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공무원은 궁예가 아니다…법대로 하자”
산업계, “공무원은 궁예가 아니다…법대로 하자”
  • 서범석 기자
  • 승인 2018.04.2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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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법 취지는 목재자급률 높이기”…3명이 검토해 ‘입법예고’

[나무신문] 설마 했던 일이 사실로 밝혀졌다. 산림청이 최근 입법예고한 목재의 지속 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목재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이하 개정안)이 업계 의견반영 없이 공무원 3명의 ‘내부적 검토’만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개정안은 지난해 11월28일 신설돼 오는 5월29일 시행 예정인 “국가ㆍ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기관의 장은 국제협정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 미만의 목재 또는 목재제품에 관한 조달계약을 체결하려는 때에는 국산목재 또는 국산목재제품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 비율 이상으로 우선 구매하여야 한다”는 목재법 제19조 2항에 관한 사항이다.

법에는 이처럼 아무런 단서조항 없이 ‘국산목재 및 국산목재제품’의 우선구매 의무화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산림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에 목재 사용을 권고하던 것을 국산목재를 사용토록 의무사항으로 법률로 정한 것”이라며 “국내에서 벌채된 목재를 이용해 생산된 제품으로 목재펠릿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말해 산업계의 공분을 산 바 있다.

이 말대로라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목재회사 중 하나인 선창산업에서 생산한 합판도 국산합판이 아니라 수입합판이 되는 셈이다. 원재료인 원목을 대부분 수입목재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도 국산차가 아닌 꼴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국산목재제품’은 원재료가 어디에서 왔든 국내에서 가공된 목재제품을 말하는 것이므로 “법에 엄연히 국산목재제품 사용이 의무화됐는데, 산림청이 임의대로 무엇은 국산이고 어떤 것은 국산이 아니라고 정해 배척한다면 상상하지 못한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면서 “목재펠릿은 국산목재와 국산목재제품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나라 제재소나 공장에서 생산된 합판이나 제재목, 집성목, 목재 온돌마루 등 제품은 국산목재제품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한심함을 넘어서 근본적인 자질에 문제가 있다고 보여진다”고 강하게 질타한 바 있다. <나무신문 492호 17면 「선창산업 합판이 “국산합판 아니다”?」 참조>

이어서 산림청 주최로 열린 ‘2017년 하반기 목재자급률 제고를 위한 간담회’에서도 이 문제가 뜨겁게 달아올라, 목재산업계에서는 “국산목재 및 국산목재제품 우선구매를 강제한 것은 우리 업계에서도 바라던 바”라며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만들 때 우리 업계의 의견도 반드시 수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산림청 목재산업과 김원수 과장은 분명하게 “국산목재 및 국산목재제품 우선구매 제도의 시행령을 만들 때 산업계의 의견도 충분히 듣겠다”고 답한 바 있다. <관련기사 나무신문 495호 19면 「“벌채 없으면 수종갱신도 못한다」 참조>

그러나 이후 산림청은 업계에 대한 의견수렴은 커녕 알리지도 않은 채 3월2일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나무신문이 이를 3월14일 인지하고 이 개정안에 대해 알고 있는 관련단체나 산업계 관계자를 찾았지만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관련기사 나무신문 505호 3면 「“김재현 산림청장, 목재산업이 우스워요?”_산림청, 공공기관 국산목재제품 우선구매 의무법안 시행령 입법예고…하지만 목재산업계는 모르게?」 참조>

그래도 업계에서는 ‘산림청이 공식적으로 약속까지 한 상태에서 설마 그렇게까지 숨기기야 했겠냐’는 게 지배적인 믿음이었다. 하지만 산업계의 이와 같은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 

산림청은 이번 개정안 입법예고에 대해 “목재산업과에서 여러 가지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내부적으로 검토한 사항으로 별도 외부회의를 개최하지 않았”다고만 밝혔다. 검토자가 누구인지, 통계자료는 무엇인지 등을 제차 확인한 후에야 산림청 관계자는 “(목재산업과) 김원수 과장, 노상우 사무관, 김일숙 임업주사 3명이 ‘지자체 등의 국산재 우선구매 실적’ 등의 평균치를 기반으로 개정안을 만들었다”며 ‘회의록’과 같은 별도의 “회의자료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현재 입법예고 기간으로 의견 접수시 관계기관 의견 청취를 위해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입법예고 의견접수 기간이 있으니 ‘산업계의 의견도 충분히 듣겠다’는 약속을 어긴 게 아니라는 뉘앙스다.

