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짧은 순간의 여행자
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짧은 순간의 여행자
  • 나무신문
  • 승인 2011.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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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 : 김도언

   
마지막 지하철에는 언제나 사람이 가득하다. 그들은 이제 막 어느 순간을 빠져나와 어느 순간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술을 마신 사람도 있고, 야근을 마친 이도 있다.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연인과 저녁을 먹고 짧은 데이트를 아쉬워하며 집에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남자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과거와 미래가 섞여 있고, 오른쪽과 왼쪽이 섞여 있다. 그들의 사연은 그들의 몸에 독특한 체취를 심어놓는다.

심야의 지하철을 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사람의 체취는 지문처럼 모두 다르다는 것을. 심야의 지하철은 이토록 수많은 체취를 가진 사람들을 싣고 어두운 터널을 지난다. 그리고 몇 명의 사람을 과거에서 내밀어 현재의 플랫폼에 내려놓고 또 다시 터널을 지난다. 그렇게 몇 개의 터널을 지나고 나면,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 짧은 여행은 멈추지 않고 되풀이된다. 우리는 모두 마지막 지하철을 탄 짧은 순간의 여행자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가소롭고 하찮은 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 순간들이 이어져서 비로소 우리의 삶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김도언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미술과 사진에 관심이 많다. 1998년 대전일보,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소설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이룸), 『악취미들』(문학동네), 『랑의 사태』(문학과지성사),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민음사), 『꺼져라 비둘기』(문학과지성사), 청소년 평전 『검은 혁명가 말콤X』(자음과모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