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유통의 현자, 신의 성실 신용으로 인터넷을 지배하다
목재유통의 현자, 신의 성실 신용으로 인터넷을 지배하다
  • 서범석 기자
  • 승인 2019.05.2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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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우드 오승용 대표

[나무신문] 지난 2005년 누구보다 먼저 인터넷 쇼핑몰을 시작한 인우드 오승용 대표. 적금과 퇴직금을 모은 5000만원으로 창업해 인천 북항 목재산업단지에 자가창고와 사옥을 짓기까지, 단순하면서도 까다로운 그의 성공요인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인우드’는 무슨 뜻인가요.
‘사람과 나무’라는 말입니다. 자연친화적인 친환경 소재인 나무와 사람의 어진 면이 함께 기대어 가듯이 목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지은 상호입니다.

창업은 언제 하였나요.
2002년에 했습니다. 1994년에 목재 도매업체에 취직하면서 목재를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칠팔 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다가 창업하게 됐습니다.

창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원래 첫 직장생활은 철강 쪽에서 시작했습니다. 87년 12월24일에 제대하고 88년 1월에 취직 했습니다. 제대 후 복학하려고 보니, 제가 벌어서 학교를 다녀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야간으로 바꾸고 낮에는 취직해서 일을 한 것이지요. 

당시 철강업계는 어땠나요.
그때 가장 큰 차가 11톤 차였는데, 보통 36톤 씩 실었습니다. 철강 가격이 1㎏에 300~400원 했으니, 트럭 한 대에 1000만원이 넘게 실린 셈이지요. 그런데 마진이 30%가 넘었어요. 한 차에 300~400만원이 넘은 이익이 생긴다는 얘기지요. 서울 미아리 70~80평 대 집 한 채가 200~300만원이었으니, 한 차 팔면 집이 한 채 생긴 거지요. 그래서 그때 ‘내 장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철강업계에서 창업하지 않고 목재업계에 입문한 이유는요.
사장님에게 창업하려면 얼마나 있어야 하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5억원이 있어야 한다는 거에요. 근데, 그때 제 월급이 50만원이었어요. 언강생심 쳐다보지도 못 할 수준이었지요.

목재업계에는 어떻게 들어오셨나요.
94년도에 합판업체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어요. 당시 창업한지 1년 정도 된 회사였는데, 영업이나 관리 전반을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그래서 목재업계에 들어왔지요. 그렇게 그 업체에서 칠팔 년 잘 배우고 나왔어요.

퇴직 후 바로 창업하신 건가요.
네, 목재업계에 들어와 보니 창업비용이 5000만원이면 되는 거에요.(웃음) 그래서 열심히 모은 적금과 퇴직금을 합쳐서 5000만원을 만들었어요.

창업 후에는 어떠셨나요.
인천 계산동에서 시작했어요. 아는 분이 2층 사무실을 무료로 쓰라고 해서, 그곳에서부터 시작했지요. 그 다음에 송현동 공구상가에 들어갔다가, 또 다른 목재유통업체의 임대 사무실에서도 있었지요. 그러다가 4년만인 2006년 석남동에 200평 창고를 처음 얻었어요. 그리고 또 2년 있다가 송림동 360평 창고로, 2012년 북항 750평 창고로 옮겼지요. 2017년 12월에 북항에 800평 자가창고를 마련해서 지금의 사옥을 지었어요.

5000만원 가지고 공짜 사무실에서 시작해서 자가창고까지 마련했으니 성공하신 거네요. 성공요인을 꼽으신다면요.
시작했을 때 한해 매출을 30억원 정도까지 했어요. 그런데 어음이 많다보니 자금회전이 잘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2003년에 처음 신보에 가서 1억원 대출을 받았아요. 그리고 그것을 다음해에 2000만원 상환하고, 다음해에 3000만원, 그 다음해에 5000만원 상환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부채가 하나도 없는 무차입 경영을 이어오고 있어요. 자가창고를 신축하면서 시설자금 대출을 받은 게 있지만, 채무없는 경영을 이어온 게 성공요인이라면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무차입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는요.
‘내가 가지고 있는 선에서 욕심내지 말자’는 게 제 생각이에요. 한 발 옮겨서 그게 탄탄해지면 또 한 번 움직이는 거지요. 욕심을 내다보면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나는 그게 싫어요. 그런 실수를 안 하기 위해서 제가 택한 방법은 가진 것의 50%는 쓰지 않는다에요. 100%을 다 투자하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할 때 실수를 하게 되요.

