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판, 건설업계 ‘부적합 사용’ …애먼 목재업계 “분란”
합판, 건설업계 ‘부적합 사용’ …애먼 목재업계 “분란”
  • 서범석 기자
  • 승인 2019.07.1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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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업계, 사용자 잘못은 사용자 관리로 풀어야…생산업계, 공급자 관리가 효율적
“이참에 반덤핑관세 타당성도 재검토”…“부적합 사용과 반덤핑은 별개의 문제다”

[나무신문] 건설 및 인테리어 업계의 일부 ‘부적합’ 합판 사용이 국내 합판 생산업계와 수입업계 간 대립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또 양 업계 사이의 해묵은 반덤핑관세 효용론과 불용론에 새로운 불씨를 지피고 있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내수합판(耐水合板, water-proof plywood, type 1)을 사용해야 하는 건설현장에 준내수합판(準耐水合板, type 2)을 사용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실내 인테리어 공사에도 실외용 E2등급 합판이 쓰이는 예가 있다는 것.

때문에 생산업계를 중심으로 한 일각에서는 이들 제품에 대한 수입 및 유통을 금지해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이야기까지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수입업계는 펄쩍 뛰는 분위기다. 나아가 이참에 수입 합판에 대한 반덤핑관세 부과의 부당성을 공론화해, 이의 철폐까지 이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다.

수입업계에 따르면 현재 준내수합판과 E2등급 합판의 수입과 유통은 합법적인 일인데, 일부 사용자들의 부적정한 사용을 빌미로 마치 수입업자들이 불법을 저지르는 양 호도하는 움직임까지 의심되고 있다는 불만이다.

또 거의 모든 제품에는 품질에 따라 등급이 정해져 있는 게 상식이고, 합판을 비롯한 목재제품 또한 품질 등급이 나뉘어 유통되고 사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산림청도 목재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목재이용법)에 따라 목재 등급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를 받아 한국임업진흥원에서는 목재등급평가사 양성교육을 실시 중에 있다.

때문에 사용자의 부적정한 사용이 있으면, 사용자를 단속하거나 계도하고 관리하는 게 이치에 합당하다는 목소리다. 더욱이 목재를 구입해 간 사용자가 이를 부적합하게 사용한다는 이유로 판매자를 단속하거나, 판매를 못 하게 하는 것은 행정편의적인 발상이며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준내수합판과 E2합판은 내수합판이나 E1합판에 비교해서 가격이 저렴한 저등급 제품일 뿐인데, 여기에 ‘저질’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것. 준내수합판과 E2합판이 필요한 사용처에는 이들 제품들이 가장 적합한 제품이라는 설명이다.

합판 수입업계의 한 관계자는 “의사가 처방을 잘못 내려서 폐렴환자가 감기약을 먹고 사고가 났으면 의사를 나무라야 하는데, 제약회사에 찾아가 감기약 판매 중지명령을 내리면 되겠나”면서 “건설업계와 인테리어 업계에서 합판을 부적정하게 사용하면 그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게 순리인데, 합판 수입업계에 책임을 묻겠다는 건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또 “감기약 판매를 금지하면 폐렴환자에게 감기약을 잘 못 처방하는 사고는 확실히 방지하겠지만, 감기환자는 감기약 말고 폐렴약을 먹어야 한다는 소리”라며 “합판에 등급이 있는 것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용처가 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만약 이번 일로 산림청이 준내수합판과 E2 합판 수입 유통에 제약을 가한다면, 경찰이 자기 편하자고 도망가는 도둑놈은 쳐다만 보면서 방치한 채, 문단속 제대로 안 했다며 절도 피해자를 문제삼는 격”이라며 “산림청이 중심을 잡고 목재제품 등급의 다양성을 확보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반대로 합판 생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건설이나 인테리어 현장에서 합판의 부적합 사용을 단속한다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 내수합판을 사용해야 한다는 시방서가 있어도, 시방서는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라 권고사항이기 때문에 강제하기도 힘들다”면서 “수입업계에서 준내수와 E2등급 합판을 (시장 수요 이상으로) 대량 공급하는 것이 이들 부적합 사용을 유발하는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 (실효성 측면에서) 수입, 판매에 대한 제재와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논란을 계기로 한동안 잠들어 있던 합판 반덤핑관세 무용론이 수입업계를 중심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수입업계에서는 반덤핑관세 부과가 오히려 중국이나 베트남 등 경쟁국들의 기술력을 키워줌으로써 국내 생산업체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나무신문 인터넷 기사 “반덤핑관세가 합판생산업계에 오히려 독?” 참조>

