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소도 못 하는 어려운 제재·가공 전문 제재소
제재소도 못 하는 어려운 제재·가공 전문 제재소
  • 황인수 기자
  • 승인 2018.09.0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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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림제재소 이명옥 대표

[나무신문] 임학과를 졸업하고 P제재소에 입사해 제재, 목재와 관련된 일을 하며 이 분야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1997년에 대림제재소에 입사했고, 5년 정도 근무를 하다가 신대림제재소를 설립, 15년이 흐르는 동안 다른 제재소들이 하지 못하는 제재와 가공 공장이 할 수 없는 목재 가공을 하며 ‘제재소들의 제재소’로 성장했다. 이명옥 대표로부터 제재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 도달하기까지의 과정과 신대림제재소의 현황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언제 설립됐나
우리 회사의 출발점은 ‘대림제재소’다. 나는 대림제재소 직원으로 일했다. 당시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였으나 IMF를 겪고 어려워져 2002년 8월에 부도가 났다. 사장과 가족이 외국으로 떠나고 직원들만 남았다. 내가 책임자가 돼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이끌어 나가던 중 임원진들마저 그만두게 됐다. 남아 있는 직원들과 함께 그해 10월9일 ‘신대림제재소’로 사업자등록을 내고 새로이 출발하게 됐다. 

비록 대림제재소가 부도는 났지만 업계에서 평판이 좋았고, 직원으로 근무했던 까닭에 그 명맥을 잇고 싶다는 뜻도 있어 ‘신대림제재소’로 회사이름을 지은 것이다. 당시 함께 일했던 세 분이 지금도 여기서 근무하고 있다. 2004년 의왕에서 이곳 검단으로 이전했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제재소라는 말이 좀 옛스러운 느낌이다
제재소는 원목을 가공하는 그야말로 1차 산업에 해당한다. 요즘에는 제재소라는 말보다 **목재, ○○팀버와 같은 이름을 많이 붙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제재소라는 이름이 좋다. 옛날 산업, 낙후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목재’나 ‘팀버’가 들어가는 이름은 유통의 개념이 강해, 제조의 의미가 느껴지는 ‘제재소’가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제재소에 취업한 특별한 이유라도
나무를 전공했지만 조경분야가 아닌 목재를 직접 다루는 산업체에 취업하는 일은 흔치 않은 경우다. 하지만 난 나무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일이 좋아서 선택했고, 또 이 분야의 일을 하면서 내가 나무뿐만 아니라 기계를 만들거나 장치를 다루는 일에도 소질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내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사업범위는?
원목상에서 목재를 구매해 1차 가공하거나 한옥재나 조경재 등 2차 가공을 주로 한다. 한옥재로는 살림집을 비롯해 사찰이나 제실, 상가 등에 들어가는 기둥이나 보, 도리, 서까래 등에 필요한 심홀가공, 배흘림가공, 민흘림가공 등과 같은 어려운 가공, 정자나 파고라, 의자, 데크 등 기존의 모든 조경시설재도 가공한다. 이외에 고재, 샌드블라스트 가공 등 인테리어 자재를 위한 가공도 하지만 우리의 전문 분야는 한옥재다.

생산설비 보유현황은
한옥재를 생산한다면 보통 프리컷 설비를 얘기한다. 또 대부분 제재소는 높은 가격대의 외국산 기계를 수입해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는 CNC 장비로 프리컷 설비 못지 않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닭볏 모양으로, 난간 중간 중간에 세워 두겁대를 받치는 짧은 기둥인 계자각도 CNC로 가공한다. 이 CNC는 우리가 생산하고 있는 제품 및 그 용도에 맞게 특별히 주문제작한 기계다.

가공 목적에 따라 기계를 개조한다는 뜻인가
장척 제재 등 다른 제재소가 하지 못하는 어려운 제재를 비롯해 한옥재 및 조경시설물을 가공하기 위해 기계를 그 용도에 맞게 개조하거나 새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비싼 설비를 용도별로 구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100% 주문 제작이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 제품과 작업과정에 대해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기계의 기능과 성능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하며, 기계의 운용기술과 숙련도 등을 터득하고 있어야 한다.

