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이상향을 그린 집, ‘산수간’
자유인의 이상향을 그린 집, ‘산수간’
  • 황인수 기자
  • 승인 2019.12.26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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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 시리즈 4/5 - 일반주거부문 우수상
건물 전경.

[나무신문] 옛 사람들은 산수에 묻혀 은둔자로 또 자연인으로 살기를 원했다. 자연에는 주인이 없어 그 누구나 취할 수 있고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다. 건축을 이루는 것은 분명 물질이지만 우리가 그렇듯이 건축에는 물질을 넘는 그 무엇이 담긴다. 이 집은 은퇴 후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의 이상향을 그린 집이다. 

건축주는 돌과 나무가 많고 경사진 대지이지만 기존의 집들처럼 산을 절삭하는 폭력적인 개발을 원치 않았다. 새로 지은 집이건만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보여야하며 최소의 방을 소유하되 이웃한 정방산, 능강계곡, 옥순봉 절경들을 맘껏 누리고 살고 싶어했다. 이러한 자유인에게 어울리는 집의 스케일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건물측면
주변의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지어진 주택

 

건축개요
주    소 :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옥순봉로6길 61-40
용도지역 : 보전관리지역
주 용 도 : 단독주택
대지면적 : 976 ㎡
건축면적 : 140.07 ㎡
연 면 적 : 142.65 ㎡
건 폐 율 : 14.35 %
용 적 률 : 14.62 %
층    수 : 지상 2층
구    조 : 철근콘크리트
설계담당 : (주)목금토건축사사무소 권재희, 김회준
시 공 사 : 이창식
건 축 주 : 이창식

배치도
1층 평면도
2층 평면도
지붕 평면도

간(間)
건축은 기둥으로 공간을 한정하게 된다. 그 기둥 사이를 간(間)이라고 한다. 이러한 공간의 한정은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자유인에게는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건축가는 역으로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즉 때로는 공간을 한정하고, 때로는 받아들이고, 혹은 넓히는 작업들을 통해 작은 집이지만 공간마다 다른 느낌을 갖도록 여러 장치를 만들었다.  

이러한 효과에는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자연물들이 이용되었다. 지형의 모든 돌과 나무의 위치를 기록하여 설계에 반영했다. 커다란 바위들은 안방을 위요하고 그 앞의 소나무 숲은 스크린이 되어 차경으로 쓰인다. 여기에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나 바람의 소리가 덧입혀진다. 

건축가는 이 집의 설계는 단지 집의 기능이나 방의 구획만이 아니고 주변의 산세, 산중턱에 걸린 바위, 집주변에 앉은 소나무와 돌들이 주택의 열린 공간 그 집이 앉을 주변의 자연과 긴밀하게 관계를 갖도록 했다.

거실. 양의기운이 가득하다
2층을 오르는 구름계단
뒷마당과 음의 이끼정원
가족탕. 이끼정원을 바라보다

양(陽)과 음(陰)의 공간
작은 집이지만 동양사상의 음과 양을 모두 품는 우주의 스케일이 되도록 설계했다. 빛이 호방하게 드는 넓은 거실을 양의 공간으로 삼고, 안방은 깊은 수면을 취할 수 있도록, 욕실은 집주인이 동굴에 들어온 듯 휴식을 갖는 음의 공간으로 삼았다. 거실이 남측으로 큰 창을 내었다면 안방은 동측으로 창을 내어 집을 위요하고 있는 바위와 소나무숲이 스크린이 되어 차경으로 들어온다. 욕실은 바닥 레벨보다 낮게 하고 이끼정원 쪽으로 창을 내어 깊은 안식을 취하게 된다.  

소나무숲이 스크린이 되어 비친다
안방. 소나무그림자가 드리운다
안방으로 가는 복도에 주변 자연물이 액자로 들어온다
소나무 숲이 비치는 창

허실(虛室)
구름같이 떠 있는 계단을 올라 2층에 오른다. 정자와 이를 마주한 허실이 있다. 허실은 우리 한옥의 대청마루나 마당의 경우와 같이 지정된 용도가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색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풍류의 무대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 너머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신을 벗어두고 정자에 오르니 바람, 달, 별… 우주의 주인이 된다. 가진 것 없어도 자연은 내 것이 되니 풍월주인이 나요, 어디든 있으니 욕심을 낼 필요가 없이 그저 즐기면 된다. 정자마저도 문을 열어 제치면 지붕만 떠 있는 신선의 공간이 된다. 집을 지을 때 살려둔 나무를 함께 품고 가니 2층에 소나무 그림자가 멋지다. 

허실. 사색의공간 풍류의공간으로 남다
허실. 사색의공간 풍류의공간으로 남다

윤선도<만흥(漫興)>

산수간 바위 아래 띠집을 짓노라 하니 
그 모른 남들은 웃는다 한다마는
어리고 향암(鄕闇)의 뜻에는 내 분(分)인가 하노라

정자문는 열려져 자연을 품고
정자문이 닫히면 정적의 공간이 된다

자연에 네 기둥 세우면 그 어디든 내 집이요 네 기둥 걷어내고 떠나면 다시 자유인이 되니 이 집이야 말로 자유인의 이상향이지 않은가!  

거친 텍스쳐로 이뤄진 콘크리트 마감
멀리 청풍호수를 바라본며 산자락에 앉은 주택

자료 = 대한건축사협회
정리 = 황인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