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 태평양 괌 식물원
중부 태평양 괌 식물원
  • 나무신문
  • 승인 2011.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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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29>
▲ 일본군이 만든 토치가와 Ifil 나무(토치카 왼쪽).

중부 태평양의 마리아나 군도에서 가장 큰 섬인 괌(Guam)은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일년 내내 상하(常夏)의 날씨와 에머랄드 빛 바다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풍광이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중국, 대만 등 여러나라에서 많은 관광객을 이곳에 불러 들이고 있다.

1898년 미서(美西) 전쟁(미국과 스페인 사이에 일어난 전쟁)의 결과, 전쟁에서 이긴 미국은 스페인으로부터 당시 스페인이 소유하고 있던 괌 섬을 인수받았다. 그후 1941년 12월8일, 일본 해군 기동부대의 함재기들이 하와이 진주만의 미국함대를 기습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다. 괌 섬 바로 위에 있는 사이판 섬은 1914년에 제1차 대전이 일어나자 당시 연합국에 일원으로 참전한 일본이 독일로부터 빼앗았다. 그 뒤, 일본은 사이판 섬의 남쪽 지역에 군용 비행장을 건설하고 호시탐탐 괌 섬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중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사이판 비행장에 배치되어 있던 일본 폭격기와 전투기 20여대는 12월9일 새벽에 괌 섬의 미해군 기지와 육상기지를 기습 공격하였고 이어서 12월10일 새벽에는 일본 육군과 육전대(해병대) 6천명이 괌 서부 해안에 상륙하여 괌을 방어하던 미국 수비군 420명의 항복을 받고 순식간에 괌을 점령하였다.

여태까지 필자는 괌을 여러 번 방문하였고, 그때마다 숙박하던 호텔 직원들과 필자의 지인들에게 식물원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았으나 한결같이, 괌에는 식물원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관광객을 위한 괌의 안내책자를 펼쳐보아도 어디에도 식물원의 존재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던 필자가 괌의 수도 아가나 시내 중심에 있는 식물원을 발견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금년(2011년) 3월 중순, 시내 중심에 있는 홀리데이 리조트 호텔(Holiday Resort Hotel)근처를 걷고 있다가 길가에 서있는 조그만 입간판에 동식물원 안내글이 써있는 것을 본 것이다. 입간판에는 ‘괌 동식물원, 해양생물원(Guam Zoological Botanical & Marine Garden)’이라고 쓰여있었다. 식물원은 시내에 위치하고 있으나 투몬(Tumon)만 바닷가에 한쪽 면이 붙어있다. 그러나 크기가 0.7 ha(2,300평) 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동식물원 이다 보니 시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 조차 식물원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34년 전인 1977년에 쿠싱씨 부부(Jimmy Cushing, Barbara Cushing)가 개원한 이 동식물원에는 악어, 뱀, 타조, 박쥐, 앵무새 , 이과나(남미산) , 야마(남미산) 등 동물 40종 이상이 있고 식물은 수목 수십종을 포함하여, 꽃, 양치 식물 등 수백종이 전시되어 있다. 이외에도 대형 조개, 상어를 포함한 물고기 등 해양생물들도 제법 전시되어 있다. 개인이 소유, 관리하고 있으므로 면적은 작지만 관리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입장료는 미화 15불이다(소아는 8.5불). 출입구를 열고 들어가니 입구에 걸려있는 새장 속에서 앵무새가 ‘헬로’를 되풀이 한다. 남미가 원산지인 이 앵무새는 색이 국방색이므로 이름이 밀리터리 마코(Military Macaw)이다. ‘마코’는 중남미산 앵무새를 뜻한다. 조그맣다 못해 협소한 식물원안에는 큰 수목들도 생육하고 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친숙한 Kwila(Leguminosae Intsia bijuga)도 보인다. 이 수목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에서 멀바우(Merbau)라고 부르고, 필리핀에서는 Ipil 이라고 부르나 괌에서는 Ifil 이라고 부르며 주민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수종이다.

이 나무는 26년 전에 현위치에 식재하였다고 한다. Ifil이 서있는 곳에는 바로 옆에 태평양 전쟁중 일본군이 이곳 해안에 설치한 콘크리트 벙커가 있다. 일본군은 미군이 괌에 상륙하지 못하도록 1943년과 1944년에 걸쳐서 해안선 곳곳에, 미군의 해안상륙을 저지할 목적으로 방어진지를 구축해 놓았는데 이 벙커도 일본군 방어 계획의 일환으로 이곳에 만들어진 것이다. 벙커 근처에는 빵나무(Bread Fruit; 학명 Moraceae Artocarpus spp.)도 서있다. 이곳에 있는 양치류 식물은 주로 약용(藥用)으로서 괌에서 전통적으로 민간요법에 사용되는 것들이다. 이 가운데는 해열제와 관절치료제로서 특효가 있다는 Wild Piper(현지명은 Pupulon aniti ettigu)와 파리, 모기 퇴치제인 Indian Mulberry(현지명 Lada) 등 여러 약용식물이 있다.

수목과 양치류 이외 열대의 아름답고 화려한 꽃들도 식물원 공간 곳곳을 점령하고 있다. 괌의 원주민 부족인 차모로는 유럽인이 괌에 도착하기 이전에 이미 섬의 곳곳에 수많은 라테스톤(Latte Stone)을 만들어 놓았다. 어떤 라테스톤은 지상 높이가 7m 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 돌들은 평행하게 두 줄로 설치된 뒤, 그 위에 나무로 된 집을 만든다. 이 식물원 안에도 라테스톤이 놓여 있는데 이것은 다른 곳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을 식물원 소유주가 우연히 발견하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관광객을 위해 모조품 라테스톤이 제작되고 있는데 이곳의 라테스톤은 요즘에 보기 어려운 오리지널이다.

이곳에서 필자는 뜻밖에 솔로몬 군도에서 보던 뱀(Brown Tree Snake)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뱀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이 솔로몬 군도의 기지에서 괌에 보내는 군용물자 상자 속에 숨어 들어가 수송선을 타고서 괌에 도착한 뒤, 정글 속에서 닥치는 대로 조류를 잡아먹어서(특히 조류의 알) 오늘날 괌 섬에는 날아다니는 새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식물원을 떠날 때 주인인 쿠싱 부부는 필자를 출입문까지 배웅해 주었다. 쿠싱씨는 금년이 환갑이나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동식물 종을 계속 수집하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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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혁. 동원산업 상임고문·강원대 산림환경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