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응오의 쇄설/강자의 미학
유응오의 쇄설/강자의 미학
  • 나무신문
  • 승인 2009.05.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종격투기를 보면 깨닫는 게 있다. 강자는 아름답다는 진리다. 강자들을 보노라면 강해서 아름다운 게 아니라 아름다워서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종격투기 경기 중 프라이드라는 게 있었다. 이 경기의 최강자는 단연 효도르·노게이라·크로캅 3명이다. 효도르는 러시아 선수로 얼음 파운딩, 즉, 눕혀 놓고 마구잡이로 패는 게 주특기다. 노게이라는 브라질 선수로 주짓수, 즉, 눕혀 놓고 여기 저기 온몸을 꺾는 게 장기다. 크로캅은 크로아티아 선수로 하이킥, 즉, 머리를 발로 걷어차는 게 특기다.


각기 장기는 다르지만 그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못 사는 조국의 국민이자 유달리 자존심이 강한 민족의 자손이라는 게 첫째이고, 그 흔한 문신하나 몸에 새기지 않았다는 게 둘째이고, 일체 두려움이 없이 상대방을 맞는다는 게 셋째이고, 비장한 얼굴로 경기를 시작한다는 게 넷째이고, 경기가 끝난 후 좀처럼 승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게 다섯째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경기종이 울리길 기다리는 효도르의 모습이나 경기 전 오랫동안 위궤양을 앓아온 이가 쓴물이 식도로 역류하는 것을 참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크로캅의 표정은 다르면서도 닮았다. 삶의 밑창을 모두 봐 버린 듯한 표정. 크로캅은 자신을 강하게 키운 것은 내전이 끊이지 않았던 조국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반문한다. “눈앞에서 친구가 죽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효도르에게도 몰락한 공산주의 종주국 국민의 우수가 깃들어 있다. 강자는 그렇게 ‘허무의 힘’으로 단련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극히 공격적인 경기를 하는 효도르와 거꾸로 매우 수비적인 경기를 펼치는 노게이라도 다른듯 닮았다. 나이가 동갑이어서가 아니다. 노게이라는 어릴 적 트럭에 친 흉터를 등에 지니고 산다. 효도르도 노게이라와의 경기에서 버팅으로 인해 큰 상처를 입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는 사각의 링에서 그들이 제일 먼저 터득한 것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미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른 그들이기에 경기에 임하면 일체 거침이 없다. 그저 자기의 주먹을 내뻗을 뿐이다. 그들은 이종격투기 선수라면 누구나 몸에 하나씩은 지니고 있는 문신을 새기지 않았다.


힘을 팔아먹고 사는 이들이다 보니 이종격투기 선수들은 몸의 문신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그저 힘 자체로 표현한다. 그들이 경기 후 심판이 누구의 손을 올리던 순순히 따르는 이유도 힘의 승패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각의 링에도 철학은 있다. 피 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읊은 《바가바드 기타》의 노래가 숭고한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