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채만한 유리온실이 있는 제주 애월 ‘산·들·바람집 T’
집채만한 유리온실이 있는 제주 애월 ‘산·들·바람집 T’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0.05.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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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애월 ‘산·들·바람집 T’는 일찌감치 은퇴하고 도시생활을 접기로 한 40대 부부가 건축주다. 이른 퇴직을 위해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다는 부부는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평소 좋아하는 식물과 영화를 즐기고 싶었다. 

작지만 실용적인 ‘공간’과 ‘집’을 원했다.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최대한 반영한 집, 간결한 생활공간+각자의 취미 공간인 온실, AV룸, 다목적 다락이 있으면서, 제주도의 기후를 고려한 튼튼한 집’….

바다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는 깃대형 대지
제주의 모든 지역은 한라산 쪽으로 완만하게 높아지고, 바다쪽으로 완만하게 낮아지는 경사지다. 섬 전체가 커다란 하나의 산이라고 보면 된다. 애월은 제주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니, 동남쪽으로 한라산을 올려다보고 북서쪽을 향해 바다를 바라보는 조망을 가졌다. 

이와 같은 지형을 따라 배치하면 자연스럽게 북쪽 입면이 얼굴이 되고, 거기에 조망이 있으니 큰 창을 내게 되는 구조다. 

대지는 545㎡, 바깥쪽 도로까지 팔을 쭉 내밀고 있는 깃대형 대지다.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대지는 생각보다 크지 않은 상황. 이에 따라 도로와 닿아있는 깃대 쪽 대지는 레벨을 도로와 맞추었고 집을 앉힐 쪽은 들어 올려 집을 앉힐 기반을 조성했다.

툇마루로 분리된 안채와 별채, 한발 물러선 선룸
건물의 연면적은 118㎡. 그중 37㎡는 선룸의 1,2층 면적이니 실제 사용하는 주택면적은 81㎡ 남짓한 규모다. 여기에 다락을 얹어 선룸 이층과 연결했다. 

대지가 남쪽으로 경사가 높고 바다쪽 조망이 북쪽이다. 북측으로는 조망과 함께 건물의 전면으로서의 인상을 주는 것이 필요했고, 뒷면인 남측으로 채광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현관을 중심으로 안채와 별채를 분리하고 툇마루로 이들 공간을 잇는 방식을 생각했다. 그렇게 침실끼리 툇마루로 이어지고, 툇마루 아래 층고를 확보한 공적영역이 북측 바다조망을 향해 배치됐다. 

전체적인 설계 컨셉은 쉐이딩(shading)이라는 개념이다. 안방과 주방, 가족실(다락)이 있는 매스에서 한쪽 팔을 뻗쳐 별채를 만들었고, 메인 매스를 한 번 반복하는 듯한 형태의 유리온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게 한다는 전략이었다. 

또 한발 물러선 그림자, 선룸은 남측에서 시작해서 북측 옥상으로 고개를 내밀어 형태를 반복한다. 

선박건조 방수공법으로 이겨낸 제주의 비바람
아무래도 목조건축에 평테라스,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도의 특성을 고려해야 했다. 평테라스 방수를 위해 선박을 건조할 때 방수하는 방식으로, 방수시트를 조각조각 여러 번 겹쳐 바르는 공법을 썼다. 

이처럼 겹겹이 물샐틈없는 시공이 한몫했다. 실제로 배를 건조하는 방수작업을 했던 작업자라고 소개받았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어서 일반적인 스터코에 단열재를 덧대어 매쉬에 도장을 하는 방식보다는 시멘트보드로 바탕면을 조성하고 그 위에 스터코를 마감함으로써 도장면이 편평하도록 했다. 해풍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알루징크를 적용한 것도 시공 중 결정된 사항이다. 

제주의 비바람에 철저히 대비한 덕인지, 시공 후 몇 년 동안 몇 번의 태풍이 지나갈 때에도 동네에서 이 집만 아무 하자가 없었다는 감사인사를 전해 들었다. 

한옥 공간구조와 멀리까지 보이는 창이 있는 실내

안채와 별채를 툇마루로 잇고 그 아래 주방은 마당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단 아래 바닥 마감재는 코르크마루 화이트컬러를 사용해 툇마루 위 공간과 경계를 지었다. 

동선의 끝에 해당하는 곳, 현관을 들어서며 긴 복도를 오가는 시선의 끝에는 창을 두었다. 이 창을 통해 시선을 더 멀리 보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집을 더 크게 느끼게 했다. 

화장실과 AV룸을 제외하고는 한 공간으로 출입할 수 있는 곳을 최소한 두 군데를 만들었다. 집 안에서도 끝없이 술래잡기를 할 수 있고, 집안에서만 이만 보도 걸을 수 있다. 

툇마루, 별채, 안채 같은 공간개념을 사용했는데, 한옥 공간에서 보이는 이들 공간에 대한 직설적 화법으로 자작나무합판으로 격자살문을 만들어 별채에 달았다. 이 집이 한국적으로 보인다면 격자살문 때문이 아니라, 방과 회랑, 퇴, 별채, 마당 같은 한옥의 공간구조 때문일 것이다. 

 

북측 잔디마당, 서측 별채 데크, 남측 뒷마당 그리고 온실

외장재는 적삼목루버와 칼라강판 알루징크, 스터코와 유리온실이 사용됐다. 집의 전면은 바다를 바라보는 북측 마당이지만, 프라이빗한 남측 뒷마당에 저무는 해가 들이치는 모습은 참 정겹다. 

