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걸어가는 일”
“나무와 걸어가는 일”
  • 황인수 기자
  • 승인 2019.09.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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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심문섭의 '목신' 조각전

[나무신문] <목신(木神)> 연작으로 익히 알려져 있는 원로조각가 심문섭의 조각전이 ‘나무와 걸어가는 일-심문섭의 <목신>’이라는 제목으로 9월21일부터 12월29일까지 블루메미술관 전관에서 열린다.

시각예술창작산실 공간지원사업 선정작으로 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열리는 이 조각전에는 심문섭 조각가의 조각 25점이 전시된다.

80년초부터 긴 시간 나무에 매달려 온 작가의 특별한 시리즈 작품을 미공개작과 더불어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미술관에서 <목신>만 모아 보여주는 이 전시는 살아있는 나무를 품은 건축으로 유명한 블루메미술관에서 개최돼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나무와 만나다-전후 한국현대목조각의 흐름>, <조각의 속도>전과 같이 한국 조각사의 흐름을 새롭게 해석해온 공간에서 심문섭 조각가가 오랜 기간 다루어온 ‘나무와의 일’은 모든 인간의 조건인 ‘일하는 삶’에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는가, 일의 관점에서 원로조각가의 작업을 새로이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단일하지 않은 삶 은유적으로 표현
돌, 흙, 나무와 같은 자연의 재료를 주로 다루어온 심문섭은 형태 중심의 조각보다 있는 그대로의 물질과 조각가의 행위 사이에 다양한 관계의 스펙트럼을 드러내는 장으로서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 중 그가 1982년부터 14년간 <목신>시리즈로 나무에 몰두한 작업은 다른 재료와의 만남보다 작업의 온도와 그 언어의 너비가 넓다. 그리하여 결코 단일하지 않은 삶의 은유를 많이 포괄하고 있다. 

여러 개의 캔버스천 모서리를 사포로 이곳저곳 마모시킨 상태, 다수의 점토판에 긁거나 찢거나 누른 흔적들 같이 물질에 행위를 가한 즉물적인 상황들을 나열한 듯한 작품이 나무에는 없다. 물질의 정직한 표정이 드러나는 행위의 순간 자체를 연장하기보다 나무는 “어딘지 머물고, 귀결되지 않는 일”로 그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멈춤이 있지만 끝나지 않는 것. 흐름과도 같은 일을 그는 깎기의 과정으로 담아내었다. 

목신 1993, 나무, 44×65×178㎝
목신 8605, 1986, 나무, 150×14×28㎝

멈춤이 있지만 끝나지 않는 나무 깎기의 과정
덤벼들지 않고 관조를 허락하는 멈춤이 있는 일이자 그가 나무를 깎는 과정은 결론을 염두에 두지 않고 리듬을 타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끌로 나무의 표면을 처내거나 안으로 파가는 반복적 행위가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것이 아닌 “미묘하게 변해가는 리듬”같은 것이고 그것이 “어떤 자연적인 것, 나무가 자라나서 생성하는 그런 리듬과 통한다”고 말한다. 마치 품에 안고 깎은 듯 80년대 초반 표면이 반들반들해진 작은 작품들에서부터 무심히 처내기만 한 듯한 크고 거친 작품들까지 나무의 끝자락인 표면에서 느껴지는 손의 리듬은 오브제의 윤곽선에 갇히지 않고 공간으로 나아간다. 이는 그가 공간을 정지된 배경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장으로 나무가 지닌 본래의 자연적 에너지 그리고 나무와 만난 인간의 리듬이 그것이 머무는 공간을 흔들림의 상태로 이끄는 것이다. 

이때 흔들림이란 미니멀리즘 이후 관객의 공간과 실제적 시간, 장소성 등을 포괄함으로써 조각이 갖게 된 가변성, 불확실성과 연관된 것이기보다 많은 평론가들이 ‘시적’이라고 평한 단일하지 않은 지각과 인식, 정서의 두께를 포괄하는 상태에 가깝다. 이러한 상태는 그가 세우지 않고 바닥에 뉘여 ‘배나 관처럼 인간의 몸을 이동시키는 사물’(카트린 프랑블랭)을 연상하게 하거나 ‘떠나려는 의지’(박신의), ‘물의 기운’(김호기)이 감돌고 있는 듯한 수평적 작품에서 극대화되어 있다.

목신 9017, 1990, 나무, 57×53×170㎝
나무와의 일 - 심문섭의 목신 전시전경 .

나무와의 일을 통해 모든 이와 소통
작가의 손을 떠나서도 고정되고 닫히지 않는 무언가로 남기 위해 그는 한동안 나무에 몰입하였고 그 몰입의 과정은 “완결성을 뛰어넘어 ‘일’로써 귀결되기를 원한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목신>은 다분히 조각적이면서도 단순히 조각적이라 축약할 수 없는 의식적 움직임을 담고 있다. 그가 나무를 다룬 것은 ‘대상에 대한 사역(使役)의 흔적’이 아니라(타나 아라타) ‘이해의 한 형태’였다(루디 치아니피)라는 평은 정확하며 그의 예술작업은 관계의 연결방식으로써 삶의 언어로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목신>에서 그가 벌인 자연과의 일은 예술적 완결성을 향한 누군가의 노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형태의 본질인 관계를 향해 자신을 무한히 열어나가고 흐르게 하는 살아있는 모두의 일로 겹쳐지는 것이다. 사람과 같이 기억, 대화, 연결로 가득한 존재인 나무와의 일을 통해 그는 매일 타자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모든 이의 삶으로 연결되고 있다. 

나무와의 일-심문섭의 목신 전시전경.
나무와의 일-심문섭의 목신 전시전경
목신 Wood Deity 8902, 1989, 나무, 232×7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