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채울까’보다는 ‘어디를 비울까’
‘무엇을 채울까’보다는 ‘어디를 비울까’
  • 황인수 기자
  • 승인 2018.04.2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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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단아건축사사무소 조민석 대표

[나무신문] 2002년 3월 설립, 16년째 소규모 아틀리에 형식의 사무실로 운영되고 있는 단아건축사사무소는 건축에 대한 ‘진지한 궁리와 열심’을 지향한다. “건축물은 사람들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준다. 좋은 건축물은 건축물이 존재하는 내내 지속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치고 나쁜 건축물은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어떻게 건축물의 결과를 책임지는 건축가가 진지하고 열심이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조민석 소장은 말한다. 부친인 조준현 선생의 조언으로 건축가가 됐다는 조민석 소장으로부터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그만의 철학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소장님이 어떤 분인지 소개해 준다면
아버지께서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하시고 건축 관련 공직에 몸담고 계셨기 때문에 나에게 건축은 어려서부터 친숙한 분야였지만 건축과를 가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다. 학력고사를 보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에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다. 건축에서 공학적인 면을 주로 공부하는 건축공학과 보다는 디자인을 주로 공부하는 건축과를 가면 어떻겠냐는 말씀과 함께 디자인 쪽으로 우수한 홍익대 건축과를 추천해 주셔서 입학하게 됐다. 대학 졸업 후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건축이론에 대한 공부를 했고 석사학위를 받고 일건축건축사사무소에서 황일인 선생님께 사사했다. 이후 희림건축사사무소 등 대형 건축사사무소에서 10년간 실무를 익힌 후 개업을 하게 됐다. 개업 후에는 주로 설계경기에 매진해서 좋은 결과도 이루었고 종종 좋은 건축주들과 함께 일반 건축일도 해 왔다. 첫 작품으로 서울시 건축상을 받았고 이후에도 수차례 서울시건축상과 한국건축문화대상, 광주광역시건축상 등을 수상했다.

최초의 프로젝트는? 완료 후의 감격 또는 소회를 말씀해 주신다면
사회 후배가 소개시켜준 엘로우프로덕션이라는 광고회사 사옥이었다. 논현동에 위치하는데 대형사무소에서 대형 프로젝트만 수행하다가 오픈해서 소규모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하다보니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계약을 하고 허가를 받고 준공검사까지 받아서 완공을 하니 뿌듯했다. 아직도 그때의 벅차오르는 감격을 잊을 수 없다. 감사하게도 이 첫 작품으로 서울시 건축상까지 받게 되었다.

건축에 대한 소장님만의 철학이 있다면
사람은 삶을 스스로 조직하지만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건 건축가의 역할이다. 건축도 바탕은 기술이지만 결국 사람으로 향하는 인문학이다. 그래서 나는 ‘소통’과 ‘관계맺음’을 무엇보다 중요한 화두로 삼고 있다. 
    
건축은 풍수 등 자연현상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로 인해 어려웠던 일이 있었다면
자연을 정확히 예측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특히 땅속은 더더욱 그렇다. 예를 들면, 건축물을 세우기 위한 기초공사를 하거나 지하층을 만들기 위해서는 땅속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몇 군데 구멍을 뚫는 지질조사를 해서 얻는 데이터는 넓은 땅을 단지 추정할 뿐, 정확성은 많이 떨어진다. 막상 터파기를 하고 나서, 종종 예상과 다른 경우를 만나, 당황한 적이 있었고 설계변경을 하게 되는 수고스러움도 많이 겪었다. 이제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 땅속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조심스러운 것이 땅속이다.      

지금까지 수행했던 작품 또는 프로젝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이 있다면? 그 이유는
최근에 작업한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단독주택, 관송헌이라는 프로젝트다. 관송헌은 광주에서 교육사업을 하시는 건축주와 인연이 돼 건축을 하게 된 세 번째 프로젝트다. 이전에는 건축주와 유치원, 키즈캠퍼스라는 어린이어학원을 설계했는데 최근, 건축주의 집을 짓게 된 것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소나무숲을 바라보는 집으로, 건축주가 좋아하는 소나무숲 옆에 주택을 지어 소나무와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집을 설계한 것이다.

