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된 사람은 사람이 된 나무를 키운다
나무가 된 사람은 사람이 된 나무를 키운다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0.11.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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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신문 창립 14주년 축하메세지 - 장태동 걸어다니며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
 장태동  걸어다니며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 

그해 가을은 아름다웠습니다. 

단풍 물든 도심도 아름다웠고, 낙엽 뒹구는 거리도 아름다웠고, 단풍잎이 바람에 날려 나부끼는 공중도 아름다웠습니다. 그런 서울 거리를 걷고 있던 한 사람은 어느 날 걸음을 멈추고 스스로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첫 해 겨울을 지내고 새 봄을 맞이합니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마중하고 다시 겨울을 배웅 하고,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렇게 14년, 뿌리 내린 나무가 된 사람은 사람이 된 나무를 키우기 시작합니다. 

땅을 움켜쥔 뿌리의 힘으로 굵어가는 줄기와 함께 가지는 더 넓게 퍼집니다. 해마다 잎을 피우고 열매도 맺었습니다. 그렇게 이미 숲을 이루고 있던 다른 나무들과 함께 숲이 되었습니다. 바람이 지나는 숲은 바람의 숲입니다. 새들이 깃든 숲은 새들의 숲입니다. 비가 내리는 숲은 비의 숲입니다. 생명이 사는 숲은 생명의 숲입니다. 사람이 모이는 숲은 사람의 숲입니다. 나무가 된 사람은 사람이 된 나무와 함께, 그리고 이미 숲을 이룬 모든 나무들과 함께 그렇게 소통하고 나누었습니다. 

산등성이를 물들이는 연둣빛 신록 길을 나란히 걷습니다. 초록이 짙어지는 여름 소나기에 함께 젖기도 합니다. 지난 동안 열심히 살았다고 다독이며 피어나는 단풍 빛으로 서로에게 물듭니다. 함박눈은 언제나 첫눈 같아서 성에 낀 선술집 유리창 밖을 바라보는 자욱한 시간을 나눕니다. 창밖 어둠 속에서 종종 걸음으로 찾아오는 오래된 친구 옆에는 새로운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는 친구의 첫 마디 인사는 ‘늦어서 미안하다’였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나무신문은 열다섯 번째 가을을 위해 벌써 새봄을 생각할 것 같습니다.  

저는 나무가 된 사람, 사람이 된 나무 옆에서 14년 동안 서 있는 장태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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