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남쪽, 즉 장화의 뒤축 안쪽에 들어가 있는 곳에는 이탈리아 해군의 군항인 타란토(Taranto)가 있다. 타란토 항구는 천연의 양항으로서 외항과 내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직경 5㎞의 큰 항구인 외항은 오늘날 민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워낙 항구로서의 위치가 좋다보니 로마 시대부터 이 항구는 군항으로 사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타란토 군항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군항으로서 이탈리아 해군의 주력 함대가 이곳을 모항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영국 해군은 일본 해군의 기동함대가 1941년 12월초에 하와이 진주만의 미 해군 태평양 함대를 기습공격하기 1년 전인 1940년 11월에 항공모함을 동원하여 타란토를 기습하였다. 영국 해군 항공대의 기습을 받은 타란토의 이탈리아군 함대는 괴멸적인 타격을 입어 지중해의 제해권은 영국 해군이 쥐게 되었고 3년 후에 이탈리아는 연합국에 항복하였다. 이렇게 함재기에 의한 사상 최초의 적 군항 공격이 성공한 것을 본 일본 해군은 영국 해군의 타란토 기습 공격을 벤치마킹하여 1년 후에 해군 항공모함의 함재기로써 진주만을 공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를 갖고 있는 타란토 항구를 비스듬히 내려 보는 곳에 많은 꽃과 수목으로 가득한 식물원이 보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식물원이 아니고 타란토 지역 주민을 위한 수목 정원이다. 이 정원 입구에는 경찰 정복을 입고 있는 인물의 흉상이 보인다. 이탈리아 경찰의 강력범죄 담당이었던 바실(Emanuele Basile) 경위의 흉상이다. 타란토에서 출생한 바실 경위는 마피아의 본거지인 시칠리아에서 근무중에 순직하였다. 즉, 시칠리아에서 가장 큰 팔레르모 도시 인근에 있는 몬레알 마을에서 1980년 5월, 부활절 축하 행사에 참석하였다가 귀가 도중에 그를 기다리고 있던 마피아 갱단 조직원들로부터 사격을 받고 순직하였다. 그는 마피아 박멸에 용감하게 앞장섰던 보르셀리노 검사 밑에서 마피아 갱단 소탕작업을 하던 중에 갱단의 총격으로 순직한 것이다.
타란토 주민들은 바실 경위의 충성스런 행동을 기념하고자 이곳에 수목 정원을 만들고 ‘바실 경위 수목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약 3천평 정도 넓이로 비스듬한 언덕에 만들어진 이곳에는 지중해 원산의 각종 꽃과 수목들이 식재되어 있다. 필자가 방문한 날은 날씨가 너무 좋아 이곳의 화려한 꽃들, 특히 남태평양의 부겐빌리아 비슷한 붉은 꽃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호주산 유칼립투스, 지중해 연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지중해 소나무와 지중해 야자수들, 그리고 여러 종의 침엽수, 활엽수로 가득 찬 이곳은 나무를 많이 심어 놓아서 수목들 사이로 난 길이 좁아 사람들이 산책을 하면서 여유있게 지나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이름만 정원이지 사실상 작은 식물원이다.
세계적인 강력 범죄집단인 마피아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순직한 바실 경위에게 국적을 넘어 존경을 보낸다. 그리고 법을 지키려는 용감한 경찰에게 이러한 의미있는 정원(식물원)을 만들어 기념하고 있는 타란토 주민들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참고로 이 정원에서는 매년 5월이 되면 (바실 경위 순직일) 이탈리아 경찰과 타란토 시민들이 모여서 바실 경위를 추모하는 행사를 한다.
글·사진 권주혁
용산고등학교 졸업(22회), 서울 대학교 농과대학 임산가공학과 졸업, 파푸아뉴기니 불로로(Bulolo) 열대삼림대학 수료, 대영제국훈장(OBE) 수훈. 목재전문기업(이건산업)에서 34년 근무기간중(사장 퇴직) 25년 이상을 해외(남태평양, 남아메리카) 근무, 퇴직후 18개월 배낭여행 60개국 포함, 132개국 방문, 강원대학교 산림환경대학 초빙교수(3년), 전 동원산업 상임고문, 현재 남태평양 연구소장, 전북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외래교수. 국제 정치학 박사, 저서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세계의 목재자원을 찾아서 30년> 등 17권. 유튜브 채널 '권박사 지구촌TV' 운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