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위대한 발
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위대한 발
  • 나무신문
  • 승인 2010.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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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 : 김도언

   
발이 있다. 발은 운명을 떠받친다. 운명의 혹독한 무게를 말이다. 발은 가장 낮은 곳에서 운명의 최후의 순간을 버티는 것이다. 물구나무를 서지 않는 이상 발은 하늘을 지향하지 않는다. 발은 바닥만을 오로지 바닥만을 꾹꾹 눌러 밟을 뿐이다. 저 바닥의 천함과 저 바닥이 가리키는 가난, 저 바닥이 가리키는 모멸을 껴안는 것이다.

그리하여 발은 마침내 어떤 사람이 살아온 시간의 모서리에 스치고 깎이는 완벽한 조형물이 된다. 발을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 생각을 수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발은 몸의 일부가 아니라 하나의 기관, 돌출된 부속 같은 것이다. 발레리나의 발과 축구선수의 발, 보일러 배관공의 발과 높이뛰기선수의 발은 지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 혹은 지상과 거리를 두는 방식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된다. 눈과 손이 화려하게 다른 운명과 교접할 때, 발은 막 쓸려오는 바닥의 차가움을 온몸으로, 저돌적으로 막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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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미술과 사진에 관심이 많다. 1998년 대전일보,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소설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이룸), 『악취미들』(문학동네), 『랑의 사태』(문학과지성사),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민음사), 『꺼져라 비둘기』(문학과지성사), 청소년 평전 『검은 혁명가 말콤X』(자음과모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