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롤터 식물원
지브롤터 식물원
  • 김오윤 기자
  • 승인 2020.05.2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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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 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지리와 역사 (70)
대서양의 카나리아 제도에서 온 용혈수(사진 오른쪽과 왼쪽의 수목).

동서의 길이가 4천㎞가 넘는 지중해의 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의 남단(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과 붙어 있음)에는 유럽 대륙에 있는 유일한 영국의 영토인 지브롤터(Gibraltar) 반도가 있다. 길이 5㎞, 폭 1.2㎞로서 면적 6.8㎢에 불과한 이 반도에는 높이 426m에 달하는 바위산이 우뚝 솟아 있다. 좁은 면적 안에 이렇게 산이 솟아 있으므로 자연히 평지면적은 적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폭 58㎞의 해협을 건너면 아프리카 대륙의 모로코이다. 영국은 18세기 초에 벌어진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 개입하여 1704년에 이곳을 점령하고 1713년에는 유트레히트 조약을 통해 지브롤터를 국제사회에서 정식으로 할양받아 여태까지 점령하고 있다. 

그 후 영국은 지중해에 있는 나라가 아님에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항구, 그리스의 크레테섬의 수다 항구, 지중해 한 가운데 있는 몰타섬의 발레타 항구, 사이프러스(키프러스)섬의 파마스타 항구, 이스라엘의 하이파 항구에도 해군 기지를 설치함으로써 고대(古代)이래로 지중해 해상패권 역사상 최대의 해상패권을 쥐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영 제국의 국력이 쇠퇴하면서 6개 항구 가운데 5개를 해당 국가에 반환하고 오늘날은 지중해의 입구에 해당하는 전략적 항구인 지브롤터만을 유지하고 있다.  

영국군이 노획한  러시아 대포와 필자.

이 조그만 바위 반도인 지브롤터에도 영국인은 영국인답게 2백여 년 전에 식물원을 만들어 놓았다.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그 다음해인 1816년, 지브롤터 총독겸 사령관인 돈(George Don)장군에 의해 지브롤터 식물원이 개원되었다. 식물원 건설 계획은 돈 장군이 직접하였다. 오늘날 지브롤터의 상징인 바위산에는 630종이 넘는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 바위산 기슭에 있는 이 식물원은 “지브롤터 식물원” 또는 “알라메다(Alameda) 가든”이라고 부르는데  정문 문짝 한 가운데에 영국 육군 공병대의 명판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돈 장군이 그 휘하의  공병대에 식물원 공사 임무를 맡겼던 것 같다. 식물원의 면적은 2만평인데 이 작은 반도 안에 이 정도의 면적을 식물원으로 할애 한 것을 보면 영국인들이 식물원을 어느 정도로 소중하게 여기는 지 이해할 만하다. 식물원 안에는 지브롤터 지역과 세계 각국에서 도입한 약 2천 종이 넘는 수목과 꽃이 생육하고 있다. 이베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생장하는 스톤 소나무(학명: Pinaceae Pinus pinea), 대서양의 카나리아 제도에서 온 수령 200년이 넘는  Dragon Tree(용혈수;龍血樹, 학명: Asparagaceae Dracaena draco), 그리스의 아테네 식물원에 아말리아 여왕이 직접 식재한 미국 캘리포니아 야자수도 보인다. 북아프리카 원산으로서 지브롤터와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에서만 자라는 꽃인 Gibraltar Candytuft(학명, Brassicaceae Iberis gibraltarica)를 포함한 모로코의 식물들은 별도의 구역을 만들어 식재해 놓았다. 전세계에 500여종이 자라고 있는 알로에의 경우 130종이 이 식물원안에서 볼 수 있다.  

200여년 전에 식재된 울창한 수목들이 방문객을 맞아주는 지브롤터 식물원의 정문.

누가 영국인이 아니랄까봐서 그런지 이 식물원 안에는 다른 나라의 식물원에서 쉽게 볼 수 없는 4문의 오래된 대포가 있다. 19세기 중엽, 러시아의 크림반도에서 벌어진 “크림 전쟁” 당시 영국군이 러시아군으로부터 노획한 것이다. 영국인은 무엇이든지 상무(尙武)정신에 연결시키지 못하면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는 민족이다.

식물원 입구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54년에 이 식물원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는 큰 표지 석판이 설치되어있다. 아마도 영국 국민은 여왕을 사랑하고 있는 듯하다. 2009년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열린 미스 월드대회에서 지브롤터 출신으로서 미스월드가 된 알도리노(Kaiane Aldorino)는 귀국 후, 이 식물원에서 주민들의 환영과 축하를 받으면서 미스월드 왕관을 머리에 썼다. 식물원 터가 좋은 지(?) 알도리노는 그 후 지브롤터 부시장을 거쳐서 2017년에는 시장이 되었다. 한편, 스페인은 1964년부터 꾸준히 영국에 지브롤터를 스페인에 반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은  1967년과 2002년에 실시된 주민투표를 통하여 주민 대다수가 영국 땅으로 남기를 희망한 결과를 제시하며 스페인의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하여튼, 이 조그만 지역에 조차 200여 년 전에 이미 식물원을 만들어 놓은 영국인들의 기초 자연과학 사랑에 필자는 경탄함을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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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혁  
용산고등학교 졸업(22회), 서울 대학교 농과대학 임산가공학과 졸업, 파푸아뉴기니 불로로(Bulolo) 열대삼림대학 수료, 대영제국훈장(OBE) 수훈. 목재전문기업(이건산업)에서 34년 근무기간중(사장 퇴직) 25년 이상을 해외(남태평양, 남아메리카) 근무, 퇴직후 18개월 배낭여행 60개국 포함, 132개국 방문, 강원대학교 산림환경대학 초빙교수(3년), 전 동원산업 상임고문, 현재 남태평양 연구소장, 전북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외래교수. 국제 정치학 박사, 저서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세계의 목재자원을 찾아서 30년> 등 17권. 유튜브 채널 '권박사 지구촌TV'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