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베르겐 식물원
노르웨이 베르겐 식물원
  • 김오윤 기자
  • 승인 2020.10.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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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지리와 역사 77 - 권주혁 박사
베르겐 식물원 전경. 왼편 건물은 자연사 박물관

오슬로에서 약 400㎞ 서북쪽에 있는 베르겐(Bergen)은 인구가 약 28만 명밖에 되지 않으나 노르웨이에서는 오슬로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필자는 오슬로와 베르겐 사이의 멋있는 절경을 보기 위하여 갈 때는 버스를 타고 올 때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였다. 오슬로를 오전 9시 45분에 출발한 버스는 7시간을 달려 오다(Odda)마을에 도착하자 모두 하차하라고 한다. 여기서부터는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가다가 피요르드를 만나자 버스를 페리선에 태워서 20분 동안  피요르드를 건넜다. 버스 여행을 하면서 페리선을 타고 피요르드를 구경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하였다. 피요르드를 건너자 다시 버스를 타고 달려서 드디어 오후 8시가 넘어 베르겐에 도착하였다. 베르겐은 노르웨이 해(海)에 면한 피요르드를 깊숙이 들어와서 자리 잡고 있는데 항구의 차고 깨끗한 공기가 가슴속 깊이 들어간다. 부두에는 14세기에 지은 고색창연한 4층 목조주택들이 여러 색깔의 원색을 입고 늘어서 있다. 

그 당시 베르겐은 중요한 국제 무역항으로 번창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내의 공원에는 노르웨이가 낳은 극작가 입센(Henrik Ibsen)과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그리그(Edvard Grieg)의 동상도 있다. 특히 그리그는 고향이 베르겐이다. “위대한 작가와 예술가는 이렇게 오염 없는 곳에서 태어나는가?” 싶은 느낌을 주는 곳이 베르겐이다. 주위가 공해 없는 산으로 둘러싸이고 동화에 나올 것 같은 부두가의 목조주택들 그리고 깨끗한 항구에 마음이 끌려서 베르겐에 있는 동안 아침마다 항구까지 뛰어가서  깨끗하고 찬 공기를 마시며 항구를 보았다. 베르겐은 어시장으로도 유명하다. 필자도 어선 선장 자격증(남태평양 파푸아 뉴기니의 국립 수산대학에서 길이 30m 어선을 운항하는 선장 자격증 취득)을 갖고 있어서인지 방금 잡아온 신선한 생선을 육지에 올리는 뱃사람들의 모습에 눈길이 더욱 간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높은 물가 때문인지 부두에 붙어있는 어시장의 해산물 가격은 상당히 비싼 편이다.

식물원안에 있는 수목원 전경. 가운데 있는 높은 수목은 알래스카 시다(삼나무)

시내 공원과 호수를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면, 원래 교육기관이었으나 1817년부터 잠시 해군 사관학교였다가 1825년에 대학으로 변모된 “베르겐 대학”의 박물관이 있다. 베르겐 대학의 현재 학생수는 만7천명으로서 오늘날 30만 명이 채 안 되는 베르겐 인구를 고려하면 큰 대학이다. 1887년, 대학에 속한 자연사 박물관의 일부로서 만들어진 베르겐 식물원은 바로 이 박물관 건물과 주위의 낮은 언덕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언덕에 올라가서 우선 만나는 박물관 건물 앞에는 대학 이름이 붙어 있는데 대학의 상징으로서 특이하게도 부엉이가 그려져 있는 것에 놀랐다. 부엉이처럼 밤에도 잠자지 말고 스파르타식으로 학업에 전념하라는 뜻인가? 혼자 생각해 보았다. 

식물원 입구에 들어가자 웬 인물의 동상이 서있으므로 필자는 이 동상이 아마도 식물원이나 박물관을 만든 인물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동상에 있는 동판을 읽어보니, 1873년에 한센병(나병)이 유전적이 아니며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노르웨이의 의학박사인 한센(Gerhard Armauer)을 기념하는 동상이다. 베르겐이 고향인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 박물관의 관장을 역임하였고 지금은 식물원안에 있는 이 동상 옆에서 잠들어 있다.  

