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비오는 날의 음악
사진이 있는 짧은 산문/비오는 날의 음악
  • 나무신문
  • 승인 2010.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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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 : 김도언

비오는 날, 어떤 건물의 난간에 오래 서 있었다. 비는 사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비는 온몸으로 공(空)을 관통해 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실상 비가 비로서 우리의 심상에 들어오는 것은 ‘소리’를 통해서이다. 나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비의 진정한 육체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그 소리를 통해서 잊혀진 가난한 기억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닌가. 보라, 비오는 풍경 앞에 악보처럼 오선이 그어져 있다. 거기에 빗방울도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오래도록 빗방울과 눈을 마주치면 마침내 음악이 들려오는 것이다. 비가 연주하는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 저 오선이 지정하는 리듬과 박자를 맞추면서, 비는 좀처럼 끝나지 않을 연주를 하는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비를 오랫동안 사랑한 사람들은, 비의 예보가 있을 때, 비가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부러 창문을 열고 손을 내어보지 않는다고. 그들은 태연한 표정으로 귓등을 두드리는 비의 소리, 음악을 기다릴 뿐이다. ---------------------------------------------
■김도언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미술과 사진에 관심이 많다. 1998년 대전일보,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 소설집 『철제계단이 있는 천변풍경』(이룸), 『악취미들』(문학동네), 『랑의 사태』(문학과지성사),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민음사), 『꺼져라 비둘기』(문학과지성사), 청소년 평전 『검은 혁명가 말콤X』(자음과모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