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준비 끝에 10년 후 은퇴를 내다보고 완성한 중년부부의 세컨하우스
10년 준비 끝에 10년 후 은퇴를 내다보고 완성한 중년부부의 세컨하우스
  • 서범석 기자
  • 승인 2020.04.0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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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방리 디귿집, 백아산방

“원래 고향이 전남 보성 문덕 시공인데 주암호 건설로 수몰되는 바람에 고향을 잃어버린 느낌이 항상 들었어요. 이후에 광주에서 계속 살고 있는데, 아파트에만 살다보니 터에 대한 내 이력이 사라져 버렸네요. 한마디로 ‘터 무늬없는 사람’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고유한 공간에 대한 갈증이 항상 있어요.”

화순리 디귿집 ‘백아산방’ 건축주가 건축사사무소를 찾아와서 한 이야기다. 십년 후 쯤 은퇴를 준비하며 세컨하우스를 마련하기로 한 중년의 맞벌이부부. 아내는 대학교수, 남편은 방송국PD로 공부하고 책읽기 좋아하는, 유쾌한 학구파로 보였다.  

마당에서 목공도 하고 정원을 가꾸며 조용한 곳에서 책보고 쉴 수 있는, 은퇴 전까지 세컨드하우스로 이용하다가 은퇴 후엔 귀촌할 계획이다.

대지를 가르고 흐르는 계곡과 건축주의 다섯 가지 요구

건축주는 다섯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건축물이 대지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것, 너무 크지 않는 규모(1층 30평, 2층 5평)일 것, 주변 풍경을 자연스럽게 조망할 수 있도록 창을 배치할 것, 2층에 별도 서재와 테라스가 있을 것, 방은 크지 않고 거실과 부엌이 넓을 것 등이다.

집이 들어설 대지는 전남 화순군 북면(백아면으로 변경됨) 방리로, 화순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다. 앞으로는 화순 8경 중 하나인 해발 800미터 백아산과 백아산 하늘다리가 보인다. 뒷산으로는 해발 600미터 정도의 성덕산과 차일봉이 있다. 또 아래쪽에는 큰 규모의 송단저수지가 있다.

뒤에는 성덕산, 앞에는 송단저수지가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남향이다. 총 450평으로 계곡을 사이에 두고 안쪽 250평, 바깥쪽 200평으로 나뉘어 있다. 집은 안쪽 250평에 건축했다. 

또 대지는 해발 380미터, 여름에도 도시기온에 비해 4~5도 낮다. 특히 마을에서 가장 위쪽으로 마을과 100여 미터 떨어져 있는데, 대지 앞의 계곡은 마을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할 정도로 깨끗하다.

모든 풍경을 갖춘 집에서 좁은 틈으로 정조준한 여백의 미

건축주는 이 대지를 구하기 위해 무등산을 중심으로 담양, 장성, 곡성, 화순 일대를 10여 년 정도 찾아다녔다. 

처음에 구한 대지는 화순읍 위쪽에 위치한 전원주택단지 터였으나 대지면적이 150평에 불과해 너무 좁고 옆 주택과 붙어 있어  매각했다.

두 번째 매입한 땅은 무등산 동쪽에 위치한 1100평 전이다. 마을에서도 100여 미터 떨어져 있고 무등산과 적벽 옹성산의 조망이 좋아 건축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땅과 계곡과의 거리가 2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서 집을 짓는 대신 지금은 6년째 어머니께서 율무농사를 짓고 있다.

그러던 중 5년 전에 이 터를 매입하게 된 것. 배산임수 남향에 해발 380미터. 마을 앞에 큰 저수지가 있어 청량감이 있고 터 앞에 계곡물이 흘러 여름에 피서지로도 제격이었다.

사방으로 산세가 펼쳐져 있고, 바로 뒷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에 있는 집이다. 원경과 중경, 근경을 모두 갖춘 집. 집 안 공유공간에서는 풍경의 백미인 원경을 잘 볼 수 있도록 여러 면으로 창을 배치했다. 