또 이에 대해 생산업계에서는 반덤핑관세 부과는 범죄행위에 대한 처벌일 뿐이며, 반덤핑을 기술력이나 경쟁력과 연계시키는 것은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나무신문 인터넷 기사 “중국합판 덤핑은 “범죄행위다”” 참조>

어찌됐든 통계에 의하면 합판에 대한 반덤핑관세 부과는 ‘효과가 확실하면서도 확실히 효과가 없는’ 역설을 연출하고 있다. 

A국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하면 곧바로 A국으로부터의 합판 수입량은 급격하게 줄어들지만, 이 물량을 국내 생산품이 대체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급격하게 늘어난 B국으로부터의 합판수입이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효과가 있지만 확실히 효과가 없는’ 현상이다.

(사)한국목재합판유통협회(회장 박경식)에서 집계한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연도별 국가별 합판수입실적을 보면, 합판 총 수입량은 △13년 128만7000㎥, △14년 134만8000㎥, △15년 138만4000㎥, △16년 165만5000㎥, △17년 171만8000㎥, △18년 168만6000㎥ 등 반덤핑관세 부과 이후에도 수입량이 줄어들기는커녕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 같은 기간 중국산 합판 수입량이 61만1000㎥에서 25만3000㎥로 줄어들었는데, 이는 반덤핑관세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베트남산이 12만7000㎥에서 66만4000㎥로 늘어남으로써 이 물량을 고스란히 넘겨받았다. 점유율 또한 중국산이 47.48%에서 15.0%로 떨어진 반면 베트남산은 9.9%에서 39.3%로 뛰어올랐다.

반면 국내 생산량은 △14년 44만7000㎥, △15년 49만2000㎥, △16년 47만1000㎥, △17년 44만1000㎥, △18년 28만1000㎥ 등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18년에는 ‘폭망’하는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표1, 표2 참조>

이에 대해 한국목재합판유통협회 관계자는 “수입량과 국내 생산실적이 반덤핑관세 부과가 국내 생산업체를 보호하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연설하고 있다. 국내 합판생산 산업의 붕괴는 그동안 기술개발 등을 등한시함으로써 경쟁력을 잃어버린 결과이지, 수입합판 때문이 아니다”면서 “또 국내 생산이라고 해봐야 베니어를 수입해서 붙이는 수준이고, 원목을 수입해 합판을 만드는 생산업체는 한 곳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반덤핑관세에 기대지 말고 기술개발 등 자구노력에 힘써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또 “국내 합판 생산업체는 네 곳 정도인데, 기계화가 진행된 상황에서 그곳 생산직 노동자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반문한 뒤, “합판 수입업계 종사자들의 숫자가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라며 “특히 국내에서 생산되는 합판이나 수입합판이나 원재료는 다 외산 원목을 사용하고 있는데, 10년 가까이 반덤핑관세를 부과하면서까지 보호해야 하는 산업인지는 다시 한 번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사)한국합판보드협회(회장 정연준) 관계자는 “반덤핑관세는 불법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나라에서 조사해서 상응한 조치를 하는 것인데, 합판의 부적합 사용 문제와 연관 짓는 것은 모순이다”며 “불법행위를 하는 것을 나라에서 방조하면 산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 부적합 사용과 반덤핑관세 부과는 별개의 문제다”고 선을 그었다. 

반덤핑(anti-dumping)이란 국내 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덤핑업체나 덤핑국가의 수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수입을 규제하는 조치를 말한다. 이때 덤핑 상품에 부과하는 높은 관세를 반덤핑관세라고 한다. 어떤 국가의 제품이 정상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수출돼 수입국가의 국내 산업에 피해를 주는 불공정 무역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