한옥을 모르면 할 수 없고, 기계가 있다고 다 할 수는 없다. 목재의 특성, 물성, 결, 성질 등 목재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어디에 사용되는지 용도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목재를 선택하고 어떻게 가공해야 하며 기계를 사용할지 수작업으로 해야 할 지가 결정되며, 기계를 사용할 경우 어떻게 운용할지도 판단해야 한다.

기계에 대해 잘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하다 보니 가공목적에 따라 어떤 기계가 필요한지, 어떤 기술을 요하는지 알게 됐다. 기계에 대해 나름 공부도 많이 했다. 기계를 만들면서 목재 가로등용 심홀 가공기 외 몇 건의 특허도 출원했다. 기계 전문가들한테 의뢰를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한옥재에 대해서는 따로이 공부를 했나
제재소를 설립하고 5년 정도 제재 및 한옥과 관련된 서적을 탐독했다. 전국의 한옥 공사현장을 쫓아다니며 목수들로부터 한옥재 및 이와 관련된 용어, 부품별 쓰임새 등을 정확하게 익혔다. 그래서 주문 제품이 들어오면 그 용도에 맞는 목재와 가공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대림제재소를 ‘제재소들의 제재소’라고들 하던데
우리의 모토는 ‘남이 어려워 하는 것, 하지 않는 어려운 제재가공을 하는 것’이다. 소비자나 목수와 직접 연결되는 경우는 그들이 직접 찾아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다른 제재소에서 가공하기 까다롭거나 어려운 작업을 해야 할 경우 우리한테 요청해 온다. 우리는 남들이 안 하는 것이라면 다하고, 무엇이든 문의하면 일단 OK하고 시작한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제재소들의 제재소’라는 말을 듣고 있다. 우리의 기술력을 인정받는 것 같아서 기분은 좋다.

더글라스 가공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더글라스는 특히 한옥재로 적합한 수종이다. 육송이나 미송도 좋지만 더글라스는 구입하기 쉽고, 가격도 저렴하며 수종 자체가 좋은 목재라서 소비자들도 선호한다. 다른 파인보다 함수율이 낮으며 강도 면에서 강한 편이다. 붉은 색을 띠어 아름답다. 최근 더글라스를 이용한 시장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더글라스 제재 및 가공을 전문으로 하는 제재소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그러한 시장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더글라스 무엇이든 多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문화를 선언한 것이다.

제재업을 하는 업체는 얼마나 되나
직장생활을 하던 90년대부터 제재업은 사양산업이라고 했다. 90년대 후반 당시 전국의 제재소는 1200개사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에는 300여 개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업체 수 면에서 20여년 전보다 4분의 1로 줄었지만 업체들의 규모가 대형화 되고, 설비의 자동화로 생산 캐퍼는 오히려 증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

경쟁업체는?
300개 목재소가 있다고 해도 나름 각자의 특성과 전문성, 사업범위 등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그래서 경쟁이라기보다는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제재소가 할 수 있어 필요시 그 제재소에 요청해서 충족하는 방식이다. 업종 특성상 한 회사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주문이 들어왔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고, 안 되면 다른 회사에 의뢰해 해결하거나 아예 그 일을 잘 할 수 있는 회사에 넘겨주는 것이다. 서로에게 고객이 되는 것. 경쟁관계가 아닌 상생관계를 맺고 윈윈해야 한다.

설비 자동화에도 불구하고 전문 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력현황은?
예전엔 젊은 사람들이 일을 배워가며 근무했었는데 요즘은 거의 없다. 문제점이다. 외국인 근로자가 대체하고 있다. 우리 회사에도 15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외국인 근로자가 2명이다. 직원들의 연령대도 50대, 60대의 중장년이 대부분이다.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 있는 직원들이지만 장래를 생각하면 좀 걱정스럽다. 

지난해 매출은? 올해의 계획은?
30~40억원 사이다. 경기가 안 좋은 상태에서 이 정도 했으면 잘 했다고 생각한다. 올해도 그 정도 예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고 없이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직원들과 함께 또는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고, 목표라면 목표다. 이것은 올해만의 계획이 아니라 내가 신대림제재소를 이끌어 가고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람들이 ‘제재소’를 알면서도 사실은 잘 모른다. 잊혀져 가는 단어인 것 같아 아쉽다. ‘신대림목재’ ‘신대림팀버’가 아닌 ‘신대림제재소’라는 회사 이름을 잘 지켜 나가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신대림제재소’를 아주 오랫동안 끌고 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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