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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옥천 물길이 품은 풍경

연재 | 장태동의 여행과 상념 - 충북 옥천군 나무신문l승인2018.05.04l수정2018.05.04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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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옥천과 이지당

참 오래 못 가봤다. 그리운 풍경, 아름다운 사람들, 추억의 맛이 하나로 뭉뚱그려진 곳 충북 옥천, 십여 년 만에 옥천을 다시 찾았다.  

옥천의 도리뱅뱅이와 생선국수
한 15~6년 전 쯤 됐을까? 보름 정도 되는 날을 쪼개어 옥천을 떠돌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금강과 대청호는 물론 옥천의 실개천, 작은 마을까지 다 들여다보았었다. 

그때의 기억이 어사무사한데 유독 생선국수와 도리뱅뱅이, 올갱이국의 맛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옥천 여행을 끝내는 날 부모님이 계신 청주에 들러서 하룻밤 잤는데, 그건 순전히 옥천에서 먹었던 도리뱅뱅이와 생선국수에 대해 알려드리고 가까운 날 부모님을 모시고 가서 그 맛을 보여드려야겠다는 마음에서 였다. 

엄마에게 도리뱅뱅이와 생선국수에 대해서 자세하고 차분하게 설명하는데 입에 침이 고였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한 숨 돌리는데 엄마가 이러시는 거다. “얘, 그거 아버지랑 옛날에 옥천에서 먹어본 거 같다 얘~” 

그랬다. 이미 부모님은 옥천의 생선국수와 도리뱅뱅이를 드셔보셨던 거다. 늦어도 한참 늦게 내 차례가 왔던 것뿐이었다. 

옥천의 몇몇 식당 주인께 들었던 생선국수와 도리뱅뱅이의 역사를 엄마가 마지막으로 확인해주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근 지역인 영동군과 충남 금산군도 생선국수 도리뱅뱅이 올갱이국으로 유명하지만 그 세 음식은 내게 옥천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 도리뱅뱅이.

사정이 이러한데, 옥천에 도착하자마자 생선국수와 도리뱅뱅이를 파는 식당을 찾아간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그 식당에 더덕막걸리가 있을 줄은 몰랐다. 도리뱅뱅이는 고소하고 매콤하고 바삭하게 씹히는 맛 때문에 맥주 안주로 어울리는데, 시원한 더덕막걸리가 있으니 짝꿍의 자리에 잠시 더덕막걸리가 놓이는 게 옳다.   

▲ 더덕막걸리.

주전자에 담긴 더덕막걸리를 한 잔 따른다. 더덕막걸리 향이 식탁에 퍼진다. 라일락이 피어나는 분주한 봄, 아직도 청춘 같은 마음 목마름을 달래주는 더덕막걸리 한 잔에 마음이 녹록해진다. 
도리뱅뱅이와 더덕막걸리는 이성의 문을 닫고 감성의 문을 여는 열쇠다. 옥천의 실개천 물비린내를 담은 생선국수 한 그릇으로 입가심을 하고 새 생명을 피우느라 제 자리에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는 분주한 길로 나선다. 
  
이지당
옥천 남서쪽 장령산자연휴양림을 지난 물줄기가 군서면소재지를 지나 옥천읍 서쪽으로 굽이쳐 흐르며 이지당을 앉혀 놓았다. 그 앞을 지난 물줄기는 북으로 흘러 대청호 큰 물줄기에 닿기 전, 추소리 마을에 부소담악이라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다. 그 물줄기 이름이 소옥천이다. 

도리뱅뱅이와 더덕막걸리, 생선국수로 옥천의 맛을 봤으니 이제 물의 나라, 옥천의 풍경을 볼 차례다. 이번에는 소옥천을 따라 물길이 품은 이지당과 부소담악을 돌아보기로 했다.  

▲ 부소담악 추소정.

가까이 있는 이지당을 먼저 찾았다. 이지당은 조선중기 성리학자인 중봉 조헌 선생이 후학을 교육하던 서당이다. 처음 이름은 이지당이 아니었는데 훗날 우암 송시열 선생이 이지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시전에 있는 ‘산이 높으면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고산앙지경행행지(高山仰止景行行止)-’에서 두 개의 ‘지(止)’자를 따서 이지당(二止堂)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지당을 한 눈에 보려면 숲을 나와야 한다. 숲을 나와 개울을 건너는 다리에서 이지당이 보인다. 다리를 지나서 바로 좌회전해서 좁은 도로를 따라 조금만 가면 숲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이지당을 볼 수 있다.  

