875년에 식물원을 만들었다. 그 뒤 1924년에는 현재 남아공에서 가장 큰 도시인 요한네스버그에도 식물원을 만들었다. 즉, 포트 엘리자베스 식물원은 요한네스버그 식물원보다 약 50년 전에 만든 것이다. 포트 엘리자베스 식물원은 시내 중심에 있는 세인트 조지 공원(St. George Park) 안에 위치하고 있다. 1860년에 만든 이 공원은 73ha (약 24만평) 크기의 넓은 면적인데 공원 안에는 운동장, 수영장, 크리켓 구장, 볼링장, 병원 등이 들어서 있고 식물원은 약 12ha(4만평)를 차지하며 공원의 북쪽 중앙에 있다. 식물원이 만들어 진 뒤에 이미 약 140년의 세월이 흘렀으므로 이곳에 있는 수목은 수령 200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는 것도 제법 많이 보인다. 이 수목들은 식물원이 만들어 지기 전에 이미 이곳에서 자라고 있던 것이거나 다른 곳에서 옮겨 심은 것으로 추측된다. 식물원 한 가운데 노폭 파인(Norfork Pine; Araucariaceae Araucaria spp.)도 보이고 남 아프리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유칼립투스도 보인다. 그러나 이 식물원은 수많은 종류의 야자 나무로 유명하다. 야자 나무 가운데에는 이곳의 재래종으로서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보기 어려운 야자나무(Palmaceae Jubaeopsis caffra)도 있다.

1850년대에, 영국 런던의 큐(Kew) 식물원의 직원들이 남부 아프리카에 파견되어 여러 곳에 식물원 조성을 도와주었는데 이 가운데 맥켄(McKen), 케이트(Keit) 등의 직원들이 포트 엘리자베스 식물원 조성에 도움을 준 것으로 추측된다. 식물원을 돌아보던 중, 영국계로서 현지주민인 아주머니 한 분을 식물원 안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이 부인은 식물원을 만들 때 큐 식물원 직원들이 이곳에 와서 도와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근 4,5년 동안 포트 엘리자베스 지역에는 강우량이 너무 적어 도시의 많은 식물이 고사하였다며 식물원의 식물들이 고사할까 걱정하고 있었다.

식물원 안에는 피어슨 컨설바토리(Pearson Conservatory)라는 이름을 가진 온실도 있는데, 이 온실은 1882년 9월12일에 개실 되었다. 피어슨 이란 이름은 당시 세인트 조지 공원을 만든, 시(市)의 고문인 Henry Pearson의 이름이다. 온실은 중앙에 큰 돔이 있고 양쪽에는 길이 15.2m 폭 7.6m, 높이 8.8m 의 온실이 마치 양 날개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다.

원래 온실의 구조물은 목재였는데, 2010년 4월에 일부 구조물을 금속(쇠)으로 바꾸는 리노베이션 작업을 하였다. 온실 안에는 수많은 종류의 난(蘭)이 전시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온실 입구에는 온실의 역사가 세세하게 적혀 있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별로 필요 없는 것까지 적혀있다. 설계는 누가 언제 하였고, 온실 건설 비용은 얼마가 들었고, 비용중 자재비는 얼마이고 기초석은 언제 누가 놓았고, 작업 감독은 누가 하였고, 유리는 누가 공급하였고, 온실 중앙에 있는 분수대는 누가 얼마를 들여서 만들었고 등등이다.

원래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이라 이해가 된다. 필자가 보기에는, 앞서 말한대로 영국인은 세계에서 식물학을 가장 좋아하는 국민인 한편, 세계에서 기록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국민이다. 남아프리카의 조그만 도시에 있는 조그만 식물원 온실에서도 볼 수 있는 이런 기록 문화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만든 밑 바탕에 있었다는 것을 마음 한 구석에 새겨 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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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혁.

동원산업 상임고문·강원대 산림환경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