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 바라카(상부) 정원
몰타 바라카(상부) 정원
  • 김오윤 기자
  • 승인 2020.11.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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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지리와 역사 78 - 권주혁 박사
상부 바라카 정원에서 본 그랜드 항구. 맞은편에 성안젤로 요새(왼쪽)와 성미카엘 요새(오른쪽)가 보인다.  왼쪽 방향이 항구 입구.
상부 바라카 정원에서 본 그랜드 항구. 맞은편에 성안젤로 요새(왼쪽)와 성미카엘 요새(오른쪽)가 보인다. 왼쪽 방향이 항구 입구.

지중해 중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 바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몰타(Malta)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인 몰타섬은 섬의 면적이 불과 316㎢로서 강화도 크기의 작은 섬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중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두 차례나 방문하였고 영국의 처칠 수상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중에 6번 이상 방문한 사실이 이 섬이 범상치 않은 존재인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그렇다, 이 작은 섬은 세계의 역사 방향을 두 번이나 크게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1565년, 오스만 제국은 이 섬을 점령하기 위해 약 4만명의 병력을 투입하였으나 섬을 방어하는 성요한 기사단의 결사항전 때문에 섬을 점령하지 못하고 막대한 병력을 잃고 후퇴하였다. 그러므로 몰타를 디딤돌로 삼아서 서유럽 기독교 국가들을 정복하려던 이슬람 오스만 제국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제2차 세계대전당시 지중해에서 영국의 불침 항공모함 역할을 200% 발휘하며, 몰타 기지에서 이륙한 영국군 항공기들은 북아프리카로 가는 독일과 이탈리아군의 병력, 무기와 보급품을 공습함으로써 추축국이 북아프리카에서 미국, 영국 연합군에 패배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몰타에서는,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3주 뒤인 그 해 12월에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미국과 소련이 축(軸)이 되어 계속 되어온 상호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냉전(冷戰) 종식을 선언한  미소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선언 이후 정확히 2년 만인 1991년 12월에 소련이 붕괴되고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민주화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몰타라고 하면 지중해의 관광지라는 이미지를 일반적으로 갖고 있으나 눈에 보이는 관광지를 넘어서 인류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사실들이 이 작은 섬에 있는 것이다.

상부 바라카 정원의 전경

몰타는 일년중 대부분이 덥고 건조하다. 그래서인지 몰타의 수도 발레타(Valetta) 시내에는 곳곳에 시민을 위한 정원들이 있고 큰 식물원도 있다. 발레타 시내에 있는 정식 식물원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이번 회에는 발레타가 자랑하는 그랜드 하버(Grand Harbor)를 내려 보는 곳에 있는 상부 바라카(Upper Barrakka) 정원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1565년, 몰타섬에서 성요한 기사단과 이슬람 오스만 제국군과의 전투가 끝난 뒤 몰타섬에는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어 이 도시 이름에는 몰타 공방전 당시 성요한 기사단을 지휘하였던 기사단장 발레타의 이름을 붙였다. 성으로 되어있는 발레타의 성문을 들어가면 광장이 나오고 이 광장 오른쪽으로 항구를 향해 잠시 걸어가면 정원이 나온다. 이곳이 발레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상부 바라카” 정원이다. 이곳에서 조금 더 동쪽으로 내려가면 “하부(Lower) 바라카” 정원이 나온다. 이렇게 바라카 정원은 상·하 두 개가 있는데 두 곳 모두 언덕 아래로 펼쳐진 그랜드 항구를 볼 수 있으나 상부 바라카 정원에서 내려 보는 전경이 항구의 더 넓은 파노라믹 전망을 볼 수 있다. 그랜드 항구는 수심이 깊으므로 대형 항공모함, 유조선 등 대형 선박도 아무 문제없이 입항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 항구가 유명한 것은 웅장한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전세계 유일의 항구라는 점이다.  

상부 바라카 정원은 1560년대에 만들어진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의 요새(St. Peter & Paul Bastion)” 위에 1661년에 연병장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성요한 기사단에는 여러 나라 출신의 기사들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이탈리아 기사들은 요새 근처 병영에 배치되어 있었으므로 이들의 훈련과 휴식을 위해 상부 바라카 정원 자리에 연병장과 휴식 공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 후 1798년에 프랑스 나폴레옹의 군대가 몰타를 점령하고 나폴레옹 자신도 발레타 시내 안에 1주일간 체류하였다. 그 후 영국 군대가 프랑스군을 몰타에서 몰아내고 1824년부터 이곳을 공원으로서 일반에게 공개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상부 바라카 정원은 몰타 주민과 몰타를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가 된 것이다. 고색창연한 정문을 통해 들어가면 전개되는 상부 바라카 정원은 거의 정사각형 형태로서 면적은 약 3천 평이고 정원 안에는 여러 종의 수목과 관목, 그리고 꽃들로 채워져 있는데 몰타가 워낙 강우량이 작고 건조하므로 화단과 수목에는 물을 공급하는 파이프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정원의 모든 식물에는 파이프로 물을 공급한다.

몰타는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아래 있다가 1964년에 독립국이 되었으나 영국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이 정원의 한가운데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결혼 60년(금강혼식)을 기념하여 2007년에 심은 나무도 있다. 그리고 1661년에 이곳에 만든 로마나 그리스 신전에서 볼 수 있는 테라스는 지붕은 없어지고 지금은 양쪽 벽만 남아있다. 벽면에는 제2차 세계대전중 이곳을 지킨 영국과 미국군을 기념하는 동판도 있고 1945년 1월말에 발레타에서 회담을 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 처칠 수상의 동판도 있다. 

특히 몰타를 지켜준 처칠 수상에 대하여 감사의 표시로 몰타 정부에서 만든 그의 흉상도 세워져 있다. 항구쪽 절벽 끝에는 오래 된 대포들이 포문을 항구쪽으로 하고 있다. 이 대포들은 오래전에는 군함이 항구에 입항할 때마다 예포를 쏘았는데 요즈음은 매일 정오와 오후 4시가 되면 이곳에서 예포를 쏜다. 1565년, 오스만 제국의 지휘관들은 이곳에서 항구 맞은편에 있는 성요한 기사단의 성안젤로 요새와 성미카엘 요새를 내려 보면서 전투를 지휘하였다. 그로부터 380년이 지난 뒤 루즈벨트 대통령과 처칠 수상은 상부 바라카 정원 바로 인근에 있는 건물에서 며칠 동안 전략 회의를 하였으므로 상부 바라카 정원에 와서 그랜드 하버의 웅장한 전경을 내려 보았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뛰어난 파노라믹 전경 때문에 몰타를 방문하는 여행객은 이곳을 가장 많이 방문한다. 다음 회에는 하부 바라카 정원과 몰타의 정규 식물원에 대해 쓰려고 한다.


글·사진 권주혁
용산고등학교 졸업(22회), 서울 대학교 농과대학 임산가공학과 졸업, 파푸아뉴기니 불로로(Bulolo) 열대삼림대학 수료, 대영제국훈장(OBE) 수훈. 목재전문기업(이건산업)에서 34년 근무기간중(사장 퇴직) 25년 이상을 해외(남태평양, 남아메리카) 근무, 퇴직후 18개월 배낭여행 60개국 포함, 132개국 방문, 강원대학교 산림환경대학 초빙교수(3년), 전 동원산업 상임고문, 현재 남태평양 연구소장, 전북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외래교수. 국제 정치학 박사, 저서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세계의 목재자원을 찾아서 30년> 등 17권. 유튜브 채널 '권박사 지구촌TV'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