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충남 금산 보곡산 봄 풍경
여행/충남 금산 보곡산 봄 풍경
  • 장태동
  • 승인 2007.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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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도 산도 다 옛 기억 속 시골 고향 같다. 길은 산굽이를 따라 구불거리며 모퉁이를 돌아나간다. 그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신비롭다. 봄이 만들어 내는 색이 조화를 이루었다. 그렇게 산 전체를 뒤덮고 있다.

먼 데 산 능선에 연둣빛 신록의 나무들이 솜털처럼 돋아났다. 푸른 능선은 성벽처럼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 보고 있다. 강철 같은 겨울을 뚫고 피어난 푸른잎의 성벽은 그 어느 것으로도 허물 수 없을 것 같다. 부드러운 게 강한 것을 이기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사람만이 자연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지배하려고 한다. 쿠데타다.

자연은 하나지만 고향처럼 푸근하거나, 솜털처럼 부드럽지만, 때로는 그 어떤 것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 특히 봄은 더 그렇다.

산굽이 돌아 정상마루 쯤 세워진 팔각정에 올랐다. 우리가 지나온 길이며 앞으로 가야할 길도 그 눈길 안에 다 있다. 푸른 신록 사이사이에 흰색의 산벚꽃이 피어났다. 가지마다 빛나는 흰빛은 폭죽이 그려내는 불꽃같다. 산에 흰빛 또한 연초록 새순의 빛과 어울려 파스텔 톤으로 빛난다.

숲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봉오리 벌어 활짝 피어있는 꽃송이들을 바라보며 꽃망울을 터뜨리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탕탕탕’,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총성처럼 온 숲에 울려 퍼졌을 것이다. 그 순간 그 나무 아래 있었다면 소리 없는 그 소리에 가슴이 뛰고 불꽃처럼 피어나는 꽃송이마다 내 마음을 빼앗겼으리라. 

이제 정상에 섰으니 내려갈 길이다. 돌아가는 길이 아쉽다. 마른 봄계곡과 흙먼지 풀풀 날리는 황량한 산길, 그곳에 피어난 꽃과 신록의 물결은 거칠면서 아름다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색다른 봄이다.  

풍경에 눈이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돌아가는 길 풍경이 아직도 낯설다. 계곡이 앙상한 속내를 다 내보이고, 돌산 절벽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아! 저런 곳에 생명의 씨를 뿌려 꽃을 피우게 한 건 누구였을까.

절벽은 길을 내주고 꽃을 피웠다. 연둣빛 새잎에게도 절벽은 생명을 허락했다. 계곡을 따라 올라온 봄을 맞아 절벽은 꽃과 새순을 피워 잔치를 열었다. 그 앞에 들어가 서 있었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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