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 아순시온 식물원
파라과이 아순시온 식물원
  • 나무신문
  • 승인 2011.12.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41>

 

▲ 아순시온 식물원의 중앙도로.

볼리비아에서 파라과이로 가는 도로는 아직도 비포장 산길이다. 우기에는 비가 많이 내려 이 산길이 진흙탕으로 변하고 도로 곳곳에 큰 물 웅덩이가 생기므로 차량의 운행이 어렵다. 그래서 재수가 없으면 산 기슭을 따라 있는 국경 도로 위에서 며칠씩 갇혀 있는 일이 가끔 발생한다. 그러나 현재 파라과이 국경쪽에 도로를 건설하고 있어 2,3년 뒤에는 우기에 영향 받지 않는 포장 도로가 완성되리라 기대된다.

필자는 볼리비아 동쪽에 있는 산타크루즈 시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파라과이를 향하여 떠났다. 가는 길에 비가 올까 마음을 졸였는데 한 밤중에 약간씩 비가 뿌리는 것을 보고 혹시 산길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까 염려하였다. 버스가 달리면서 물 웅덩이를 통과하면서 물이 튀기는 소리가 난다. 그런데 새벽이 되자 밤하늘에 별이 빛나는 것이 보여 다행히 비는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아직도 버스는 볼리비아 영토를 달리고 있다. 동이 트기 전에 버스는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국경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출입국 수속을 하는데, 이렇게 초라하고 간단한 국경 사무실은 보기 드물다.

파라과이는 전국토가 평탄한 지형을 갖고 있는 나라이다. 수도 아순시온에는 도심에 높이 200m의 람바레 언덕(Cerro Lambare)이 있다. 이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아순시온 시내는 진한 녹음에 덮여 있다. 이렇게 숲에 싸인 도시는 지구상에 거의 없다. ‘이곳에 좋은 식물원이 있겠구나!’하는 믿음이 생긴다. 다음날 찾아간 식물원은 필자가 생각하였던 그대로였다. 식물원 정문에서 입장권을 파는 50대로 보이는 현지인 남자는 필자가 한국에서 온 것을 알고 더듬거리는 영어로 마음을 다해서 친절하게 식물원에 대해 설명해준다.

오늘날 식물원이 있는 곳은 1840년에 대통령 관저가 있던 곳으로서 1910년부터 식물원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식물원을 끼고 달리는 도로 이름은 Avenida Primer Presidente(초대 대통령 도로)이다. 초대 식물원장은 독일계 피에브리그(Carlos Fiebrig)박사로서 그는 1869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출생하였으나 파라과이에 와서 1936년까지 26년 동안 식물원장으로서 오늘날 아순시온 식물원의 골격을 만든 인물이다.

식물원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은 정문에서 안쪽으로 뻗어있는 중앙 도로를 보면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식물원 한 가운데로 난 넓은 도로 양편 광활한 녹지에는 잘 자란 수많은 수목과 이름 모를 많은 꽃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육안으로 건너편 식물원 경계가 보이지 않는다. 식물원의 크기는 500ha(약 165만평)이다. 이 안에는 100ha(33만평)에 달하는 자연림도 포함되어 있다. 자연림은 세개의 큰 군락을 이루고 있다.

첫 눈에 크게 보이던 식물원도 나무 사이를 걸어 다니다 보니, 눈에 익은 나무들이 이곳 저곳에 보이자 어느새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과 같은 푸근한 기분이 든다. 미얀마,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생육하는 Verbanaceae(마편초과)에 속한 대표적인 수종은 티크(Teak; Tectona grandis)이다. 이 과에 속해 있어 성질이 티크와 비슷한 Vitex(Vitex cymosa)는 뉴기니와 솔로몬 군도에서 주로 생육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이곳에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물론 동남아시아에서 씨앗이나 묘목을 가져다 이 식물원에 심은 것이리라. 이 나무를 현지에서는 타루나구아수(Taruna Guasu)라고 부른다. 또한 이곳에는 파나마 시티 식물원에서 본 것처럼 거대한 대나무 숲이 중앙도로변에 자리잡고 있다. 야자 나무도 열을 지어 서있는데 현지에서 핀도구아수(Pindo Guasu; 학명 Arecaceae Attalea spp.)라고 부르는 거대한 오일팜 나무도 있다. 남태평양에서 자주 보던 Rutaceae(운향과)에 속한 나무로서 현지에서 아페푸하이(Apepu Hai; 학명 Citrus aurantium)라고 부르는 수종도 있다. 이 식물원 역시 너무 커서 제대로 둘러 보자면 며칠은 걸린다. 시간 때문에 아쉬움을 남기면서 이곳을 떠나야 했다.

한편, 이 식물원에는 다른 식물원에서 볼 수 없는 건물이 있다. 즉 이 식물원이 자랑하는 자연사 박물관(Museo de Historia Natural)이다. 뱀, 악어 등의 파충류, 수백 종류의 나비 정글 속에 사는 맹수, 조개류, 남미 전역의 석기시대 유물, 옛날 원주민의 공예품, 조상들이 사용하던 맷돌, 활, 창 등의 무기류 등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종류가 전시되어 있다. 이 가운데에는 670 AD 경으로 추정되는 미이라도 있다.

필자는 오랜기간 동안 수많은 국내외 식물원을 방문하였으나 식물원 안에 이렇게 훌륭한 박물관을 만들어 놓은 식물원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아주 특이한 식물원이다. 정문에서 시작하여 식물원을 관통하는 넓고 긴 중앙도로를 보면 파라과이 정부가 얼마나 이 식물원에 정성을 쓰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물론 중앙 도로 옆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종류의 꽃들로 채워져 있는데 아담한 연못도 보인다. 연못 옆에는 음악 동호인 십여명이 각기 악기를 들고 와서 남미의 정열적이고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한다. 관람은 물론 무료이다. 음악의 문외한인 필자도 이들의 음악을 감상하는 관람객 가운데 한 명으로서 정신을 팔고 앉아 있다가 하마터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행 버스를 놓칠 뻔했다.

 

-----------------------------------

 

권주혁.

동원산업 상임고문·강원대 산림환경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