‘관심법’으로 회의록도 안 남기고  만든 목재법 시행령?
문제는 산림청이 아직도 ‘국내에서 생산된 원목을 사용해 만든 목재제품’만 공공기관 국산목재제품 우선구매 의무화 대상으로 국한하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 선창산업이 인천공장에서 만든 합판도 국산(made in korea) 취급을 못 받는다는 뜻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업계의 그러한 (원목이 어디 산이든 국내 공장에서 제품으로 가공하면 국산이다는) 의견이 있으면 검토는 해보겠다”면서도 “법에(신설된 목재법 제19조 2항)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이 법의 취지는 국내 목재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국산 원목을 사용해 만든 목재제품이 이에 해당한다”는 해석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산림청은 법에 명시된 대로 집행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실제로 ‘국내 목재자급률 높이기’라는 ‘취지’는 국회에서 통과된 목재법에는 등장하지 않는 대목이다. 목재법에는 단서조항 없이 ‘국산목재 및 국산목재제품’이라고만 명시돼 있는 것. 

‘목재자급률 제고라는 숨은 취지’가 등장하는 곳은 산림청 단 3명의 공무원이 회의록도 남지지 않은 검토 작업 끝에 만들어낸 시행령 개정안뿐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공무원은 궁예가 아니다”며 “산림청은 법에 명시돼 있지도 않은 ‘취지’ 운운하지 말고 목재법에 명시된 대로 개정안을 만들어 시행해야 한다. 법에 보이지도 않는 ‘취지’를 시행령에 고집하다가는 궁예의 말로를 따라가게 될까 걱정된다”고 꼬집었다. 

궁예는 일명 ‘관심법’으로 폭정을 일삼다가 왕위에서 쫓겨나 백성들에게 피살된 후고구려의 왕이다.

특정업체 한 곳에 어마어마한 특혜될 수 있다?
‘국산목재제품’을 ‘국산 원목으로 만든 제품’으로 국한할 경우, 현재 우리나라 산에서 생산된 원목의 최대 수요처인 목질보드류 산업계가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더 큰 문제다. 이렇게 되면 ‘목재자급률 제고라는 취지’에도 역행하는 꼴이다. 

현재 100% 국산원목을 이용한 국산목재제품은 현실적으로 목재펠릿이 거의 유일한 실정이다. 일부 공학목재 시장이 있지만, 이 분야도 이미 외산재를 이용하는 시장으로 돌아선 지 오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목재펠릿 수입량은 240만 톤에 달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중 대부분이 발전업계로 들어간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산림청의 이번 개정안 초기 목표는 35% 우선구매다. 발전소에서 240만 톤의 35%인 80만 톤 정도 국산목재제품(펠릿)을 사용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현재 국내 목재펠릿 연간 생산능력은 전국 20여 개 공장을 다 합쳐봐야 50만 톤이 그치고 있는 것. 이마져도 30만 톤 규모의 단 한 곳 공장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1~2만 톤에 지나지 않는 소규모다. 산술적으로는 국내 생산 목재펠릿 전체가 공공기관 우선구매 의무화 대상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목재펠릿 원재료는 MDF, PB 등 목질보드류 생산업계와 원재료를 공유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금도 목재펠릿 등 산림바이오매스를 이용하는 화력발전 업계에 대한 인센티브 격인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 때문에 목질보드류 생산업계의 원재료 확보 경쟁력은 목재펠릿 업계에 비해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에너지 업계에서 인센티브 받는 만큼 원재료 가격을 더 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산목재제품 우선구매 의무화’ 혜택까지 또 목재펠릿에만 적용될 경우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 가팔라질 게 불보듯 뻔하다는 분석이다.

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도 REC 가중치 때문에 원재료를 에너지 업계에 속수무책으로 빼앗기고 있는데, 여기에 목재펠릿을 공공기관에서 우선구매까지 해준다면 목질보드류 산업은 망하라는 것”이라며 “현재 목질보드류 생산업계에서 사용하는 국산원목은 연간 170만 톤에 달한다. 이것이 모두 수입제품으로 대체되고, 국산원목 사용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가장 큰 수요처인 목질보드류 생산업계를 죽일 수도 있는 정책을 산림청이 국산목재 자급률 높이기라고 한다면 머리가 나쁘거나 다른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우리나라 목재펠릿 전체 생산량보다 많은 양이 우선구매 대상인 것도 문제인데, 특히 유일하게 대량생산 능력을 갖춘 특정업체에게는 어마어마한 특혜로도 작용할 수 있는 개정안이라는 점을 산림청은 깊이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목재가공산업계 전체가 반기고 환영해야 할 목재법 19조 2항이 시행령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산림청은 5월29일 시행을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공청회 개최 등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다음 시행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이 기사는 원래 4월 11일 송고했었는데, 내부사정으로 인해 기사가 삭제되어 4월27일 다시 게재합니다. 바뀐 내용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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