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푸르른 날의 기억 저편에 서서~ 물푸레나무
네 푸르른 날의 기억 저편에 서서~ 물푸레나무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1.12.3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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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꽃이 있는 창 54 - 글 사진 서진석 박사

물푸레나무(Ash)

이 나무 고목은 고향 구성에 가면 방초정(芳草亭)이라고 있는데, 그 앞 연못에 늙은 가지, 줄기를 물에 늘어뜨린 모습을 보여주는 게 물푸레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세미트리에는 물푸레나무(European Ash Fraxinus excelsior L., Green Ash Frax. pennsylvanica ‘lanceolata’, Golden Ash Fraxinus excelsior ‘Aurea’, Manchurian Ash Fraxinus mandshurica)와 느릅나무가 있다. 느릅나무는 아주 작은 동그란 잎들이 다닥다닥 붙어 달리는 데 반해, 물푸레나무의 잎덩이는 아까시나무 잎처럼 큰 잎자루에 좌우로 풍성한 녹색의 소엽(小葉)을 달아서 푸른 여름 한나절 더위를 씻기에 충분한데, 씨앗도 갸름하고 편평하게 무리 지어 달리기에 이 나무라는 걸 이제 알게 된다. 

가지를 꺾어 물에 담그면 물이 푸르게 된다고 하여 물푸레나무라나? 어쨌든 노르웨이 메이플처럼 줄기는 골이 촘촘한 세로 직립성의 껍질(樹皮)를 갖고 한창 때 푸른 기운을 띈다. 특히나 Green Ash는 더욱 단단해 뵈는 수피 질(質)로 세로 방향 골이 European Ash보다 깊게 패여 식별이 간다. 또한, Golden Ash는 늦봄에 때 아닌 노란 단풍이 든 것처럼 노란 잎새를 다는 것이 가까이 다가가 보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풍경화로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 세잔이나 마티스가 이 나무들을 보았다면 즐겨 쓰는 황토, 주황색 위로 늠름하고도 푸르름 일색인 한 나무를 화폭에 멋있게 그려냈을 법하다. 

그야말로 이 나무를 보고 있으면 류달영 선생님의 ‘그대 아끼게나 젊음을/ 이름없는 들풀로 사라져 버림도/ 영원히 빛나는 삶의 영광도/ 오직 젊은 한날의 쓰임새에 달렸거늘/ 그대 오늘도 가슴에 큰 뜻을 품고/ 젊은 하루를 뉘우침 없이 살게나’ 하는 대학시절의 도서관 입구측 액자 속에서 묵향(墨香)을 발하던 인생 지침(指針)의 서(書)를 떠올리곤 한다. 

마로니에(七葉樹)만 동숭동 가로의 연극(演劇)을 보고 나서 함께 걷던 연인의 젊음날의 추억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푸르른 물푸레나무 아래에 서면 겸허히 길다란   녹색 잎을 피우는 성장기(成長期)를 거치면서 조로록 씨앗을 늘어뜨리며 여물어 가는 청춘의 행로(行路)를 보는 것 같아 흐뭇하고도 정감(情感)이 가는 나무이다.  

 

네 푸르른 날의 기억 저편에 서서~ 물푸레나무

연두 비껴 초록이 진 자리
내 나무는 푸르름 중에 으뜸인 너를 부른다

청춘의 나무라면 너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
대나무가 절개의 풀이라면
그 푸르름 가운데서도 
네 나무는 풍류의 나무라고 해야겠지

방초정에서 세월에 누운 네 품을 
멀리서 그려본다

청춘을 보내고, 
떠나 보내고서,
돌아눕는 
독 짓는 늙은이가 게 있었어

 

서진석 박사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