지금까지 결제를 어긴 적이 없나요.
저한테 결제 제때에 못 받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도 되요.(웃음) 단 한 번도 없어요. 그것도 결제일 하루 전 날 해주고 있어요. 그 사람도 돈이 있어야 다른 곳에 결제를 해줄 테니까요.

거래처가 몇 곳이나 되나요.
저희 매입처는 100곳이 넘죠. 매월 결제를 해줘야 하는 곳은 70~80곳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곳 모두를 하루 전에 결제를 해주신다고요.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저희는 담보나 지급보증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지만, 입금 후 출고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매입처가 우리 물건을 써주는 경우가 아니면 외상거래를 하지 않아요. 그래서 부실채권이 거의 발생하지 않아요. 지난 2002년 창업부터 지금까지 500만원이나 되려나 모르겠네요. 장사를 하는 사람이라면 신의 성실 신용은 목숨처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입금 후 출고, 말이 쉽지 정말 어려운 일 아닌가요.
그래서 저희는 온라인 판매를 위주로 하고 있어요. 저도 처음엔 어음에 외상거래 위주로 했지요. 그때는 다들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외상도 외상이지만, 외상 금액이 남아 있으면 그 고객은 저희 집에 오지 않아요. 그런데 외상 안 준다고 떠났던 고객은 돌아와요. 

그래서 일찌감치 온라인으로 방향을 전환하신 거군요.
2005년에 오프라인을 정리하고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어요. 주위에서 걱정이 많았지요. 실제로 기존 거래처들도 많이 떨어져 나갔어요. 그러나 전 성공을 확신했어요. 

누구보다 빨리 진출하신 것인데, 온라인에 진출하니 어떠셨나요.
그야말로 다른 세상이었어요. 오프라인에선 인천, 김포, 검단이 전부였거든요. 그런데 온라인은 전국에서 연락이 오는 거예요. 제주도는 물론이고 호텔 공사한다고 필리핀에서도 연락이 왔어요. 신규거래처가 하루에 보통 두세 곳은 생겼어요. 매출도 매년 20~30%씩 올라서 50억원에서 70억, 110억까지 성장했어요.

인터넷에 진출한 업체들이 다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은데요. 성공요인이 무엇인가요.
어디든 시작은 친절함이에요. 단 한 개의 주문도 고마운 마음으로 친절하게 상담해야 해요. 그러려면 직원들이 우선 먼저 편하고 즐거운 마음이 들어야 하지요. 오너는 이런 회사 분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친절만으로 물건을 팔 수는 없지 않나요.
물론이지요. 고객 입장에서 원스톱 쇼핑이 가능해야 합니다. 벽돌, 철근 같은 건축자재는 물론이고 가구자재, 철물 같은 것은 기본이고요. 저희는 레미콘까지 연결해서 판매한 적도 있어요. 

인터넷이 가격을 노출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사업이란 적정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폭리를 취한다면 당장은 좋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 전체를 망가트리는 길이에요. 적정이윤의 나머지는 소비자와 고객에게 돌려주는 게 맞아요. 또 인터넷의 이러한 통한 투명한 거래가 소비자의 신뢰를 이끌어냄으로써 장기적인 고정 거래처를 창출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고정 거래처는 얼마나 되나요.
사이트에 등록된 업체는 1만 곳이 넘어요. 이 중에서 저희가 중점적으로 영업관리하는 곳은 5000곳이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앞으로의 목재시장을 전망한다면요.
지금은 유통구조가 바뀌고 있어요. 도소매의 경계가 없어지고 대형화 복합화되고 있어요. 온라인 쇼핑몰도 마찬가지에요. 때문에 컨소시엄과 같은 업체 간 협력관계 구축이 생존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목재 유통업체뿐 아니라, 제조나 시공업체 등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협력관계가 필요한 이유지요.

그것이 인우드의 다음 단계인가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웃음) 뒤돌아보면 승승장구보다는 우여곡절이 더 많았어요. 그때마다 난관을 극복하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원칙을 지키면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다는 것뿐이에요. 신의 성실 신용 안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지금까지의 원칙이, 우리 인우드의 다음 단계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