또 풍경이 지천인 집에 아무 풍경도 없는 여백을 만드는 계획안으로 중정형의 좁은틈정원이 선택됐다. 이 틈 안에 앉았을 때, 고개를 돌리면 뒷산의 잘생긴 소나무가 들어오도록 방향을 정조준했다. 

배치에서 집주인은 풍수지리에 따라 현관의 위치를 받아왔는데, 독특하게도 대지를 빙 둘러 뒤로 들어가는 형국이었다. 낯선 배치였지만 출입이 오로지 현관인 아파트와 달리 일단 집안에서 생활할 때에는 여러 방향으로 출입이 가능하기에 오히려 합리적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입로를 따라 정성들인 조경가의 수고도 이 집의 완성에 한몫했다. 

디자인의 핵심 목재 커브월과 3면 수평띠장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집 중간을 가로지르는 목재 커브월이 섰는데, 곡면을 만드는 일도 일이었지만 이 월의 두겁부분이 문제였다. 기성 칼라강판으로는 목재월의 느낌을 살리기 힘들었기 때문에 극히 소량의 물량임에도 불구하고 목재 색과 유사한 색으로 주문생산했다. 결과적으로는 이 집의 디자인적인 핵심인 커브월 느낌을 잘 살린 투자였다. 

2층에 작은 방 하나를 두었는데 주변 풍광이 워낙 좋다보니 3면을 돌아가며 수평띠창을 내는 디자인을 체택했다. 문제는 수평띠창이나 코너창은 목구조에서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풀기 어려운 숙제라는 것.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벽체와 지붕에서 잡아당기는 식의 구조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코너창이 설치되는 벽면에서 코너창 상부 벽체의 하중이 밑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구조를 해석한 점이 이 집의 숨은 공신이다.  

아내의 티나는 배려와 공간의 비효율성으로 완성한 인테리어

거실과 주방의 공용부를 개방감 있게 구성하는데 외부 목재 커브월이 실내에 들어와서도 그 역할을 했다. 코너를 사선으로 돌아나가니, 직각으로 꺾이는 것보다 훨씬 개방감 있는 공간이 완성됐다. 

주방과 거실 사이에는 식탁과 아일랜드테이블이 놓였는데, 이 부분 처리에 특히 많은 고심을 했다. 식탁 상부의 펜던트는 안주인이 직접 공수해 온 샹들리에형 펜던트와 대리석 식탁이 높이는 것으로 예정됐다. 

아일랜드는 일반적인 주방가구 대신 이케아(IKEA)에서 금속 프레임으로 된 선반을 구입하고, 3면을 반투명한 아크릴로 마감함으로써 주방과 거실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은 경계를 조금 느슨하게 했다. 

그밖에 이 집의 인테리어 포인트는 클래식 디자인 취향을 가진 아내가 모던한 디자인 취향의 남편을 배려해서 애써 고른 티가 나는 가구들이다. 카르텔사의 디자인가구들로 보이는데, 고전적인 가구의 실루엣을 현대적인 소재인 아크릴로 생산한 독특한 디자인라인들이다. 그간의 조각 콜렉션들과 함께 배치돼 이 집의 독특한 분위기를 완성했다. 

워낙 입지가 좋아 멀리 백아산이 한눈에 보이는 땅이기도 하지만 1층보다 2층의 전망이 월등한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굳이 공간의 비효율을 감수하고서라도 2층에 작은 서재를 만들자는 결정은 경제적으로는 합리적이지 않지만, 이 집의 가치를 두 배로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경치 좋은 곳에 마련한 정자처럼 2층의 서재는 남편의 몫이다. 김정운 박사가 이야기하는 ‘슈필라움’을 제대로 구현한 공간이다는 평가다. 그것도 멀리 외딴섬이 아니고 가족과 함께 하는 공간 내에서 마련했으니, 한 번에 집 두 채를 얻은 그야말로 합리적 투자인 셈이다.

그야말로 멍때리기 좋은 다정하고도 묵직한 외관

외관의 가장 독특한 점이면서 외부공간에서도 이 집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ㄷ자로 좁고 깊게 파고 들어간 중정형 슬릿가든(가늘게 찢은 틈)이다. 