▲ 소옥천 산기슭에 있는 이지당

늦게 피어난 벚꽃과 함께 바라보는 소옥천 물길과 숲, 그리고 그곳에 있는 이지당 풍경이 아름다웠다. 더덕막걸리 한 되에 돋은 흥이 ‘그치(止)지’ 않아 혼자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니까 이지당 앞에서 이른바 ‘일지당’이 되어 그 풍경을 즐길 뿐이었다.  

▲ 부소담악 추소정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장승공원

부소담악
이지당 앞을 지난 소옥천 물길은 북으로 흐른다. 그 물줄기가 대청호에 닿기 전 군북면 추소리에 부소담악이라는 풍경을 만들었다. 

부소담악으로 가는 길, 물이 흐르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은 달라서 잠시 소옥천과 떨어져야 했다. 

▲ 부소담악과 추소정

소옥천 물길을 다시 만난 건 환평재를 넘어 추소리로 가는 환산로 어디쯤이었다. 이지당 앞 소옥천은 가까이 있어 손을 담글 수도 있었지만 환산로에서 만난 소옥천은 멀리서 바라만 봐야 했다. 

시야가 터지는 곳에서 바라보는 소옥천 물길은 산이 길을 내주는 대로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았다. 

▲ 부소담악과 추소정

도로 옆 빈터에 차를 세우고 전망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곳으로 올라갔다. 추소리와 소옥천 물줄기, 그리고 부소담악의 일부 풍경이 한 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표지판도, 이정표도, 전망시설도, 아무 것도 없는 그냥 언덕배기였다.  

언덕에서 내려와 길을 따라 가다보면 물에 뜬 절벽 같은 부소담악 풍경이 한 눈에 보이는 곳이 나온다. 그곳에서 잠시 멈추어 풍경을 눈에 넣고 다시 출발했다. 

부소담악으로 가는 입구에 차를 세우고 걸었다. 차가 못 들어가게 막아 놓았다. 오히려 그게 좋았다. 그곳은 걸어야 하는 길이다. 

▲ 추소리 풍경. 사진 가운데 오른쪽에 부소담악의 일부가 보인다.

물가의 평범한 마을, 조팝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걸었다. 밭 옆 언덕 숲에서 뛰쳐나온 고양이 한 마리가 길 옆 풀밭에 멈춘다. 입에 물고 있던 무언가를 풀밭에 떨어뜨린다. 그때 어디선가 다른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먹이를 놓고 고양이 두 마리가 싸우는 모습을 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싸우지 않았다. 익숙한 듯 아무 소리 없이 두 마리의 고양이는 먹이를 나누어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나를 인지한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보고 그르렁 거린다. 미안한 마음에 얼른 자리를 떴다. 

애완용이나 반려용 고양이는 아니었다. 윤기는 커녕 지저분한 털, 마른 몸으로만 봐서도 들고양이였다. 산과 들, 으슥한 밤길을 제 마음대로 다니는 들고양이, 그들의 생태는 잘 모르지만 산에서 잡은 먹잇감을 나누어 먹는 모습을 뒤로하고 물가의 길을 걸어서 추소정으로 가고 있었다.   

▲ 추소정으로 가는 길에 본 고양이들.

장승공원을 지나 추소정에 올랐다. 추소정에서 바라보는 풍경 속에 ‘물에 뜬 절벽’ 부소담악이 담겼다. 조선시대 사람 우암 송시열이 부소담악 풍경을 보고 감탄하여 몇 자 남긴 글이 있다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 추소정

다만 내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이유는 조금 전 부소담악을 한 눈에 넣을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에서 본 그 풍경 속에 내가 묻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 추소정에서 본 부소담악

 

장태동  
공식 직함은 기자.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는 글 쓰고 사진 찍는 여행작가로 더 알려져 있다. 그 동안 온세통신, LG정유 사보에 여행 에세이를 기고했고 ‘한겨레리빙’, ‘굿데이365’ 등에 여행칼럼을 냈다. 저서로는 <서울문학기행>, <Just go 서울 경기>, <맛 골목 기행>, <명품올레 48> 등이 있다. 


나무신문  imwood@imwoo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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