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군도 호니아라 식물원
솔로몬 군도 호니아라 식물원
  • 나무신문
  • 승인 2011.07.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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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26>

 

▲ 사진 중앙의 다리 왼쪽에 있는 나무는 빵나무(Moraceae Artocarpus altilis)

남태평양의 숨은 진주인 솔로몬 군도는 그 존재에 대해 오늘날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과 1943년에는 전세계인의 이목을 끌던 곳이다. 당시 미국 신문에는 과달카날(Guadalcanal) 이라는 단어가 신문의 제1면을 자주 장식하였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고 계속 일본군에게 밀리면서 필리핀을 빼앗기고 중부 태평양과 남태평양의 많은 섬들을 빼앗기며 패전을 거듭하고 있던 미군이 바로 과달카날 섬에서 벌어진 육지전에서 첫 승리를 하고 반격작전을 시작한 곳이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솔로몬 군도는 잘 몰라도 과달카날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날 솔로몬 군도의 수도인 호니아라(Honiara)는 과달카날 섬의 북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호니아라가 면해 있는 이 해안 앞바다에서는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해군과 일본 해군의 대함대가 5번에 걸쳐 해전을 벌이면서 양측 합쳐 40척 이상의 군함(전함,순양함,구축함, 잠수함, 수송선 등)이 깊이 1,500m 바다 밑에 가라앉아있으므로 전쟁이 끝나자 이곳 바다에는 쇠바닥 만(Iron Bottom Sound)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호니아라 시내 서쪽에 펼쳐진 아름다운 해안에는 쇠바닥 만(灣)의 이름을 따라서 ‘쇠바닥만 호텔’도 들어서 있다. 이 호텔에서 500m 정도 내륙으로 들어가면 솔로몬 군도가 자랑하는 식물원이 자리잡고 있다. 이 식물원의 원래 이름은 ‘솔로몬 군도 국립 종자보관소와 식물원(The National Herbarium and Botanical Garden in Solomon Islands)’이다.

솔로몬 군도는 2세기에 걸쳐서 영국의 보호령으로 있으면서 영국의 통치를 받다가 1978년 독립하였다. 다른 나라 국민들에 비해 식물학을 유난히 좋아하는 영국인들은 1964년, 이곳에 도 종자 보관소를 만들고 식물원을 개원하였다. 오늘날 이곳 종자보관소에는 약 35,000종의 식물종이 있는데 이중 2,500종자는 솔로몬 군도에서만 생육하는 식물종자이다. 남태평양에서 파푸아뉴기니에 이어서 많은 식물종자를 갖고 있는 솔로몬 군도에는 식물 자생종자가 약 5천종인데 이 가운데 절반인 2,500여종의 식물이 이곳 종자보관소에 있는 것이다. 식물원의 면적은 약 12ha(약 4만평)로서 울창한 정글을 이용하여 만든 친자연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식물원이다. 선진국의 식물원은 깔끔하게 정리정돈 되고 구획별로 잘 관리되어 여러 식물을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큐 식물원, 싱가폴의 식물원, 그리고 유럽, 미국, 일본의 식물원들이 그렇다.

그러나 호니아라 식물원은 자연 그대로 숨김없이 다가온다. 얼굴과 몸매는 타고난 미인이지만 아무 치장이나 화장을 하지 않은 순박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시골 처녀를 보는 기분이다. 여기에 비하면 선진국의 식물원 가운데에는 너무 짙게 화장을 하거나, 더 나아가 얼굴 성형수술까지 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적지 않다.

식물원으로 들어가는 폭 5m 의 비포장 길을 따라서 걷다 보면 현지에서 Ainigau 또는 Dautole라고 부르는 가늘고 늘씬한 수목들이 특유의 줄기를 흔들면서 방문객을 맞아준다. 바로 Rhizophoraceae 과(科)의 Carallia brachiata 이다. 이놈들은 언제 보아도 싱그럽다. 조금 가다보면 솔로몬 군도를 대표하는 나무인 Pometia (Sapindaceae Pometia pinnata)가 높이 솟아있다. 높이가 40m는 충분히 넘는다. 이 나무는 PNG에서도 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로서 PNG에서는 Taun이라고 부른다. 가구재로서 호평을 받고 있는 수종이다. 도로 양쪽이 완전히 열대 정글로 덮인 길을 조금 더 걷다 보면 이제 입구가 나온다. 입구에는 현지인 여러명이 느긋하게 앉아 잡담하면서 방문객에게 정겨운 눈 인사를 한다. 물론 입장료는 없다.

열대의 대나무 숲을 관망하면서 잠시 더 가면 오른쪽에 단층으로 긴 건물이 나온다. 이곳이 종자보관소이다. 종자 보관소 마당 앞에는 긴 개울이 흐르고 있고 그 위에는 제재목으로 간단히 만든 길이 10m의 다리가 걸려있다. 주위는 완전히 정글 속이다. 자연의 정글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보존해두고 만든 식물원답게 앞뒤 좌우를 살펴보아도 보이는 것은 울창한 정글이다. 더욱, 경사가 급한 곳과 완만한 곳이 스스로 발란스를 맞추어서 방문객에게  열대림의 진수를 보여준다. 특히 다리 위에서 보는 경치는 압권이다.

다리에서 서쪽을 보니 남태평양의 대표적인 침엽수인 Norfolk Pine (Araucariaceae Araucaria heterophylla)과 활엽수 조림목인 Kamarere(Myrtaceae Eucalyptus deglupta)가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다. 주위를 천천히 걸으며 이 나무, 저 나무를 천천히 감상하면서 걷다 보니 현지인들이 카누를 만드는데 최상급으로 여기는 Ngali Nut (Burseraceae Canarium indicum)이 우람한 등치를 세우고 서있다. 몸통에서 대형 카누가 여러 척 나올 것 같다.

현지인들은 이 나무의 열매도 잘 먹는다.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조그만 온실도 시야에 들어온다. 이 온실의 출입문 위에는 ORCHID HOUSE 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난(蘭)만을 모아둔 온실이다. 비록 지붕은 부서졌지만 안에는 Orchidaceae Dendrobium gouldii 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화사한 난들이 종류별로 놓여있다. 자세히 보니 솔로몬 군도의 각 섬 별로 자생하는 난들이 각각 청아한 자태를 뽐내며 분류되어 자라고 있다.

오늘날 호니아라 식물원은 삼림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주말에는 현지인들이 가족과 함께 이곳을 방문하여 BBQ 마당에서 가족들끼리 오랜만에 야외 BBQ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식물원 가운데를 가로 지르며 흐르는 냇가에서 발을 담그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또 다른 한 주간을 위해 충전하곤 한다.

필자에게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나라이므로(특히 젊은 날을 거의 이곳에서 보내지 않았던가) 남들이 보기에는 뭔가 세련되어 보이지 않지만 필자에게는 고향을 방문하는 푸근한 기분을 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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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혁. 동원산업 상임고문·강원대 산림환경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