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담쟁이넝쿨 가지가 전해준 말
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담쟁이넝쿨 가지가 전해준 말
  • 나무신문
  • 승인 2010.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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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 : 김도언

   
헐벗은 담쟁이넝쿨 줄기가 담벽에 안간힘을 다해 붙어 있다. 푸르던 잎, 물기 머금은 싱그러운 표정은 온데 간데 없이 이제는 본능 같은 생의 의지만으로 제 몸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굴욕적인 삶이다. 감수성도 없고 취향도 없고 사랑마저 버릴 때 생명은 죽음에 가까워진다. 저 담벽에 궁상맞게 달라붙어 있는 담쟁이넝쿨에게는 품위를 지탱할 감수성도, 생의 방향을 깨우는 취향도, 그리고 사위를 푸르게 하는 사랑도 찾아볼 수 없다.

죽지 못해 사는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놀라워라. 이 혹독하게 사나운 계절을 담벽이라는 궁지에 달라붙어 견디면서 담쟁이넝쿨은 놀라운 생명을 품어낸 것이다. 그 생명은 봄빛과 함께 움터올라 감수성과 취향과 사랑의 힘으로 푸른 이파리를 죽죽 밀어올린다. 아, 담쟁이넝쿨을 보니 알겠다. 생이란 굴욕만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님을. 물론 그것도 알겠다. 그렇다고 해서 삶이 환희만으로 채워진 것도 아니란 것을. 삶은 굴욕과 환희가 서로를 마주보면서 위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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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미술과 사진에 관심이 많다. 1998년 대전일보,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소설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이룸), 『악취미들』(문학동네), 『랑의 사태』(문학과지성사),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민음사), 『꺼져라 비둘기』(문학과지성사), 청소년 평전 『검은 혁명가 말콤X』(자음과모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