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보시(布施)하는 전나무
몸 보시(布施)하는 전나무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1.03.0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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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꽃이 있는 창 38 - 글 사진 서진석 박사

 

몸 보시(布施)하는 전나무

효녀 심청이 
심봉사 아버지 눈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석에
인당수 몸 바쳤지

 

Fraser fir~
Balsam fir~

 

어느 낯선 곳
내 몸 두면 고향이려니 
뿌리 박고 
십여년 넘게 자란 나무

 

연말, 연시 전구 불 밝혀
환하게 한 몫 하라고
크리스마스트리로 몸 팔려 가네

 

제 몸 사루어 떠나갈 제
단돈 65$ 몸 값

 

고향도 부모도 떠나
어디론가 팔려가네

 

롯의 아내처럼 뒤돌아 보지 마라~

 

그래도 향긋한 네 체취
네 살아온 길에 
떨구고 가노니…

 


전나무(Fir)
연말이 다가오면 으레 거리와 우리네 마음은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연초의 새해 맞이로 들뜨게 된다. 이 곳 교회의 공터에는 연례행사처럼 ‘보이 스카우트’ 간판을 달고 성인 키 높이만큼 잘 키운 이등변 삼각형 모양의 전나무를 판다. 주위에 가서 바늘잎(針葉)에 코를 대면 향긋한 정유(精油) 냄새가 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 옴에 전구를 매어 달거나 연말 연시 집안 치장용으로 사가지고들 간다. 

작은 체인톱으로 치수를 요구하는대로 잘라준다. 뿌리가 잘려나가 아랫도리를 이미 잃은 전나무는 이 곳 사람들의 세모(歲暮) 정서(情緖)에 맞추어 그렇게 팔려 간다. 아마 백일도 못 채우고 집 앞에 버려지는 이 전나무 치장트리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세속의 욕심에 맞추어 비록 감탄고토(甘呑苦吐)는 아니더라도, 목적이 다 하면 버려지는 인간사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현관 문 앞에 걸어두는 화환(花環, wreath)과 함께 전구 불을 밝히는 전나무 트리는 이 곳 기독교 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낯익은 한 겨울 풍경이라고 해 두자. 

 

서진석 박사
서진석 박사

서진석 박사 
서울대학교 1976년 임산가공학과 입학, 1988년 농학박사 학위 취득(목질재료학 분야).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985년~2017년 연구직 공무원 근무(임업연구관 정년퇴직). 평생을 나무와 접하며 목재 가공·이용 연구에 전력을 기울인 ‘나무쟁이’. 시집 <숲에 살아 그리운 연가 戀歌>.
현재 캐나다 거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