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얹다, 담다, 보다 , “가구는 인문학이다”
인터뷰 -얹다, 담다, 보다 , “가구는 인문학이다”
  • 이호영 기자
  • 승인 2010.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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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가구학교 김성수 교수

   
“가구 디자인은 가슴과 머리로 해야 합니다. 모든 디자인에서처럼 ‘인간에 대한 배려’가 가장 기본이죠. 자신만의 가구 디자인 철학을 갖춘 인재 배출이 우리 학교의 목표입니다.”
가람가구학교 연구실에서 ‘의식을 갖추지 못한 손재주는 허망할 뿐’이라고 강조하는 조형예술가이자 가구 작가 한국조형예술원(KIAD) 김성수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먼저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신입 작가들의 출품작에 대해 간략히 소개했다. 그는 “졸업생들은 크게 두 과제를 수행했다”며 “하나는 순수 조형 연습을 위한 CD-RACK과 다른 하나는 책상으로서의 절대 용도를 가진 가구”라고 설명했다.
CD 선반의 경우는 비인체계 가구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시회에서와 같은 조형 실험이 가능했던 셈.


그는 “인체계 가구에서는 인체공학이 더 중요해진다”며 “작가들이 조형 실험을 할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은 현실에서 ‘CD-RACK’이라는 다소 ‘어정쩡한’ 가구로서의 용도를 부여해서라도 단순한 ‘오브제’에서 탈피한 하나의 가구, 그러나 조형성을 강조한 가구를 제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종이라는 소재가 갖는 상징성이 있잖아요. 결국에는 종이도 나무니까. 말아서 나무를 표현했지만 그 자체가 결국에는 나무인 셈이죠.”
이번 전시회에서는 김 교수도 ‘사람과 나무 사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는데 숲에서 나무를 보는 설치미술 작품이다. 사람이 ‘자연과의 대화’ 속에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
그는 “그 옆의 회화도 소재가 나무”라며 “실루엣을 통한 리듬감을 인식하도록 의도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간결하고 정갈한 디자인을 좋아하는 김 교수가 이제껏 만든 작품 가운데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2004년도 작품으로, 이 경우도 ‘사람과 나무 사이’를 주제로 했다. 서 있는 두 개 기둥의 용도는 옷걸이로 표현한 대상은 남자와 여자다.


설치미술과 회화 뿐만 아니라,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한 김 교수가 “신도 30명 정도 되는 영월 산 속 작은 교회 건물”이라며 가리킨 가구 학교 연구실 사진 속에는 돔 형식의 지붕을 가진 본당, 그 뒤 교육관, 옆의 게스트 하우스 및 앞 편 오른 쪽 사택을 갖춘 목조 건축물이 들어서 있었다.


그에게 특히 건축에서 나무는 “많이 쓰면 다소 징그러운 소재”다.
향을 내는 모든 게 독을 품고 있다고 보면 ‘인간이 중심이 되는’ 디자인에서 과다한 나무 사용은 허용할 수 없다고 그는 잘라 말한다.


꼬장꼬장하기로 유명한 경남 산청 동네의 김해 김가 73세손 그가 처음 디자인계에 입문했을 때 집안에서는 ‘환쟁이’라며 학비를 다 끊었을 정도였지만 이 길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는 김 교수.
어린 시절, 산에서 물리도록 나무를 봐서 나무가 싫었다고 밝힌 그는 지금은 나무와의 동행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그 성질과 성향이 김 교수와 닮았기 때문이란다.


“모든 디자인은 감성으로 시작해서 이성으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영감으로 발상(發想)할 수는 있지만 이는 감성 의존형”이라며 “자신만의 디자인 방법론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디자인의 출발점이자 대상, 목적은 인간이다. 인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디자인은 생명력이 없다. 디자인은 그 자체가 인간인 셈으로, 인간을 빼놓고서 디자인은 성립하지 않는다.


디자인은 본질적으로 항상 현재보다 나은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며 그 수단이다. ‘삶의 질’ 향상이라는 점을 빼는 순간 해를 주는 지장물로 돌변하는 게 디자인이다. 
김 교수는 “특히 가구 디자인은 인간에 대한 고민, 치열함을 담고 있어야 한다”며 “가슴과 머리로 먼저 그리며, 형태화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라고 강조한다.

이어 그는 “가구의 본성이자 진정성은 ‘얹다, 담다, 보다’로 요약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배려’에 기초했느냐의 여부”라고 지적했다.

“가람가구학교에 입학하려는 학생들은 먼저 인간을 중시하는 철저한 직업 철학을 갖춘 문화 사회 운동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인재여야 합니다.”
가구 디자인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그는 상당히 엄격하다.

학생 선발에서 강조하는 것은 “당장의 손재주 이전에 뚜렷한 직업 철학, 그리고 문화 사회 운동가로서의 이념을 지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느냐의 여부”다.


교육의 지향점은 작가 겸 리더 양성이다. 노무 제공자로서의 장인이 아니라, 작가 정신과 장인 정신을 지닌 문화 사업가로, 지역 사회 전문가로 사회 공헌을 실천할 수 있는 인재 배출이다. 
한 마디로 말해 “지역민이 와서 수다 떨고 짬 나면 간단한 가구 정도를 만들도록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세미나도 열며 작은 발표회까지 이끌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가구 학교의 교육 목표다. 


선발에서 지극히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데, 2시간여 가까운 인터뷰를 통해 지원하는 100명 가운데 10명만을 받아들인다.
김 교수는 “2년 간의 과정에서 이들이 가구에 대한 자기 철학을 지니도록 지도한다”며 “톱질 한번 더 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 책을 한번 더 읽도록 독려하고 인간에 대한 배려를 갖춘 가구를 생산하도록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숙련공 장인으로서의 훈련보다 철저하게 인간에 대한 배려를 갖추고 활동할 수 있는 교육에 초점을 둔다.
“하나의 가구를 만들 때 이 가구가 왜 필요하고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나 의문을 제작자로부터 본래 안고 태어나야 가구는 생명력이 길고 대물림할 수 있다”고 하는 그의 말에서 그가 양성하고자 하는 가구 디자이너의 상(像)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