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봄으로 가는 길은 운주사를 찾는다
여행/봄으로 가는 길은 운주사를 찾는다
  • 장태동
  • 승인 2007.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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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서 처음 만난 석불 앞에 섰다. 사람의 손으로 파고 다듬은 흔적이 희미하다. 천 년 전 석불을 만든 석공의 피땀 어린 손길이 오랜 세월에 묻혀 아련하다. 그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천개의 탑과 석불을 만들었을까.

무엇에 대한 사랑이 그렇게 절절했으면 천 개의 차디찬 돌덩이에 그 마음 얹었을까? 한 때는 나도 한 사람을 죽도록 사랑했으며, 그 사랑 불길 되어 세상 다 태울 것 같이 타올랐었지. 천 년 전 이름 모를 석공의 사랑 또한 그러했으리라. 그 것이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이든, 정토를 향한 마음이든, 평등 세상을 향한 마음이든…. 석불의 얼굴모습이 바람의 손길에 깎여나가 알아 볼 수 없게 된 그곳에 이루어 지지 못한 사랑의 다짐이 맺혀 있었다.

전설이 역사가 되고 역사의 증거가 현재에 남아 내 앞에 있다. 그러나 역사와 전설의 무게 보다는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가까운 석불들이다. 토속적인 얼굴형태, 삐뚤어진 몸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이목구비의 선들, 목이 잘려나간 석불, 목만 남은 석불 등 운주사 석불은 온전한 형상을 하고 있는 게 없다. 어딘가 부족하고 어수룩하다.

석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군내버스 안에서 본 술 취한 할아버지 모습이 겹쳐진다. 농사일에 집게손가락이 휘어버린 할머니의 손이 떠오른다. 몸빼바지에 광주리를 이고 버스에 올라타는 아줌마 얼굴이 생각난다. 내 옆자리에 앉았던 코흘리개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보인다.

그리고 또 석불에는 스무 살 내 첫사랑의 마음이 새겨있고, 대나무 말을 타고 놀던 어린 시절 친구들이 있고, 어제 저녁 시내버스에서 어깨 스치고 지나갔던 누군가의 뒷모습이 남아있다.

석불의 생김새가 다 다른 것은, 아마도 천 년 전 석공의 사랑했던 세상, 사랑했던 사람들 마음까지 담아 석불을 만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모든 사람 마음에 부처가 살아 있다는 말처럼 석공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에 살아 있는 부처를 일깨우기 위해 천불천탑을 만들지 않았을까.

아니면 한 여인을 향한 절절한 사랑의 마음을 불상에 담은 것은 아닐까. 그것도 아니면, 정말로 그것도 아니면 언젠가는 전설처럼 와불을 일으켜 세워 세상을 뒤엎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 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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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