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 문화의 이야기꽃
문화칼럼 - 문화의 이야기꽃
  • 김도언
  • 승인 2007.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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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와이프와 함께 부암동 북악산 자락에 있는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놀고 왔다. 모임의 명분은 봄맞이 꽃놀이였다. 북악산 전경과 서울성곽이 드러나 보이는 그의 집은 전망이 아주 좋았다. 마당에 피어 있는 나무와 꽃도 예뻤다. 산이 가까이에 있어서 공기도 아주 좋았다.

부암동에 모인 멤버는 집 주인인 최윤필 기자와 소설가 겸 칼럼니스트 고종석, 시인 황인숙, 번역가 권경희, 변호사 강금실, 그리고 대학 교수, 까페 주인 등이었다. 변호사 강금실과 고종석, 황인숙 선생은 매우 막역한 친구 사이다.

개인적으로 처음 보는 사람이 몇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아무래도 강금실 전 장관이었다. 그녀는 TV나 신문에서 볼 때보다 훨씬 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라면을 끓이고, 일상적인 삶의 형편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등 무척 솔직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것이 꾸민 모습처럼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붉은 와인, 흰 와인, 안동소주, 맥주 등을 마시면서 나지막히 정담을 나누었다. 주로 나눈 이야기는 문화계 소식이나 화제였다. 이를테면, 소설가 L선생님의 근황이나 남프랑스의 언어 습관 같은 것이었다. 대개 사람들이 모이면 정치를 화제 삼아 얘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자신의 성향이나 습속, 삶의 지표 등을 드러낸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정치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그들은 문화를 화제 삼아 이야기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이나 가치관 등을 훌륭히 드러냈다. 오고 간 이야기는 매우 흥미진진했으며 때때로 웃음꽃이 피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는 태도나 입장 등이 얼마나 명료하면서도 세련되게 그 사람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그에 비하면 정치에 섞인 정체성은 너무나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많은 이들이 문화의 이야기꽃을 피우며 자신들의 삶의 태도와 입장을 세울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는 길에는 비를 조금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