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데지마 식물원
일본 데지마 식물원
  • 김오윤 기자
  • 승인 2020.08.31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지리와 역사 75 - 권주혁 박사
시볼트 귀향 식물원 전경

일본 규슈(九州)의 중부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항구 도시 나가사키(長崎)는 일본의 쇄국 시대인 에도(江戶) 시대(17~19세기)에 세계를 향한 일본의 유일한 개항지(開港地)였다. 덕분에 당시 일본의 어느 도시보다도 나가사키는 외국(특히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도시이다. 이러한 연줄로 인하여 나가사키는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1636년, 에도 막부(幕府)는 천주교 포교를 막기 위해 당시 나가사키 시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거주하던 포르투갈인들을 한 장소에 집결시켜 거주시키려고 나가사키 항구 해안에 데지마(出島)라는 부채꼴 모양의 조그만 인공섬을 만들었다. 면적4500평의 작은 섬에 거주하던 포르투갈인들이 1639년에 일본에서 강제 출국 당하자 데지마는 한동안 무인도가 되었다. 그 후 규슈섬의 서북 지역에 있는 히라도(平戶) 항구에 자리 잡고 있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상관(商館)이 막부의 명령에 따라 1641년에 데지마로 옮겨왔다. 이후 일본이 1859년에 개국(開國) 할 때까지 218년 동안 데지마는 일본 유일의 서양을 향한 창(窓)이 되어 데지마를 통해 서양의 앞선 학문과 문화가 일본에 들어왔다. 당시 데지마에는 네덜란드 무역상인들의 주택, 창고 등이 세워졌고 이들은 좁은 섬 안에 가축도 기르고 나무와 꽃도 심었다.

오늘날 데지마는 아직도 그대로 있으나 메이지(明治) 시대에 데지마와 육지 사이를 매립하는 바람에 데지마는 더 이상 섬이 아니고 육지가 되었다. 데지마의 왼쪽(육지에서 보았을 때)에는 오늘날 조그만 식물원이 있다. 이 식물원을 일본인들은 “시볼트(Siebold) 귀향(歸鄕) 식물원”이라고 부른다. 독일 출신으로서 네덜란드 육군 포병대 군의관으로서 1823년에 나가사키에 도착한 시볼트 소령은 데지마에서 네덜란드인들의 건강을 보살피는 한편, 일본인들에게 서양 의술을 가르쳤다. 모든 일에 지적 호기심이 넘쳐난 그는 일본의 식물연구도 하여 일본 식물학지(植物學誌)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의 학명(Pinaceae Pinus densiflora)을 비롯하여 우리나라(한반도)에서 생육하는 수목 30여종 이상에 학명을 붙였다. 우리나라 대표 수목의 학명을 붙인 사람이 우리나라나 일본의 임학자 또는 식물학자가 아니고 네덜란드 육군 포병대 소령이었던 시볼트(Philipp Franz von Siebold)라는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 국민은 아마도 극소수일 것이다(그는 육군 대령으로 예편하였음).

식물원 안에서 식물을 조사하는 필자

일본 정부는 일본과 네덜란드 교류 400주년을 기념하여 2000년도에 이 미니 식물원을 옛 데지마 자리에 만들었다. 시볼트는 일본 식물 약 260종을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부속 식물원에 보냈는데 그 가운데 아직도 그 식물원에 남아 있는 식물중에서 일부 수종(단풍나무, 느티나무, 느름 덩굴, 등나무 등 5수종)을 일본 정부는 다시 일본에 가져와서 데지마 식물원에 심은 것이다. 이 수종들 이외에도 용설란(龍舌蘭) 과(科)의 거대한 난(蘭)들과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꽃인 툴립 등 여러 종의 수목과 꽃들이 식물원 공간을 채우고 있다.  

용설란 가운데 하나는 일본인들이 “굵은 기미가요란(학명: Asparagaceae Yucca gloriosa)”이라고 부르는 종도 있다. 일본 국가(國歌)인 기미가요를 난의 이름에 붙인 것이다. 미국이 원산지인 이 난을 서양에서는 “스페인의 단검(Spanish Dagger)”이라는 일반명으로 부른다.

식물원을 돌아보는중, 한 그루의 나무 앞에 기념석이 보인다. 뭔가 의미가 있는 나무 인거 같아 가까이 가서보니 현재 네덜란드의 빌럼 알렉산더르(Willem Alexander) 국왕이 황태자 시절인 1990년 11월14일에 데지마를 방문하고 기념식수한 말채나무(학명: Cornaceae Benthamidia florida)이다. 필자가 방문하였을 때는 심은 지 약 25여년이 지났음에도 수목의 크기는 크지 않았다(국왕은 데지마 식물원이 공식적으로 개원하기 10년 이전에 식수하였다).

17세기말 데지마 전경, 섬안에 네덜란드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가사키에 여행가면 일반적으로 나가사키가 원조라는 “나가사키 짬봉”을 맛보고 나가사키 인근에 있는 네덜란드풍의 유원지인 하우스텐보스 등 만을 둘러보는 경향이 있다. 일본이 세계적인 강국(强國)으로 성장하는 데 밑바닥에서 역할을 한 역사의 섬 데지마와 이 조그만 인공섬 안에 있는 시볼트 귀향 식물원을 한번 둘러보는 것도 나가사키 방문의 의미를 더욱 크게 할 것으로 믿는다.   

 

글·사진 권주혁
용산고등학교 졸업(22회), 서울 대학교 농과대학 임산가공학과 졸업, 파푸아뉴기니 불로로(Bulolo) 열대삼림대학 수료, 대영제국훈장(OBE) 수훈. 목재전문기업(이건산업)에서 34년 근무기간중(사장 퇴직) 25년 이상을 해외(남태평양, 남아메리카) 근무, 퇴직후 18개월 배낭여행 60개국 포함, 132개국 방문, 강원대학교 산림환경대학 초빙교수(3년), 전 동원산업 상임고문, 현재 남태평양 연구소장, 전북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외래교수. 국제 정치학 박사, 저서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세계의 목재자원을 찾아서 30년> 등 17권. 유튜브 채널 '권박사 지구촌TV'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