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기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1.03.03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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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식 칼럼 | 신두식 이사장
신두식 이사장
바이오매스협동조합
(전 산림바이오매스
에너지협회 회장)

필자는 베이비붐세대에 태어났다. 6.25전쟁 후 사회가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에 출산이 많아지고 그 세대들이 성장하면서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주역들이 되었다. 전후 어려운 사회생활을 직접 격은 것은 아니지만(사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유년기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다.)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 2년여 전 정도 후부터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그때 더 이전의 시대에는 가난과 굶주림이 더 심했을 것이다. 내가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은 주식이 잡곡류(보리밥, 감자, 고구마)이었을망정, 배고픔을 안고 자라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더 부유한 사람도 있었고 더 가난한 사람들도 있었다. 보편적 기준에서 보면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가난에는 찌들었던 생활이 아니었나 싶다. 

이런 과정을 살아온 베이비붐세대들의 공통점은 우선적으로 가난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들이 있었고, 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과정에 부자가 되는 기회를 갖기도 했던 것 같다. 서울의 인구가 그리 아주 많지 않았던 시절 너나나나 없이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해 일거리를 찾아 헤매다 정착하고, 돈벌이가 되는 기회를 얻기도 하고 일부는 공장이나 부동산으로 부자가 된 사례들이 많이 생겼다. 필자의 주변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을 많이 보곤 하는 편이다.

그럼 지금의 시대는 어떠한가 반문해 본다. 과거에 비해 훨씬 발전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발전된 사회이다. 그러나 발전된 세상이기는 하지만 모두가 다 부자가 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상대적 편차가 있고 성취감과 박탈감이 공존하고 있다. 어떤 부류는 세상이 투명해지고 인터넷 등으로 정보의 교류가 빠르고 시장경제에서도 경쟁이 치열해 부자가 되기 너무나 어렵다고 주장하는 반면, 빠른 변화시대에 다양한 변수들이 있는 만큼 과거에 없던 새로운 기회들이 생기고 그 기회를 잡고자 노력하는 분들도 많이 있다. 어렵다고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 세상에서 뒤지게 마련이다. 절박한 마음이 있어야 원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필자가 업무적 연관이 있는 지금 사회에 갓 진출하는 젊은 층과 대화를 해보면 상상 외로 경제공부(부동산)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그 중에서도 엘리트에 속하는 부류는 계층상승을 위한 노력들을 많이 하고 있다. 과거의 계층은 경제력만 갖고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현재 세대는 지식, 가치관, 인맥 등 다양한 기반보다 경제력에 더 비중을 많이 두고 있기에 그 계층에서 이탈되지 않기 위하여 상당한 노력들을 하고 노력에 걸맞은 성과들도 만들어 내고 있다. 서울에서 내 집을 소유하고 있느냐 없느냐, 어떤 집을 소유하느냐에 따라서 신분 계층이 만들어지는 게 현실이다. 우울하고 불행한 상황이지만 현실이기에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더욱이 이 신분계층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에게 대를 이어간다는 게 더 가슴 아픈 현실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 왜 부자가 되어야 하는지, 부자가 되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명확히 할수록 부자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대부분의 부자들은 자신을 위해 부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기회를 얻기 위해 부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기업경영자는 직원을 고용하고 사회적 기여와 영향력에 대한 자긍심을 얻기도 하고 작은 부자들은 주변의 친인척에서부터 지역 사회단체 기부 봉사 등에 보람을 얻기도 한다.

극심한 절대적 목표를 세우자. 목표에는 숫자가 필요하다. 정성적 기준은 달성하기 위한 동력이 떨어진다. 명확한 숫자가 있어야 달성을 위한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보충할 수 있다. 같은 사물을 바라보더라도 필요한 사람이 해법을 먼저 찾기 마련이다. 

유사한 사례를 보자. 낯선 길을 찾아가는데 운전을 하는 사람과 동행하는 사람을 보면 다음 기회에서 운전을 한 사람이 훨씬 길을 더 빨리 찾는다. 동행자는 운전자가 목적지까지 대려다 주기 때문에 애써 길을 찾을 필요성을 덜 느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능력에 대한 차이가 아니고 필요성에 대한 차이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을 필요성이 있는 환경으로 데려가야 한다. 편한 일상이 아닌 죽지 않을 만큼 힘든 상황에 스스로를 처하게 만들어야 한다.

필자가 달리기 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이성과 감성에서 갈등을 격곤 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편에서는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을 갖지 말라고 속삭이고, 한편에서는 미래를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심장의 맥박을 더 빨리 뛰게 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