실내에서는 현관에 들어섰을 때, 이 좁은 틈새를 통해 뒷산의 잘생긴 소나무가 집안으로 들어오게 창을 배치했다. 방안에서는 좁은 폭의 정원너머로 아무 것도 없는 목재벽을 대면하도록 했는데, 상당히 묵상적인 분위기를 낸다. 

이 좁은틈정원에는 길게 툇마루를 설치함으로써 그야말로 텅 빈 벽에 햇살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멍때리기’ 좋은 공간이다. 

외벽은 청고벽돌로 마감했다. 중국에서 청나라시대에 지어졌다가 허문 집들에서 나온 벽돌이 많이 수입되던 시기다. 오리지널 청고벽돌이랄까. 오래된 벽돌을 다시 쌓아 오래된 듯 새로운 듯, 다정하고도 묵직한 외관이 완성됐다.  

건축개요
대지위치 : 전남 화순군 북면 방리
대지면적 : 556.00㎡
지역지구 : 보존관리지역
건축면적 : 100.05㎡(건폐율 17.99%)
연면적 : 114.67㎡(용적율 20.62%)
층별면적 : 1층 100.05㎡, 2층 14.62㎡
구조 : 경골목구조
최고높이 : 6.40m
외장재 : 청고벽돌, 컬러강판
창호 : 이건 PVC시스템창호
내장재 : 지복들 원목마루, 실크벽지
위생기기 : 아메리칸스탠다드, 대림요업
설계저작권자 : 이강수, 강주형(생각나무파트너스 건축사사무소)
리빙큐브 매니저 : 김주원
시공 : (주)시스홈종합건설

 

 

<정면도 / 좌측면도>
<배면도 / 우측면도>
횡단면도
종단면도

설계자 소개
김주원 ㈜하우스스타일 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가
연세대 주거환경학과를 졸업한 후 홍익대 대학원에서 실내건축학을 전공하고 연세대 대학원 건축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중앙디자인 연구소 생활을 거쳤으며, 1998년 디자인사무소를 열었다. 2002년 MBC TV 프로그램 ‘신동엽의 러브하우스’의 건축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주거 공간 이외에도 주택공사 전남지사의 오피스 및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천호점의 명품관 및 슈퍼마켓을 디자인했다. 한국실내건축가협회에서 주는 신인상과 협회상을 수상했다. 2012년부터는 24명의 건축가와 함께 올바른 삶의 방식을 지원하는 ‘유쾌한 집짓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재 (주)하우스스타일 건축사사무소의 대표건축가로 재직하고 있다. 2014년 11월 건축가가 제안하는 소형주택 표준설계안 ‘리빙큐브’를 브랜딩해 더 많은 사람이 더 손쉽게 디자인주택을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그 삶과 함께하는 따뜻한 주거 공간 만들기에 관심을 쏟고 있으며 삼성, 한샘, 대림INS 등 기업들과 함께 미래주거에 대한 연구용역을 수행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기찻길옆 9평집, 산.들.바람집, 동고동락, 토방집, 마루집, 사합집, 깨알공장, 소소유 등이 있다.《30평대 아파트 확 바꾸는 법(3인공저, 웅진리빙하우스, 2006)》,《과학으로 가득한 우리집(원교재사, 2015)》등을 펴냈다.

시공자 소개
건축명장 이국식 (주)시스홈종합건설 대표

시스홈종합건설은 상업용, 주거용 건축물, 단독주택 및 목구조물 등을 전문적으로 시공하는 기업이다.  각 전문 분야에서 오랜 기간 풍부한 경험과 시공 기술을 쌓은 인재들로 구성돼 ‘도전과 열정, 시대 흐름의 부응’이라는 기치 아래 보다 나은 건축물을 보급하고 있다. 건축물의 우수한 성능과 친환경적인 건축물 개발을 위해 국내 대학 연구실 및 국가 연구기관과 밀접한 관계를 통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건축물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또 이국식 대표는 2014년부터 현재까지 6년 연속 한국건축가연합에서 수여하는 건축명장에 선정됐다. 이 대표는 서울대학교대학원에서 목구조물을 전공하고 국립산림과학원 자문위원, (사)한국목조건축협회 기술위원장 및 교육위원장, 전북대 겸임교수 등을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