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집, 이야기를 담은 집
이야기가 있는 집, 이야기를 담은 집
  • 황인수 기자
  • 승인 2019.08.21 11: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 노바건축사사무소 강승희 대표

[나무신문]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하고,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원에서 농촌주거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강승희 소장은 서울시 공공건축가, 인천시 공공건축가, 한국목조건축협회 이사, 산림청 목조건축 자문위원, 한국목조건축대전 심사위원,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새로운 것을 만들기 보다는 시간의 흐름 속에 함께 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따뜻함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구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강승희 소장으로부터 들은 많은 이야기를 한 번에 다 소개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고, 내용을 요약해 소개하기엔 좀 아까운 요소들이 있어 기회가 되면 그 다음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언제 설립됐나
2009년 11월12일 설립됐으니 올해가 10주년 되는 해다. 노바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기 전 2002년 3월부터 2009년 10월까지는 최삼영 소장님과 함께 가와건축사사무소를 공동 운영했었다.

그 이전엔 어떤 일을 했나
1991년 공간에 입사했다. 당시 설계사무소에서 공채를 하는 곳은 공간 밖에 없었다.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입사해 4년 동안 근무했다. 주로 대형 건물 위주의 작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 작업이 나와 잘 맞지 않았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는 기간이 너무 길었고 그러다보니 작업에 대한 목마름이 느껴졌다. 그래서 소규모 아틀리에 사무소에 찾아갔다. 민현식 소장님이 운영하는 건축사사무소 기오헌이었다. 1995년부터 근무하며 소규모 건축물을 중점적으로 작업했다. 2002년 독립하기 전까지 근무했다.

독립한 후 사업은
아무도 내게 일을 주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공간이나 기오헌에 근무할 때는 나 개인을 보고 프로젝트를 준 것이 아니라 회사를 보고 준 것이었다.

그러다가 우연치 않게 다가구주택 설계를 하게 됐다. 정말 저렴한 비용으로 첫 수주를 했다. 목동에 위치한 주택이었다. 첫 수주였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했다. 하지만 감리를 하면서 깜짝 놀랐다. 내가 설계한 대로 시공되어 지지 않는 것이었다. 시공사한테 수없이 얘기해도 도면이 수정되지 않았다. 시공사 담당자들이 도면을 볼 줄 모르는 것이었다. 타이르고 윽박질러도 안됐다. 시공능력도 따라주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자기 삼촌 따라 집 몇 채 지을 때 뒤에서 도와주다가 자기가 맡아서 그 집을 짓게 된 경우였다. 건축주는 정말 아무 기술도 능력도 없는 시공사에게 자기의 집을 맡겼던 것이다. 건축주는 건축비용과 연관되는 부분이 많아 시공사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다. 집은 정말 형편없이 지어졌고 건축주는 후회했다. 

충격적인 첫 경험? 이후 활동을 소개해 준다면
그 무렵 ‘새건축사협의회’라는 단체가 발족했다. 학연, 지연, 혈연 등과 관계없이 건축에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건축계에 올바른 목소리를 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작은 집단이다. 규모는 작지만 올곧은 이야기를 하는 곳이다. 이곳 창립기념식에 참석했다가 건축가 주대관 선생을 만나 ‘문화도시 연구소’라는 단체를 알게 됐다. 이곳은 발로 뛰는 전문가 집단이다.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행동하는 전문가’ 집단인데 이 연구소와의 만남을 통해 나는 농촌 독거노인집짓기운동본부에서 일을 하게 된다. 1년에 40일 동안 가정과 사무실을 버리고 강원도 인제 양구, 원통 등에 가서 독거노인을 위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전국에 있는 건축과 학생 및 전문 건축가들과 함께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땅에다 집을 지었다. 물론 순수한 노력봉사였다. 척박한 땅에 우리의 전문적인 역량을 쏟아부어 혜택을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들을 위해 집을 지었다. 강원도 인제 용대리를 시작으로 양구, 서천 등지를 6년간 다니면서 집을 지었다. 

첫해에는 블록으로 지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분야의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이듬해부터는 목구조로 짓기 시작했다. 그때 스튜가의 김갑봉 대표가 도움을 주었다. 사실 나는 그때 목구조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캐나다우드의 교육 및 자재 후원도 받았다. 특히 자재는 목조건축협회로부터 많이 받았다. 2005년도에 용대리에 3채를 지으면서 목조주택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건조되고 정재된 규격 목재를 이용해 집을 지으니까 가공도 쉽고 만들어 나가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목조건축을 하게 됐다. 캐나다 목조건축 기술연수(Advanced Technology Construction Training) 및 저에너지 주택을 위한 Super-E 교육과 Passive House 교육을 수료했다. 국내 목조건축 세미나 교육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문화도시연구소와의 만남이 목조주택 전문가를 만든 셈이다 
목조건축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문화도시 연구소에서 진행했던 또 하나의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농촌과 관련해 ‘살고 싶은 지역 만들기’, ‘가고 싶은 곳 만들기’ 등과 같은 마을 답사 및 마을 가꾸기 연구 작업 프로젝트를 3건 수행했다. 독거노인을 위한 농촌 집짓기와 농촌에 관련된 연구과제를 수행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주택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됐다. 당연히 목조건축이었고,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당시 목조주택 분야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니즈도 많지 않았다. 평소 나무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숲을 좋아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목조주택 분야가 좋았고, 그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새 전문가가 되었다.

