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도 울고 갈 산림청의 산업규제 둔갑술”
“귀신도 울고 갈 산림청의 산업규제 둔갑술”
  • 서범석 기자
  • 승인 2019.10.0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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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창씨개명 한 ‘불법목재 교역제한 제도’ 10월1일 본격 시행
올해 상반기 중국 등 주요 수입국 적합서류 제출 비율 20%도 안돼
건설, 건축은 물론 목재포장재 필수적인 수출산업도 마비될 수 있어
2019년 9월 고기연 산림청 국제협력관이 합법목재 교역촉진 제도 본격 운영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나무신문] 산림청(청장 김재현)이 강력한 산업규제 정책을 마치 산업지원 정책인양 눈가림하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규제완화 정책 기조에 편승하기 위해 가짜 숟가락을 얹어놓는 속임수라며, 산림청이 ‘귀신도 울고 갈 규제 둔갑술’을 부리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산림청은 지난 9월 작년 10월1일 도입한 ‘합법목재 교역촉진제도’를 올해 10월1일부터 본격 운영한다고 밝혔다. 지난 1년 간 시범운영하던 것을 올해부터는 법대로 집행하겠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목재 및 목재제품 수입 업체가 합법적으로 벌채된 목재인지를 입증하는 서류 및 상업송장을 관세청 전자통관시스템(UNI-PASS)을 통해 산림청장에게 신고해야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합법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통관이 안 될 뿐 아니라 판매정지나 반송 또는 폐기명령이 내려지게 된다. 이러한 행정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수입신고 대상 품목은 원목, 제재목, 방부목재, 난연목재, 집성재, 합판, 목재펠릿 총 7개 품목. 

다시 말해 합법적으로 벌채된 목재 및 목재제품에 대해 모종의 인센티브를 주어서 산업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불법목재의 교역을 규제하겠다는 게 제도의 기본 취지다. 이와 같은 사실은 지난해 10월1일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될 당시로 되돌아가면 더욱 명확해진다. 

이름 바꾼다고 규제가 산업지원 제도 되나
‘불법목재 교역제한제도’. 이것이 2018년 10월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의 공식 명칭이다. 1년 간의 시범운영 기간을 거쳐 올해 10월부터 본격 시행되는 ‘합법목재 교역촉진제도’와 사실상 변한 내용은 없다.

올해 2월 산림청이 대한목재협회, 한국합판보드협회 등 관련단체에 ‘불법목재 교역제한제도 명칭 변경 안내 및 홍보 요청’이라는 한 장짜리 공문을 보내면서부터 명칭 변경이 시작됐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산림청은 ‘불법목재 교역촉진제도 지역 설명회’나 ‘한·호주, 불법 벌채목 교역 제한 및 산림정책 교류 강화_제10차 한·호주 산림협력위원회 개최’ 등 ‘불법목재 교역제한 제도’라는 명칭 및 용어를 계속 사용해 왔다.

실제로 일부 협단체 관계자 말고는 일선 업체 관계자들 대부분은 아직도 이 제도 명칭을 ‘불법목재 교역제한 제도’로 알고 있는 실정이다.

명칭 변경에 대해 산림청 임업통상팀 관계자는 “제도의 명칭을 바꾼 것은 법률상 문제가 없다”면서 “(기존 명칭이) 부정적이어서 긍정적인 이미지 형성을 원하는 업계의 요청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역설명회에 ‘불법목재 교역제한제도’라는 용어를 계속 쓴 것은 실수이고, 한·호주 산림협력위원회에서도 사용한 것은 호주정부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불법목재 교역제한제도’이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협회 혹은 개인이 그러한 요청을 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협회 등에서의 (공식적인) 요청은 아니고, 지역설명회 같은 데서 꾸준히 있어왔던 요청”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모 협회 관계자는 “한마디로 개코같은 소리”라고 일갈한 뒤 “설명회에서 한두 번 나왔을까 말까한 그런 ‘업계의 요청’은 그렇게 찰떡같이 받아들이면서, 매번 수없이 반복되는 ‘본격 시행 연기’라는 업계의 간절한 요청은 왜 귓등으로 듣는지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산림청이 강력한 산업규제를 신설해 놓고 마치 산업을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처럼 ‘창씨개명’한 격이다”면서 “문재인정부의 규제완화 정책 기조에 가짜 숟가락을 얹어놓고 편승해보려는 속임수이고, 귀신도 울고 갈 산림청의 규제 둔갑술로 보여진다”고 비꼬았다.

이 관계자는 또 “불법목재 교역제한 제도를 합법목재 교역촉진 제도로 ‘위장’한 것은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을 하면서 ‘술 안 먹고 하는 운전 촉진제도’라고 하는 것과 같은 코미디”라며 “해야 할 규제가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게 맞지만, 준비도 되지 않은 불법목재 교역제한 제도를 억지로 시행하면서 생긴 웃지 못 할 촌극”이라고 평가했다.

2018년 11월 박종호 산림청 차장이 정부대전청사 기자실에서 '불법목재 교역제한제도' 도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름뿐 아니라 내용도 합법목재 인센티브 제도로 바뀌어야
과연 ‘불법목재 교역제한 제도’는 충분히 준비돼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게 산업계 전반의 목소리다.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국내 목재산업 구조 하에서 건설 및 건축, 가구, 인테리어 등 국민 생활 전반과 수출에까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수출포장재에 목재가 많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사)대한목재협회(회장 강현규)는 최근 산림청에 보낸 의견서를 통해 “국가 간 인증제도 자체가 구축되지 못한 국가와의 교역에서 민간기업이 인증관련 서류를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따라서 정부 차원의 협약 등으로 우리나라가 목재를 수입해오는 모든 나라로부터 합법성 인증관련 서류 획득이 실질적으로 원활해질 수 있을 때까지 시범운영 기간 연장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다.

협회는 또 “실질적으로 7월 산림청 설명회 자료에 따르더라도, 우리나라가 목재를 많이 수입해오는 중국, 베트남, 칠레에서 금년 상반기 수입된 목재의 관련서류 미제출율이 30~70%에 달하며, 제출서류 중에서도 그나마 기준에 적합한 서류는 고작 15~17%에 그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도, 10월1일 본격 시행은 절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주요 목재 수입국으로부터 수입된 목재 및 목재제품들의 ‘합법목재 교역촉진 제도’에 부합한 서류를 첨부한 실적이 20% 미만이라는 얘기다. 지금까지는 유예기간 때문에 통관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법대로 집행하겠다는 게 산림청의 입장이다.

산술적으로 중국 베트남 칠레 등에서 수입되는 목재들의 80% 이상이 통관을 못하고 반송되거나 폐기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이들 목재가 투입돼야 하는 건설이나 건축은 물론, 목재포장재가 거의 필수적인 수출산업 또한 마비될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우려다.

대한목재협회는 “이 제도를 시행 중인 미국, EU, 호주, 인도네시아, 일본, 한국 중 우리나라를 제외한 국가는 목재수입 의존도가 극히 낮아 제도시행에 따른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면서 “따라서 현 제도가 세계 모든 나라들에 보편화된 제도로 자리잡을 때까지 우리나라도 일본의 경우처럼 권장 및 인센티브제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름만 ‘합법목재 교역촉진 제도’로 바꾸지 말고 제도의 내용 또한 합법목재 이용 지원제도가 돼야 한다는 요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