하마터면 앞마당에 욕심내어 뒷마당을 잃을 뻔 했다. 집을 바짝 당겨 앉혀 어느 정도 남쪽 뒷마당을 확보해 준 것에 대해 두고두고 잘했다고 건축주에게 인사 받는 중이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따라서 북측 너른 데크나 잔디마당, 혹은 서쪽 별채 데크, 해가 잘 드는 남측 뒷마당 등 집 주면으로 개성 있는 외부공간을 쪼개어 여럿 두었는데, 건축주가 사용하기에 좋다고 한다. 그 중에 온실은 전천후 외부공간으로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건축가가 제안하는 소형표준주택을 표방하는 리빙큐브 중 인기있는 모델이 산·들·바람집이다. 원형이 된 산들바람집도 제주 조천에 있는데, 이 집은 원형인 일자집에 별채가 T자 형태로 뻗어나와 ‘산·들·바람집 T’라고 이름을 지었다. 

‘산과 들과 바람을 만나는 집’이라는 뜻으로, 자연을 가까이 느끼며 살아가는 최소한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집을 지향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의 전통집이 원형의 원형이 됐다. 

설계자의 한마디
“설계를 의뢰할 때 전문가가 아닌 이상 아무리 생각을 정리하고 원하는 바를 간추려 보아도 구체적이지 않거나 구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산·들·바람집에서도 그런 요구가 있었는데 ‘바람이 잘 통하는 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건축주 입장에서도 무얼 어떻게 해 달라 요구해야 할지 확실치 않아 그저 ‘희망사항’ 쯤으로 치부하고 잊고 있었는데, 집이 완성되고 보니 집 내부에는 공간과 공간이 연결되면서 돌고 도는 ‘회유동선’이, 외부는 ‘온실’이 그 고유역할 외에 뒷마당과 실내공간을 이어주게끔 되어 있어 ‘아, 원하던 바를 얻었구나’ 싶었다. 그런 후 집에 이름을 붙여주고 나니 더욱 더 이름에 걸맞은 집이 됐다.” 

 


건축개요
대지위치▷제주시 애월읍
대지면적▷545.00㎡
지역지구▷계획관리지역
건축면적▷111.45㎡(건폐율 20.45%)
연면적▷119.88㎡(용적율 22.00%)
구조▷경골목구조
최고높이▷6.90m
리빙큐브모델▷산들바람집
설계저작권자▷김주원
리빙큐브 매니저▷(주)하우스스타일 최범순
시공▷(주)시스홈종합건설
사진▷박영채

자재정보
외장재▷알루징크, 스타코플렉스, 적삼목사이딩
창호▷이건 PVC시스템창호, AL시스템창호
내장재▷이건마루, 코르크마루, 실크벽지, 자작합판 제작도어
위생기기▷아메리칸스탠다드, 포인트산업

평면도
1층 평면도
평면도
다락 평면도
평면도
지붕 평면도

 


설계자 소개 | 김주원 ㈜하우스스타일 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가
연세대 주거환경학과를 졸업한 후 홍익대 대학원에서 실내건축학을 전공하고 연세대 대학원 건축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앙디자인 연구소 생활을 거쳤으며, 1998년 디자인사무소를 열었다. 2002년 MBC TV 프로그램 ‘신동엽의 러브하우스’의 건축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주거 공간 이외에도 주택공사 전남지사의 오피스 및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천호점의 명품관 및 슈퍼마켓을 디자인했다. 한국실내건축가협회에서 주는 신인상과 협회상을 수상했다. 2012년부터는 24명의 건축가와 함께 올바른 삶의 방식을 지원하는 ‘유쾌한 집짓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재 (주)하우스스타일 건축사사무소의 대표건축가로 재직하고 있다. 

2014년 11월 건축가가 제안하는 소형주택 표준설계안 ‘리빙큐브’를 브랜딩해 더 많은 사람이 더 손쉽게 디자인주택을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그 삶과 함께하는 따뜻한 주거 공간 만들기에 관심을 쏟고 있으며 삼성, 한샘, 대림INS 등 기업들과 함께 미래주거에 대한 연구용역을 수행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기찻길옆 9평집, 산·들·바람집, 동고동락, 토방집, 마루집, 사합집, 깨알공장, 소소유 등이 있다.《30평대 아파트 확 바꾸는 법(3인공저, 웅진리빙하우스, 2006)》,《과학으로 가득한 우리집(원교재사, 2015)》 등을 펴냈다.

시공자 소개 | 건축명장 이국식 (주)시스홈종합건설 대표
시스홈종합건설은 상업용, 주거용 건축물, 단독주택 및 목구조물 등을 전문적으로 시공하는 기업이다. 각 전문 분야에서 오랜 기간 풍부한 경험과 시공 기술을 쌓은 인재들로 구성돼 ‘도전과 열정, 시대 흐름의 부응’이라는 기치 아래 보다 나은 건축물을 보급하고 있다.

건축물의 우수한 성능과 친환경적인 건축물 개발을 위해 국내 대학 연구실 및 국가 연구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통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건축물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또 이국식 대표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6년 연속 한국건축가연합에서 수여하는 건축명장에 선정됐다. 이 대표는 서울대학교대학원에서 목구조물을 전공하고 국립산림과학원 자문위원, (사)한국목조건축협회 기술위원장 및 교육위원장, 전북대 겸임교수 등을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