이 작품이 애착이 가는 이유는 아무래도 건축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 번째로 같이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서로 신의가 쌓여 작업을 진행하는데 있어 큰 어려움이 없었고 완성도가 높게 시공돼 더욱 마음에 든다. 

소장님의 건축에 가장 많이 반영되는, 소장님만의 특징적인 것 또는 디자인이 있다면
건축에서 여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설계의 출발을 ‘무엇을 채우는 것’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어디를 비울까’를 먼저 생각한다. 비워진 여백이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불러오고 그곳에 무언가로 채울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건축을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이다.

내 건축에 있어 여백은 마당이 되기도 하고 대청마루가 되기도 하고 넓은 계단이 되기도 한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여백은 다르게 디자인된다. 

소장님의 메인 분야는? 선호하는 건축분야는? 그리고 특별히 그 분야에 주력하는 이유는
다양한 작업을 해오고 있지만 소규모 공공건축물을 많이 한 것 같다. 그중에서 어린이, 장애인들을 위한 건축이 많다. 자칫 소외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프로젝트에서 보람을 느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린이집, 유치원, 장애인복지관 등을 다른 사람들보다 좀 많이 지은 편이다.

소장님의 건축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재료, 소재는? 그 소재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특별히 선호하는 재료가 있는 것은 아니고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재료를 선정하는 편이다. 어떤 때는 예산이 될 수 있고 주변 환경, 건축주의 취향 등 다양하지만 내구성은 무조건적으로 담보되는 재료를 사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자연의 재료를 날것 그대로 쓰고 싶다. 가공을 최소화하면 사람들에게 따스한 친근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목조주택이나 한옥에 관심이 있는가, 목조주택을 시공한 경험이 있다면
목조주택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완벽하게 나무로만 만든 집을 지어보고 싶다. 나무냄새가 은은한 집에서 살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금보다 더 건강해 질 것 같다.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무엇보다 건물이 지어져, 건축주가 만족해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잡지라든가, 인터넷에 실려 일반 대중들의 반응이 좋으면 더욱 보람을 느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부담감도 없지 않다. 다음에는 더욱 잘해야 한다는….

최근 건축 시장의 동향은 어떤가? 건축의 트렌드는
요즘 건축의 트렌드는 화려함 보다는 실속 있는 단순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전에 호황기 때에는 비싼 재료를 사용하면서 과시적인 공간을 연출했다면, 요즘은 싼 재료라 하더라도 감각 있게 사용하며 작은 공간도 알뜰하게 디자인하는 게 트렌드인 것 같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있다면
지을 건물보다 짓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한 게 사실이다. 요즘은 여기에 불황도 한 몫을 한다. 건물을 지어도 아주 좋은 곳이 아니면 임대가 잘 안되고 분양이 안 되니 남보다 싸게 특화된 건물을 만들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건축설계도 이에 따라, 저렴하면서 멋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다른 건축시장도 있다. 비싸더라도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 각광을 받는 시장이다. 물론 소수의 건축주들이 수요자들이지만 그들은 건축의 가치를 알기에, 비용을 더 들이더라도 더 좋은 건물을 얻고자 할 것이다. 그들과 일하기 위해서는 건축가의 실력이 건축주의 안목을 넘어서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귀 건축사사무소의 올해 계획과 목표는? 중장기 사업계획은
올해부터는 프로젝트의 숫자보다는 질적인 측면에 더 치중할 생각이다.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어, 안목 있는 건축주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건축 관련 책도 집필하셨다. 어떤 책인가
‘실내건축재료’는 현재 4쇄까지 찍을 정도로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는 책이다. ‘건축재료학’ 또한 대학교재로 많이 사용되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인기가 있는 책이다. 아버지께서 주로 집필하셨고 나는 건축실무를 하는 아들로서 조언과 약간의 도움을 보태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공저자로 올려주신 것은 앞으로 이 책들을 더욱 발전시키라는 명을 주신거라 생각한다.

부친께서도 건축가시다. 어떤 분인가
설계하는 건축가는 아니시고 건축 관련 공직에서 오랫동안 계시다가 은퇴 후에 대학에서 강의하시면서 집필활동을 이어오신 분이다. 팔순을 훌쩍 넘기셨는데도 많은 저서를 남기셨으며 지금도 새로운 저서를 준비 중이시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열정적인 건축학자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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