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맨발의 풍요로움
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맨발의 풍요로움
  • 나무신문
  • 승인 2011.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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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 : 김도언

아무것도 없는 맨발 차림으로 누군가가 편하게 소파에 드러누운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모양이다. 바닥에 닿아 있지 않고 공중을 향해 있는 발바닥이 품고 있는 뜻은 아주 간명하다. 더이상 걷고 싶지 않다는 얘기.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 더 이상 사랑하고 싶지도 사랑받고 싶지도 않다는 얘기. 그는 바닥으로부터 발을 해방시켜 놓고 세상에서 가장 한가한 시간을 갖고 있다. 그 시간은 비어 있기 때문에 무한하다. 우리 저 공중을 띄워놓은 발의 태연스러움과 능청스러움을 배우자.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지는 말자. 현실보다 더 빠르게 현실에 적응하느라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나중에 주어진 삶을 다 살아내고 뒤를 돌아봤을 때 발이 바닥에 닿아 있던 시간이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울 수는 있겠지만, 그가 결코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오지 않은 시간에 투자하느라, 지금의 풍요로움을 모두 포기했기 때문이다. --------------------------------------------
■김도언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미술과 사진에 관심이 많다. 1998년 대전일보,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소설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이룸), 『악취미들』(문학동네), 『랑의 사태』(문학과지성사),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민음사), 『꺼져라 비둘기』(문학과지성사), 청소년 평전 『검은 혁명가 말콤X』(자음과모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