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성 삼림 식물원
흑룡강성 삼림 식물원
  • 나무신문
  • 승인 2011.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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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33>

 

▲ 흑룡강성 삼림 식물원 정문.

흑룡강성(黑龍江省) 식물원의 정식 이름은 ‘흑룡강성 삼림(森林) 식물원’으로서 흑룡강성의 성도(省都)인 하얼빈의 시내에 있다. 하얼빈은 삼강(三江) 평원을 끼고 있는 중국 동북지역의 최대 곡창지대이며 기계 영농이 발달한 곳이다. 한편,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우리 민족의 원흉인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하여 사살한 곳으로서 우리의 현대사와 관련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하얼빈 기차역에 내려서 식물원으로 발길을 향하기 전에 안의사의 높은 기개가 아직도 서려있는 그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여 안의사가 총을 잡고 섰던 곳에 잠시나마 서 보았다.

필자는 중국어를 잘 하지 못하므로 중국에 도착하기 전에, 하얼빈에 있는 동북 임업대학(東北林業大學; 필자가 초빙교수로 있는 강원대학교와 자매대학이므로)에 연락하여 필자를 안내해줄 안내자를 부탁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방문한 시점은 학교가 여름방학 중이었고 임학과 교수들은 국제 임업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학생들을 시켜 안내해 주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필자가 흑룡강성 식물원 정문에 약속시간에 도착하자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필자를 안내하기 위해, 여학생 두 명이 우산을 쓰고 정문 앞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 한눈에 필자와 전화 통화한 학생들이란 생각이 들어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두 명 모두 임학과 2학년 학생들로서 영어를 아주 잘했다. 중국은 우리와 달리 영어를 가르치기 위하여 영어 사용국의 원어민 선생들을 우리나라처럼 많이 데려다 놓지 않았다. 더군다나 상하이 또는 베이징과 달리, 중국의 정치, 경제 중심지에서 한참 떨어진 만주 한 가운데 있는 도시인 하얼빈에는 외국인이 거의 없어 영어를 원어민에게 배울 기회도 거의 없을 텐데… 틀림없이 학생 본인들이 열심히 공부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얼빈시의 향방구(香坊區) 합평로(哈平路) 105호(번지) 대로에 위치하고 있는 식물원은 1958년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30년이 된 1988년에 일반에게 개원(開園)하였다.  4년 뒤인 1992년에는 국가 임업부에서 국가 삼림 공원으로 지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면적 136ha(45만평)에 이르는 거대한 식물원이 대도시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 식물원은 중국 동북부에서 가장 대표적인 온대, 한대 식물원으로서 동북지역에서 생육하고 있는 1,400종이 넘는 식물이 식재 되어있어 식물학 연구와 아울러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식물원 안에는 주로 중국 북부, 즉 만주 북서쪽의 거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대흥안령(大興安嶺) 산맥과 소흥안령(小興安嶺) 산맥, 백두산이 있는 장백(長白) 산맥에서 생육하는 각종 식물을 중심으로 중국 전역과 외국에서 가져온 식물이 식재 되어 방문객을 맞고 있다. 대로변에 있는 정문은 식물원 정문으로서는 엄청나게 커서 주위를 압도하고 있었다. 정문에는 ‘흑룡강성 삼림 식물원’이라고 쓰여있는데, 식물원 이름 앞에 ‘삼림’이란 단어를 넣은 것은 흑룡강성이 중국 안에서는 삼림자원이 많은 성(省)의 하나라 성이 갖고 있는 풍부한 삼림자원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넣은 이름이라고 짐작된다.

입장이 무료인 대련 식물원과 달리 이곳은 적지 않은 입장료를 받는다. 그러나 정문을 들어가서 좀 걷다 보면 왜 입장료를 받는지 이유를 알게 된다. 넓은 식물원 안은 무척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만든 훌륭한 식물원이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식물원 안에는 15개의 특별정원, 즉 튤립 정원, 약초 정원, 습지식물 정원 등이 있는데 각종  색깔의 튤립이 자라고 있는 넓은 튤립 정원 옆에는 네덜란드 풍의 큰 건물을 만들어 놓아 이국적인 분위기가 난다. 이 근처에는 넓고 깨끗한 호수가 있어 시민들이 느긋하게 보트놀이를 하기도 하고 음악에 맞추어 물을 뿜어내는 분수가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삼림 식물원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식물원 안에 많은 수종의 각종 화초(花草)가 자태를 뽐내고 있으나, 역시 이 식물원은 나무에 무게를 두고 만든 식물원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북부 지역이라서 그런지 수고(樹高)가 높고 꼿꼿하게 자란 침엽수들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온다. 이날 종일 비가 내려서 엷은 안개가 식물원 안을 감싸고 있으므로 길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수목들은 운무에 싸여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마치 운무에 싸여있는 히말라야 산맥의 삼림지대를 보는 기분이 든다. 이곳에 있는 침엽수들 가운데에는 우리에게 낯선 수종이 제법 된다. 즉 흑룡강성 동쪽과 길림성(백두산 지역포함), 요령성에서 생육하고 있는 사송(沙松; Pinaceae Abies holophylla), 흑룡강성, 길림성, 요령성, 하북성(河北省), 산서성(山西省) 등지에서 생육하는 취송(臭松; Pinaceae Abies nephrolepis), 내몽고와 하북성에서 자라는 청한(Pinaceae Pinus wilsonii), 그리고 화자송(樺子松: Pinaceae Pinus sylvestris ) 등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면적이 넓으므로 나무들이 각각 넉넉한 공간을 갖고 자라고 있다.  

45만평에 이르는 이 큰 식물원을 하루에 둘러보는 것은 무리이다. 최소 며칠은 둘러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하얼빈에는 제정(帝政) 러시아 시대에 지은 건물들이 아직도 시내 곳곳에 많이 남아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여기에 더해 이렇게 크고 잘 만들어진 삼림 식물원이 하얼빈의 멋을 더 세련되게 만들고 있다. 필자는 하얼빈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안중근 의사의 저격장소와 삼림 식물원을 반드시 여행일정에 넣으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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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혁.

 

동원산업 상임고문·강원대 산림환경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