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와에 쌓인 눈은 포근하다
여행/기와에 쌓인 눈은 포근하다
  • 장태동
  • 승인 2007.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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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날씨에 얼어붙은 세상, 그런 겨울이 ‘휴식’ 같은 것은 눈 때문이다. 모두가 잠든 사이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아무도 모르게 세상에 내려온 눈. 아침 창을 여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눈꽃세상을 보았다면 작은 여행을 준비할 것.

눈과 가장 잘 어울리는 건축물은 한옥이다. 너울거리는 한옥 기와에 내린 눈은 기와 모양 따라 흰 물결이 된다. 돌담 위에 앉은 눈은 담을 경계가 아니라 풍경으로 만든다. 장독대 위에 소복하게 쌓인 눈은 따듯한 정이 넘치는 가족의 행복이다.

내가 사는 곳이 한옥이라면 찻물을 끓여 놓고 눈 쌓인 마당과 마주하며 여유 있는 시간을 누릴 수 있으련만. 이런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니어서 눈 온 뒤 고궁 나들이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 보다 많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발자국 하나 없는 하얀 눈밭은 따듯한 아름다움이 있다. 한옥과 어울린 눈은 모든 것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선한 마음을 선물한다. 

서울에 있는 고궁 가운데 설경이 가장 아름다운 창경궁을 찾았다. 날씨가 풀려 생각 보다 눈이 예쁘게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히 나뭇가지와 기와에 앉은 고요한 숨결 같은 눈을 볼 수 있었다.

서울대 병원 후문 쪽 매표소를 지나 궁 안으로 들어섰다. 처마가 맞닿은 명정전과 그 주변 건물 기와에 눈이 앉아 흰 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명정전을 마주보며 품계석이 있는 길에서 오른쪽으로 발을 돌렸다.

건물을 벗어나 나무와 눈이 어우러진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녹색의 침엽수에 앉은 흰 눈이 평온과 안식의 풍경을 만든다. 그 때 한 마리 까치가 ‘푸드득’ 가지를 차고 날더니 나뭇가지 위 잔설이 내 어깨 위로 앉는다. 까치는 멀리 날지 못하고 다시 제가 앉았던 곳으로 날아와 앉았다.

창경궁에서 종묘로 넘어가는 구름다리를 건너 조선 왕조의 역대 제왕들의 신위가 모셔진 종묘 정전 거대한 기와건물 앞에 섰다. 종묘 정전 앞에 서면 언제나 오래된 사랑이 떠오른다. 눈 내린 종묘 정전은 장엄하면서 엄숙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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