물론 목조주택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목조건축도 하는 것이다. 나무도 하고 콘크리트도 하고 나무와 콘크리트, 철골을 함께 묶어서 하기도 한다. 어떤 방법이 내구성, 경제성이 있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택지 여건에 맞을까 등을 고려하면서 주택 작업을 하고 있다.

노바의 의미는
Nature Of Visionary Architecture의 이니셜이다. 한예종 김봉열 총장이 지어주셨다. Nova는 ‘초신성, 샛별’이라는 뜻도 있고, ‘근본 또는 본질에 입각해서 건축의 비전을 제시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런 회사가 되라는 의미로 지어 주셨다.

노바가 지향하는 바는
빼어난 건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건축을 하되 그 건축주의 니즈, 요청을 우리가 갖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을 보태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건축의 완성은 있을 수 없다. 완성은 건축주가 하되 그런 가능성이 충분히 포함돼 있는 건축을 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다. 주택이 메인이기 때문에 내부 공간은 기본적으로 충족이 돼야 하고 내부와 외부와의 관계를 충분히 고민을 해서 주택, 인간, 대지, 자연이 조화롭게 관계 맺고 소통할 수 있는 건축을 지향한다.

어렵다. 좀 쉽게 설명해 준다면
최근 우리가 7년 전에 지었던 ‘여풍재’의 건축주로부터 연락이 왔다. 삼나무로 지은 집이었는데 딱따구리가 쪼아서 구멍이 났다고 연락이 와 방문했다. 건축주가 그 집에서 지내면서 새록새록 하게 느껴지는 공간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걸 바라보면서 행복했다는 말을 했다. 내가 그 주택에 만들어 놓았던 어떤 공간이 방, 욕실, 다용도실 등과 같은 확정적인 것이 아니라 건축주에 의해서 그 공간이 또 다르게 바뀌기도 하는데, 이런 것이 빼어난 건축은 아니지만 보편타당한 건축을 하되 건축주에 의해서 완성이 되는 것이고… 그 건축의 소재가 나무였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건축에 대한 소장님만의 특별한 생각, 철학 같은 것이 있다면
특별한 건 없다. 교과서적인 대답일 수 있는데, 건축물은 건축가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건축주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주택의 경우 특히 건축주가 갖고 있는 생각이 중요하다. 주택을 의뢰하기 위해 건축주가 찾아오면 나는 그들에게 묻는다. ‘왜 단독주택을 지으려고 하는가? 아파트가 살기도 좋고 유지관리가 편리한데 왜 단독주택인가’하고 물으며 단독주택은 꽤 불편한 집이라고 말해 준다. 내 물음에 대한 건축주의 답변을 듣고 1차 건축의 컨셉을 잡는다. 그리고 건축주의 집을 방문한다. 현재 건축주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과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건축주의 새로운 집을 구성하고 만들어 가는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건축주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고 나서 땅에 대한 해석, 대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도출해 합의를 이끌어 낸다. 최종적으로 건축주의 생각을 건축이라는 언어로 변환해 담는다. 한 가지가 더 있다. 건축주 자신을 위해서 어떤 공간이 필요한가를 꼭 확인한다. 건축주들의 대부분은 자녀들의 방, 공용 공간, 주방, 거실, 마당 등 주거공간에 대한 계획을 갖고 있지만 자신들을 위한, 자신들만의 공간에 대해서는 정작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취미생활,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공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건물 어딘가에 꼭 그 공간을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영속적으로 확정된 공간이 아니라 나중에 필요에 의해서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있도록 여지를 두고 마련하는 공간이다. 앞서 ‘여풍재’의 건축주가 얘기한 ‘새록새록 하게 느껴지는 공간’이며 나중에라도 그들의 삶을 더 풍족하게 해 줄 수 있는 숨겨둔 공간인 것이다.

거실과 방 몇 칸으로 나누어지는 집,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면적을 나누는 집, 기성품처럼 생산해 내는 집이 아니라 건축가의 의도와 생각이 담긴 맞춤형 집. 건축주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담으려고 하는 집, 한 마디로, 이야기가 있는 집, 이야기를 담은 집.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