식물원 입구에 있는 한센 박사의 동상
베르겐 대학의 심볼인 부엉이. <br>유럽의 거의 모든 식물원들 처럼 베르겐 식물원도<br>​​​​​​​기초 자연과학 연구기관으로서 대학교에 소속되어 있다<br>
베르겐 대학의 심볼인 부엉이. 유럽의 거의 모든 식물원들 처럼 베르겐 식물원도기초 자연과학 연구기관으로서 대학교에 소속되어 있다

현지인들이 “박물관 정원(Museum Garden)”이라고 부르는 이 식물원은 면적이 6천 평으로서 식물원으로서는 크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130여 년 전에 개원할 때에는 한대 지역인 노르웨이의 야생식물을 중심으로 약 700종의 식물을 식재하였으나 오늘날은 연구와 멸종식물 보존을 위해 유럽을 포함한 세계 각지에서 식물을 가져와서 약 3천종의 각종 꽃, 관목, 수목을 이 식물원 안에서 만날 수 있다. 화단과 연못으로 구성되어 있는 평지에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불가리아 원산의 관목(학명: Ranunculaceae Eranthis hyemalis)을 비롯하여,  유럽 원산의 노란색 6개 꽃잎을 갖고 있는 청초한 모습의 화초(학명: Amaryllidaceae Allium moly) 등 수많은 아름다운 꽃들이 방문객을 맞아준다. 언덕에는 바위정원이 있어 암석지역에서 자라는 꽃들을 별도로 모아 놓았는데, 이 가운데에는 현지인들이 “솔베르그납”(학명: Crassulaceae Sedum spathulifolium)이라고 부르는 마치 작은 장미꽃 같은 잎들을 가진 미국 원산의 꽃도 땅 바닥에 카페트처럼 깔려있다. 언덕위에는 열대 식물을 보존하는 온실이 있다. 언덕을 돌아서 가는 좁은 산책로 주변은 식물원답게 온갖 아름다운 꽃이 심어져있어 문자 그대로 꽃길이다. 이 길이 끝나는 언덕 끝에 이르면 갑자기 잔디가 심겨진 넓은 공간이 전개되며 높은 나무들이 보인다. 이곳은 수목원으로서 100여종의 수목이 자리 잡고 있다. 물론 노르웨이 수종을 포함하여 멀리 북아메리카의 알래스카에서 온 측백나무과의 알래스카 시다(Alaska Cedar: 학명, Cupressaceae Chamaecyparis nootkatensis)가 웅장한 모습으로 수목원 한 가운데 서있다. 고향을 떠나 이곳에 온지 꽤 오래되어 보인다. 미국 서부 개척 당시 미국인들은 향기도 좋고 내구성이 강한 이 나무를 통나무집 만드는데 사용하였는데 노르웨이 사람들은 어떤 수종으로 통나무집을 만드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중국에서 온 장미과의 큰 나무(학명: Rosaceae Malus hupehensis)도 알래스카 시다 근처에 있다. 수목원이 있는 언덕을 넘어가 왼쪽으로 내려가면 베르겐이 자랑하는 해양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안에는 바이킹이 사용하던 여러 크기의 배들을 포함하여 북구(北歐)의 해양에  관련된 많은 자료를 볼 수 있으므로 독자들이 베르겐 식물원을 방문한다면 이곳에도 방문해 볼 것을 강추한다.  

참고로, 베르겐 대학은 시내에 있는 이 오래된 식물원 이외에 베르겐에서 남쪽으로 23㎞에 있는 밀데(Milde)라는 조그만 마을에도 식물원을 갖고 있다. 1971년에 개원한 이 식물원은 면적이 약 20만평으로서 더 많은 종의 식물을 식재해 놓고 연구를 하고 있다. 


글·사진 권주혁
용산고등학교 졸업(22회), 서울 대학교 농과대학 임산가공학과 졸업, 파푸아뉴기니 불로로(Bulolo) 열대삼림대학 수료, 대영제국훈장(OBE) 수훈. 목재전문기업(이건산업)에서 34년 근무기간중(사장 퇴직) 25년 이상을 해외(남태평양, 남아메리카) 근무, 퇴직후 18개월 배낭여행 60개국 포함, 132개국 방문, 강원대학교 산림환경대학 초빙교수(3년), 전 동원산업 상임고문, 현재 남태평양 연구소장, 전북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외래교수. 국제 정치학 박사, 저서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세계의 목재자원을 찾아서 30년> 등 17권. 유튜브 채널 '권박사 지구촌TV'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