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피안 너머
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피안 너머
  • 나무신문
  • 승인 2011.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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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 : 김도언

해는 벌써 진 으슥한 저녁, 선술집에서 술 한 잔 마시며 하루의 시름을 내려놓는 사람들. 그들은 동료도 없이 혼자 왔다. 처음 어머니의 자궁을 열고 세상에 나올 때 혼자였던 것처럼, 단 한번도 그 사실을 잊은 적이 없는 것처럼 그들은 철저하게 혼자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는 것이다. 우연을 가장해 옆자리에 앉은 이에게 말을 걸어봄직도 한데, 그것조차 허망하게 여기는지 아무런 관심이 없다. 자신의 생애를 고집스럽게 홀로 끌고 가겠다는 듯이 허공에 눈길을 줄 뿐이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어렵게 사는 누이동생을 떠올리는가. 아니면 부쩍 늙은 노모를 생각하는가. 아무도 묻지 않는다. 허공을 채우는 건 질문 대신 뿜어지는 담배연기뿐. 선술집 주인도 홀로 바쁘다. 그는 생선을 굽고 국물을 덥힌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영예로운 일이라는 듯이. 그렇다, 그 저녁, 이들 모두는 저마다의 피안 너머를 궁리해보는 것이다. 저 피안 너머에 있을 자신이 돌아갈 자리를 짐작해보는 것이다. ---------------------------------------
■김도언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미술과 사진에 관심이 많다. 1998년 대전일보,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소설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이룸), 『악취미들』(문학동네), 『랑의 사태』(문학과지성사),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민음사), 『꺼져라 비둘기』(문학과지성사), 청소년 평전 『검은 혁명가 말콤X』(자음과모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